토요일 아침,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눈을 뜨면 엄마가 자고 있던 자리는 비어있습니다. 노량진 임용학원에 수업 들으러 갔거든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녁 7시에는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빠가 있으니까요.
쉬는 시간. 남편의 톡이다. 아무 설명 없는 둘째의 사진과 동영상. 교회 토요학교 미술교실에 다니는 첫째를 데려다주고 1시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남편과 둘째는 카페데이트를 한다. 카페에서 주스도 마시고, 한적한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까꿍놀이도 가능하군.남편이 보내 준 화면속 아이를 바라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훨씬 더 애틋하고 흐뭇하다고 할까. 부쩍 많이 컸다는 생각도 든다. 어어 저러다 테이블에 머리 꽁 하겠네. 주스 엎어질라. 방심한 순간 물컵이 툭 쓰러진다. 여기서 동영상은 뚝. 멀리서 보는 육아의 현장은 웃음이 난다. 나만 아니면 돼. 평일 육아하면서 나도 가끔 아니 자주 남편에게 아이들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을 보낸다. 혼자보기 아까워서, 너무 예뻐서, 기특해서.여기에 나 지금 이렇게 헌신하고 있다 고생하고 있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 그럴 때 고생이 많네. 고마워. 사랑해. 남편의 짧은 한마디에 위로와 새 힘을 얻곤 한다. 나는 불순한 마음을 섞어 보냈지만 남편은 그게 아님을 안다. (오빠, 맞지?!) 그러하기에 더 고맙고 미안한. 덕분에 잠시 힐링하고 다시 강의에 집중한다.
남편은 내가 공부하기 전에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잘'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잘 = 아이들이 재미있게, 본인이 신나서 즐겁게, 어렵지 않게(=편하게). 육아의 달인들은 말한다. 아이와 놀아주지 말고 같이 놀라고. 난 그게 참 어렵더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한 10분 놀면 왜 이리 하품이 나고 눕고 싶은지. TV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한다. 공원이든 도서관이든 키즈카페 든 일단 나가서 아이가 나 이외의 환경과 만나고 놀기를 바라며. 어디든 나갔다 오면 TV 틀어줄 때도 죄책감이 덜하다. 반면 남편은 집이든 밖이든 그냥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아직도 기억나는 가장 인상적인 놀이를하나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진출처: pixabay
포스트잇에 숫자를 하나씩 쓴다. 1부터 10까지. 아이에게 눈을 감으라 하고 집 안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아이 눈에 잘 띄는 TV화면부터 짐작하기 어려운 식탁 아래까지. 이것으로 남편의 준비는 끝. 유유히 소파에 눕는다. 이제부터는 아이의 시간. 아빠의 시작 소리와 함께 포스트잇 10개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역시 첫 번째 발견은 TV에 딱 붙어있는 1번 포스트잇. 찾았다! 싱글벙글하며 포트스잇을 떼어 아빠 손에 쥐어주고 다시 움직인다. 매의 눈과 빠른 걸음으로 샤샤삭. 이번엔 작은 방이다. 옷장에 보이는 분홍색 포스트잇. 이제 2장만 더 찾으면 된다. 이어지는 남편의 추임새. 어디 있지? 식탁에 있나? 식탁 포스트잇을 떼어 나오는 길 맞은편 벽에 붙어있는 포스트잇도 발견. 양손에 하나씩 쥐고 개선장군처럼 아빠에게 달려간다. 소파에서 일어난 아빠와 10장을 다 찾은 기쁨을 진한 포옹으로 마무리하고나란히 놀이매트에 앉는다. 그리고 아이가 모두 찾아온 포스트잇을 숫자 순서대로 바닥에 쭉 붙인다. 이어지는 숫자놀이. 남편이 일 이 삼~ 읽으면 아이도 일이삼 따라 읽는다. 십을 외치며 하이파이브. 아이는 또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아이의 흥에 맞춰 놀이는 계속된다. 이런 남편이기에 공부해 보라고 권유받았을 때도 직강을 선택할 때도 육아 때문에 망설이지는 않았다.
징~오늘은 청소사진이다. 거실 바닥에 있던 미끄럼틀, 장난감 박스 등이 모두 들어 올려져 있고 두 아이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닥에 뭐가 그리 묻어있는 건지물티슈로열심히 닦는다. 제법 능숙한 자세의 첫째와 달리 바닥에 엎어져 노는 건지 청소하는 건지 모를 둘째의 모습에 웃음이난다. 역시나 집돌이 우리 남편, 오늘도 나가지 않고 청소도 하고 놀이도 하며 슬기롭게 토요일을 보내고 있다. 나 합격하면 살림과 육아를 해보겠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가 보다. 저녁에 귀가하니 낮에 청소한 집은 우리 집이 아니었나. 블록과 인형들이 거실 한가득이다. 스케치북, 이면지도 나와있고 그림책도 뒹굴뒹굴. 우리 딸들, 아빠랑 청소도 하고 인형놀이, 미술놀이도 하고 재미있게 놀았네. 엄마 있었으면 치우고 다른 거 꺼내야지 하는 잔소리 백번은 들었을 텐데.
엄마 이거 봐봐. 크레파스로 그린 거야.
블록을 천장까지 쌓았는데 지금은 무너졌어.
점심은 아빠가 라면 끓여줬어.
오늘은 00 마트 다녀왔어. 엄마가 좋아하는 00 과자도 사 왔어. 먹어봐.
엄마 없는 토요일, 그런 토요일을 쏟아지는 함박눈처럼 많이 보내고 요즘은 다 같이 토요일을 보낸다. 늦잠 자고 라면 끓여 먹고 TV채널로 아웅다웅하는 그런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날들. 달라진 점을 굳이 꼽자면 엄마 없는 토요일을 많이 경험했기에 혼자만의 토요일 외출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