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이 도착한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병원에서 잠을 설친 채 발길을 옮기던 그의 발끝에 이른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부드럽게 감겼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성당은 안개에 잠겨 흐릿했고, 십자가의 형체는 희미했다. 성당 입구 쪽에서 아련히 비춰오는 불빛이 그를 성당으로 인도했다. 사위는 고요했고, 오직 그의 숨소리만 길게 울려 퍼졌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 영남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병원에서 성당까지 이어진 길이 그의 시선에 닿았다. 병원 건물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 있었지만, 그곳의 무거운 분위기와 압박은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깊게 숨을 내쉬고, 마침내 성당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성당 내부는 어둡고 고요했다. 몇몇 가톨릭 신자들이 자리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기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이 영남의 마음을 더욱 짓눌렀다. 그는 한쪽에 놓인 마리아 상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그러나 알 수 없는 거리감이 가슴 깊숙이 차올랐다.
영남은 그 눈빛을 견디기 힘든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가 세례를 받던 날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두려움과 설렘 속에 세례를 받던 어린 시절의 기억. 그날 그는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진심으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던 시간.
하지만 지금, 그는 과연 좋은 의사일까?
그때의 다짐을 지키고 있을까?
병원에서 그의 진료는 종종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곤 했다. 이사장은 언제나 진료 시간과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며 영남에게 빠르게 환자를 돌보라고 종용했다. 그가 지켜야 할 윤리와 이익 중심의 현실 사이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환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어두운 죄책감이 떠올랐다.
얼마나 더 이런 두려움과 회의 속에서 환자를 대해야 하는 걸까?
피곤에 지친 눈으로 다시 마리아 상을 바라보았다. 그 상이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차임벨이 울리고, 성당 안은 신부님의 맑은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신부님의 목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깨며 성당 안을 채웠다. 영남의 마음속 안개가 살짝 걷히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눈을 감고, 성당의 냉기가 잠시나마 그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불안과 고뇌를 기도 속에 맡겼다.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제 성당의 침묵 속에서 그 다짐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은 대답 없는 질문들로 가득했다.
그는 조용히 기도했다.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을 수 있기를. 이 차가운 새벽이 지나갈 때, 마음속의 무거움도 함께 사라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