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아요
치망마이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의 동선과 계획은 완벽하면서도 촘촘하게 짜 놓았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4시. 아침을 각자 운동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12시에는 출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공항 라운지를 이용해 보기도 하자는 취지였다. 아내와 함께하는 몇 번의 해외여행이 모두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이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공항 라운지를 한 번도 이용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이 조금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탓에 인천공항 장기주차장 발레을 신청하지 못했다. 인원이 많이 줄어든 것인지 약 1달 전에는 예약했어야 했던 것 같다. 셀프로 장기주차장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평일이라 1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구간이었지만, 가서 해야 할 것이 평소보다 많으니 12시보다 15분만 일찍 출발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이 위치한 동네의 가장 큰 장점은 몇 번의 신호를 받지 않아도 고속화도로를 탈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서울 내부순환로를 3분~5분이면 올라탈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어찌 된 영문인지 집 앞의 사거리를 빠져나가는데만 10분 이상 소요됐다. 평일 낮은 이 정도로 막힐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만간 내부순환로를 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앞으로 갔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거리의 좌회전 신호도 거의 받을 수 없을 만큼 차가 심각하게 막혔다. 차가 막히니까 앞선 신호에서 꼬리물기 차량들이 발생했고, 꼬리물기 차량으로 인해 본 신호의 차들은 한참을 정체한 뒤에 1~2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경찰차가 출동하고 교통 통제를 시작한 이후부터 그나마 '공정'하게 신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이미 15분 이상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으로 내부순환로를 타기 위해 1차선에 서있는데, 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1차선을 이용해야 했었는데 주차장에 온 수준이었다. 간간히 2~3차선에서 끼어들기하는 차량이 있다고 치더라도 신호도 없는 내부순환로에 이 정도로 정체가 발생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네이버지도를 통해 내부순환로 CCTV를 조회해 봐도 막히는 구간이 없는데 참 이상할 노릇이었다. 10분 전에 지나간 것 같은 구급차와 경찰차가 아직도 내부순환로에 올라타지 못하고 정체구간에서 사이렌만 울리고 있었다.
어느덧 집에서 출발한 지 1시간 15분이 경과하였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대로라면 공항라운지를 이용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장기주차장에서도 지연이 발생하면 오히려 비행기 탑승 자체를 걱정해야 할 것 같았다. 철석같이 믿던 내부순환로가 이렇게 나를 배신할 수 있는가!
신호를 좀 더 받더라도 국도로 가기로 결정하고 차선을 변경해서 가는데, 이제야 이 모든 정체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2월 19일 수요일은 국민대학교의 졸업식날이었다. 내가 내부순환로로 올라가야 하는 부근은, 내부순환로를 통해 국민대학교로 들어가는 차량과 X자로 교차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국민대학교로 들어가고자 아주 긴 행렬을 이루고 있던 졸업식 참여 차량이 내부순환로의 3차선을 막고 있었다. 내부순환로의 3차선이 막혀있으니, 내가 올라갔어야 할 차선이 막혀있었던 것이다...
더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볼걸- 하는 마음에 지나버린 시간이 더욱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집을 나선 지 2시간 반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이용해 본 야외 장기주차장은 광활했지만 이미 차가 많이 있었다. 이토록 드넓은 구역에 내 차 댈 곳 하나 없겠어? 라며 B구역부터 E구역까지를 샅샅이 뒤졌고, 겨우 한 곳을 찾아 주차했다. 다행히 셔틀버스 승강장과는 가까이 있었지만, 한국의 영하 10도의 날씨를 내 차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약 15분을 가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드디어 도착'.
평일이라 출국 수속을 밟는 데에는 한산했고, 사전 체크인과 위탁 수화물을 맡기는 것이 모두 키오스크를 통해 진행되었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항공사에서 해당 일을 담당하시던 분은 이제 곧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셀프-라는 이름으로 키오스크가 종업원들을 참 많이 감축시키겠구나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 라운지에 도착했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선지라 둘 다 매우 허기진 상태였다. 애초에 라운지에서 식사를 슥! 삭! 할 예정이었는데,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4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아내와 라운지에 입장하려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카드는 '더 라운지'라는 어플을 통해 카드를 등록하고, 쿠폰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후다닥!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진행했는데, 아내는 앱스토어 비밀번호를 까먹은 상황이라 '비밀번호 찾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많은 절차를 거쳐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더니, 신용카드 결제 비밀번호를 둘 다 모른다는 걸 알았다. 내가 쓰는 카드의 가족카드로서 발급받은 것이라, 비밀번호는 내가 세팅해 놨던 것 같기도... 아내가 주로 쓰는 비밀번호로 한 것 같기도.... 혼란스러웠다. 5번의 비밀번호 입력 실패로 락-업이 걸렸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나는 신용카드 혜택으로 라운지를 이용하고, 아내 몫은 현장에서 결제했다.
VIP신용카드라는 게 뭐 다 똑같지 않아?라고 생각했는데, NH농협카드의 행태를 보니 현대카드로 바로 갈아타야겠다. 라운지 이용을 혜택으로 걸어놓고 이렇게 쓰기 불편하게 하기 있기 있나!?
어플 다운로드와 카드 등록을 하는 동안 라운지를 이용하러 온 승객들은, 카드와 탑승권을 제시하고 슥- 통과해 버리던걸!?!?
막상 들어온 라운지는 아쉬운 퀄리티의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아내와 내가 공통으로 최고 메뉴라고 손꼽은 것은... 컵라면과 떡볶이였다. 그 외에는 굳이 맛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우리에게는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허기를 해결하는 미션 수행과정이었다.
계획대로 된 것은 없고, 불편한 것 투성이었던 시간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웬일로 아내가 더 성숙한 어른처럼 성난 나를 달랬다.
오후 4시 인천에서 치앙마이로 출발한 비행기는 6시간 반 동안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