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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담 Nov 15. 2024

6화. 계속되는 보호자와의 갈등




  진료실 문이 닫히자, 영남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피로가 사지로 퍼져나가며 한낮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그를 천천히 뒤덮었다. 또다시 보호자와의 갈등이었다. 나름의 치료와 성의가 오히려 차가운 벽처럼 되돌아올 때, 그 벽에 몸을 부딪힌 듯한 무력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창밖으로 내리쬐던 흐린 빛이 회색 벽에 스며드는 동안, 그는 자신이 정말 ‘좋은 의사’로 남을 수 있을지 회의감에 휩싸였다. 병원의 차가운 회색 빛은 바람 빠진 그의 신념을 짓밟듯 더욱 아래로 가라앉혔다.



  다음 환자와 보호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보호자의 눈동자는 빠르게 방안을 훑었고, 두 손은 불안하게 깍지를 끼고 있었다. 보호자는 도착하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이 치료가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가요? 병원에 올 때마다 아버지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영남은 차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의 치료는 환자분의 상태에 맞춰 진행 중이고, 회복 속도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해요.”



  보호자의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수면 위에 얇게 깔린 얼음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웠다. 마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베어내는 칼날 같았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솔직히 믿기 어렵네요.” 보호자의 목소리는 얇게 떨렸다. “여기에서 정해진 방식대로만 똑같이 반복하는 거 아닌가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로 신경 쓰고 계신 건 맞나요?”



  영남의 목젖이 떨렸다. 보호자의 말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뿌리 박힌 신념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 같았다. 그는 보호자의 눈을 똑바로 보려 했지만, 시선이 갈피를 못 잡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환자분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있어 죄송할 따름입니다만, 환자분의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보호자의 시선은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 차갑고 단호한 눈빛 속에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보호자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없이 진료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에게 마지막 가시를 남겼다. 영남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치 그가 서 있던 곳이 점점 가라앉아 이제는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에 갇힌 것 같았다. 그의 신념이 뿌옇게 흐려지며 점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밤늦게까지 고민하며 환자들의 상태를 개선하려 애썼던 모든 노력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다해 다가가고자 했던 모든 진심이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병원의 회색 벽은 묵묵히 서 있었고, 그 벽 너머로 흐린 하늘 아래 낡은 회색빛 구름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를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는 그저 병원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또 하나의 기계일 뿐인가?’

  그의 내면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그 파동은 차가운 진료실 안에 고여 있는 침묵을 깨뜨리며, 병원 시스템이라는 철벽 너머로 흐르지 못하는 무력한 물살처럼 흔들렸다. 그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자 했지만, 그 진심은 병원의 회색 벽에 부딪혀 산란되는 것 같았다. 모든 열정과 신념이 회색 벽 너머로 흩어져버렸다.



  보호자가 떠난 뒤, 진료실에 남겨진 정적은 마치 그가 품어온 신념의 잔해처럼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같았다. 그때, 병원 스피커가 무겁게 울리며 코드 레드 방송이 흘러나왔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병동 101, 코드 레드 발생, 코드 레드 발생”

  코드 레드는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었다. 영남의 신경이 곤두섰고, 깊은 피로에도 몸은 자동으로 반응했다. 가슴속의 무력감이 뭉쳐 있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복도는 불빛이 번쩍이며 경각심을 일깨웠고,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긴박한 공기를 채웠다.



  병동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환자 침대로 달려갔다. 심정지가 온 환자의 차가운 손목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은 고요히 누워 있었고, 냉랭한 손목은 마치 그의 마지막 신념의 무게를 그대로 담은 듯 묵직했다. 그는 시계도, 시간도, 주위도 잊은 채 오직 한 가슴의 떨림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환자의 차가운 가슴을 두드릴 때마다, 마치 그의 심장이 그곳에서 불타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은 기계처럼 반복됐지만, 매번 가슴을 누를 때마다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이 그를 찌르고, 또 찔렀다. 그 절박함은 그의 온몸을 타오르게 하며, 그의 눈동자조차 매서운 집중으로 빛났다.



  동료 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제 손 바꾸시죠…”



  영남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압박을 가했다. 차가운 손이 자신의 손에서 살아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환자의 생명을 그의 손끝으로 불러오겠다는 의지로. 그의 모든 의식은 이 환자의 삶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 번, 또 한 번, 그는 끝없이 가슴을 압박하며 온 마음으로 외쳤다. “제발, 제발, 살아주세요…”



  그러나 결국, 환자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순간 영남은 무너졌다. 마치 그의 일부가 그 환자의 마지막 숨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영혼이 서서히 마르고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그의 가슴을 저미며 들어왔다. 소생실은 고요했다. 단 하나의 숨결도 없이, 차가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영남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소생실은 차가운 침묵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의 신념도 차갑게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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