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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이들의 작은 세상이 흐르던 강가에서

추억이 흘러가던 강물처럼

by 아르망

여름의 심장이 고동치듯 매미 소리가

온 세상을 힘차게 물들이는 계절,

시간의 문턱을 넘어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이라는 눈부신 선물이 도착했던 날.


그 시작을 알렸던 가장 맑은 멜로디는,

시골 할머니 댁의 너른 품을

휘감아 도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였지요.


그 소리는 얕은 여울에 발을 담근

아이들의 자박거림과

햇살이 물비늘 위로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뒤섞여 빚어내는,

오직 한 철만 허락된 여름의 순수한 연주였습니다.


흙이 쨍쨍한 햇볕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냄새와

싱그러운 풀 내음이 뒤섞인 바람이 마음을 간질이고,

유리 날개를 단 투명한 잠자리들이

공중에 보이지 않는 길을 내며

날아다니던 강기슭.


저는 그곳에 서서

물미역처럼 축축한 머리카락을 한 채,

작은 발가락들을 꼼지락거리며

자신들만의 여름 왕국을 건설하는

귀여운 건축가들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오늘 일곱 살 인생의

가장 중대한 프로젝트는 바로 ‘댐 건설’.

둘째 아이는, 마치 천 년 묵은 보석이라도 감정하듯

돌멩이 하나하나를 햇살에 비추어봅니다.


댐의 운명을 결정지을 ‘핵심 주춧돌’을 고르는

그 눈빛이 사뭇 진지하여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이윽고 일곱 살 건축가의 지휘 아래

제법 그럴듯한 댐이 완성되자,

둘째는 두 손을 허리에 척 얹고는

물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주인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그 옆에서 다섯 살 셋째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비장의 무기인 낡은 장난감 자동차를

물속에 살며시 넣어봅니다.


혹시나 길 잃은 피라미 한 마리가

이 ‘최신 잠수함’의 유혹에 넘어가 주길 바라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함정이었습니다.


아이는 숨을 죽인 채 덫을 응시하지만,

강물 속 터줏대감인 피라미 떼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약 올리듯 은빛 옆구리를 더욱 반짝반짝

빛내며 작은 사냥꾼의 덫을

유유히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애가 타는 사냥꾼의 입술이

오리주둥이처럼 삐죽 튀어나옵니다.


아직 ‘건축’의 기쁨보다 ‘무너뜨리기’의

즐거움이 더 좋은 세 살배기 막내는,


둘째의 작은 왕국인 댐 옆에 가서

제 발에 튀어 오르는 물보라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폭죽이라도 되는 양,

연신 까르르 소리를 터뜨리며 놉니다.



이내 아이들의 야망은 강물처럼 불어났습니다.


아홉 살 맏이가 “저 큰 돌을 옮기자!”하고

이끼 낀 커다란 돌을 가리키자,

아이들은 마치 위대한 도전을 시험하는 용사들처럼

비장하게 힘을 합칩니다.


발목을 간질이는 물의 흐름에 휘청거리면서도

얼굴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져

“이야아아!” 하는 기합 소리만 요란할 뿐,

이끼 낀 거석은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도전을 포기하고는 괜히 강물에

발길질 한번 휙, 해보는 모습에서

거대한 운명 앞에 선

인간의 작고도 사랑스러운 반항을 봅니다.


어느덧 저녁노을이 강물 위로

붉은 수채화를 그리고,

어디선가 첫 귀뚜라미가

수줍게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건설한 찰나의 여름 왕국은

밀려올 어둠과 시간의 흐름 속에

흔적도 없이 스러져 가겠지요.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한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다고 하지만,

저는 오늘 다른 진실을 보았습니다.


저 아이들이 바로 강물이었습니다.


유년이라는 맑은 샘에서 갓 솟아나,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장난치고,

때로는 커다란 바위에 막혀 잠시 투정 부리다가도

이내 제 길을 찾아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은 강줄기들.


오늘 강가에서 보낸 오후는,

훗날 아이들이 저마다의 바다를 향해

굽이쳐 갈 기나긴 여정의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발원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고향집 앞을 감싸 흐르던 그 작은 물줄기는,

수많은 굽이를 돌아 세상의 거대한 강들과 합쳐지고,

마침내 바다라는 영원 속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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