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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꽃잎이 가지를 떠나듯

처음으로 홀로 나아간 자전거

by 아르망

햇살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꿀처럼 끈적이게 쏟아지던 주말 오후.


아스팔트 위로 그 햇살이 잘게 부서지며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뒹굴고,

느릿하게 흐르던 구름의 그림자는

동네의 지붕들을 하나하나 정겹게 어루만지며

마치 안부를 묻듯 천천히 훑고 지나갑니다.


그 모든 풍경이 잠시 숨을 참는 듯한 찰나,

바람마저 '무슨 일인가' 귀 기울이듯 멈춘

그 고요 속을,

네 개의 작은 외침이 선명한 화살처럼

꿰뚫고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공기 중에 그저 떠다니던 빛의 알갱이들을

단단한 소리의 실로 하나하나 꿰어,

하나뿐인 눈부신 목걸이로

만들어내는 듯한 힘이었지요.


담장 너머로 잠들었던 감나무 잎사귀들이

그제야 파르르, 정신이 든 듯 흔들리던

바로 그 시간.



열 살 첫째의 자전거는

이미 '길'을 아는 듯했습니다.

아이의 훌쩍 커버린 몸짓에 날렵하게 반응하며,

거친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지요.

그 매끄러운 바퀴의 움직임은 마치 자전거가

제 속도를 뽐내는 듯한 날갯짓 같았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다섯 살 셋째의

수다쟁이 자전거였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아스팔트 위에 제 존재를 한껏 요란하게 알리는

작은 보조 바퀴의 소리는,

아이에게 '너는 절대 넘어지지 않아'라고

쉼 없이 말해주는,

안전한 노랫소리 같았습니다.


세 살 막내의 세 발 자전거는

'속도'라는 생각을 잊은 대신

'제자리의 행복'을 아는 신기한 탐험가였습니다.


페달은 그저 두 발을 잠시 얹어두는

'편안한 쉼터'일 뿐,

두 발로 땅을 힘껏 구르며

그 자리를 맴도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이었지요.


그 작은 바퀴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잊은 채,

지금 여기가 '가장 즐거운 곳'이라는 듯

흥겹게 굴러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네 개의 풍경 한가운데

오늘의 주인공인 여덟 살 둘째가 있습니다.


아이는 방금, '균형'이라는,

다루기 힘든 선물을 막 건네받은 참이었지요.


그 아이 앞에는, 방금 '안전'이라는 이름의

두 보조바퀴를 떼어낸,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자전거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자전거는 마치

'나 이제 어떻게 혼자 서 있어야 해?'라고 묻는 듯,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위태로워 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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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또 한 발.

아이가 조심스럽게 페달에 힘을 싣기 시작하자,

서투른 '비틀거림'이 제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저는 그 용기와 두려움이 뒤섞인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함께 달렸습니다.

아이의 움츠린 등과 제 'ㄱ'자 모양의 허리가,

새롭게 다가올 세상을 함께 밀고 있었지요.


하지만 몇 번이나 우왕좌왕하고 비틀거렸을까요.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을 두드리며,

저는 결국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습니다.


아이의 첫 '홀로 나아감'을 위해

기꺼이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 여기서 손을 놓으면 저 아이는 분명 넘어질 텐데.'

그 찰나의 망설임과 두려움은,

아이가 아니라

가 먼저 이겨내야 하는 일 같았지요.


그 무게에 짓눌려,

젖은 숨과 마음까지 잠시 멈춰 섰던,

바로 그 순간.


첫째가, 아무 말 없이 성큼 다가와

씩씩하게 동생의 자전거 안장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앞을 봐야지! 발을 보지 말고!"

"핸들 꺾지 마! 그냥 똑바로 가,

내가 잡고 있어!"


첫째의 단호한 목소리.

'괜찮아, 천천히 가, 조심해'만 되뇌며

걱정스레 말하던 저와는 완전히 다른,

거칠지만 분명한 가르침이었지요.


는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단호한 잔소리'를,

첫째가 대신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저의 'ㄱ'자 허리를 그대로 빼닮은 그 작은 등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동생의 안장을 붙들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외칩니다.

"형! 꽉 잡아!"

그것은 "나의 모든 비틀거림을 꼭 붙들어줘"

라는 간절한 외침.


첫째는 대답합니다.

"알았어! 잡고 있어!"

그것은 "너의 모든 서투름은 내가 지킬게"

라는 든든한 약속.


"자... 내가 3초만 놓는다! 꽉 밟아!"


둘째의 비명과 첫째의 짧은 격려가 뒤엉키는 찰나.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봄날의 꽃잎이 가지를 떠나듯,

형의 든든했던 손이 동생의 안장을 떠났습니다.


형의 손을 떠난 그 자전거는,

지구의 모든 중력을 다 이기려는 듯

'비틀, ' '비틀, ' 위태롭게 춤을 추더니,

마침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3미터, 5미터...

아이의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고,

둘째의 비명이 환호성으로 바뀌는 그 순간,

첫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벅찬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두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웃었습니다.


아이는 나아갔습니다.

제가 그토록 힘주어 잡고 있던 안장 뒤의 빈 공간을,

쌩쌩 바람 소리가 대신 채우며,

아이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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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세상이 기우뚱했지만,

이내 아이는 온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그 중심을 제대로 잡았습니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그 작은 등.

어쩐지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가슴 저린 뒷모습.


언제 저만큼 컸을까.


아이들은 어느새 '스스로 바로 서는 법'을,

그리고 '서로를 붙잡아주는 법'을

함께 배우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와

'넘어질지도 모를 두려움' 사이,

그 아슬아슬한 공간 어디선가 기적이 태어나던 순간.


저는 두 아이의 뒷모습과,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에 반짝이는 알갱이들을,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수업을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깨달았지요.


'균형'이란,

누군가 '꽉 잡아주기만 할 때'는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아이를 '훨훨' 날아가게 하는 진짜 힘은,

'이 손을 놓으면 넘어지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아니라,

'이 손이 너를 믿고 이제 놓아줄 거야'라는

그 '용기'에서 비로소 태어난다는 것을.


나는 텅 빈 두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지요.


자전거에서는 먼저 떨어졌지만,

내 마음에서는 늦게 떨어진 보조 바퀴.


다시 고개를 들자,

꿀처럼 쏟아지던 햇살은 어느새 더욱 따스해졌고,

포근한 솜털구름은 느릿느릿, '참 대견하다'하다며

정다운 눈인사를 건네고 지나갔습니다.


가지에서 꽃잎이 떨어진 곳,

그 빈자리에서부터 바람이 자라나고,

그 바람은 우리를 저마다의 속도로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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