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최애를 탐하다 나의 최애를 뺏기다.
아내와 나는 TV를 많이 보지 않는다. 각자 취향에 대해서는 핸드폰으로 컨텐츠들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거실에 앉아 보는 TV는 '금쪽같은 내새끼'나 유투버들의 맛집 소개 시청용으로만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풍자씨의 '또간집'을 주로 챙겨보는 편이다.
2년 전에는 '또간집'에서 소개한 맛집을 탐방해 보고자 목포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평소에 먹는 양이 많지 않은 아내가 먹방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해서 무척이나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2군데 정도는 '또간집'에서 소개한 가게를 성지순례하듯이 방문했다. 그 외에는 수많은 블로거와 유투버의 추천 가게들로 잘 버무려서 다녀왔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산에 기가 막힌 피자집이 있다고 하여 방문했다. 아내는 주말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준비를 하더니, 예상 출발시간보다도 15분 일찍 집을 나섰다. 11시 반부터 입장이 가능했고 캐치테이블 현장 웨이팅 시스템은 10시 반부터 가능했다. 우리는 10시 10분에 가게 앞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줄이 상당히 긴 상황이었다. 순차적으로 웨이팅 등록을 하고 나니 대략 3시에 입장이 가능할 것 같다는 유투버들의 간증이 있었다. 여전히 쌀쌀한 2월 날씨에 외부 활동을 하기는 어려워 인근 백화점에 가서 밀린(?) 유니클로 기본템 쇼핑을 했다.
거의 2시가 다돼 가자 '10분 뒤 입장 가능~!'이라는 알림이 떴다. 이건 아점도 아니고 아점저를 한 번에 먹는 게 아닌가?
'또간집'의 다른 편에서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합정역 편이 나왔다. 그 편에서는 풍자가 어떤 가게에서 나오는 걸 본 시민이, 본인들의 단골집을 빼앗겼다며 귀여운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웃으며 '맛집이 방송 나오면 한동안은 기존 단골들은 못 가는 거지-' 하고 웃어넘겼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노출되면 한동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지 않았던가? 심지어 포방터 돈까스집은 웨이팅이 너무 길어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 같다며 제주도로 내려갔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양은 냄비와 같은 '관심 폭발'은 제주도 가게 앞 '1인텐트 밤새기'와 '웨이팅 알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때는 그저 맛집의 숙명이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되자 세상이 무너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나마 아내와 함께 보는 컨텐츠가 '맛집'이다 보니, 누군가 우리에게 맛집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지 상상하곤 한다. 어디를 이야기해야 '맛잘알'로 보이게 될지- 이미지 메이킹을 해보자며 웃었다. 그와 동시에 너무 즐기는 가게는 리스트에서 빼야 하겠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수많은 회식과 접대 등으로 웬만한 맛집과 고가의 음식들은 질리게 먹고 다녔다. 산해진미(?)를 먹고 다녀서 오히려 선진국병인 비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엄청난 맛집이라는 게 5점 만점에 4.7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면, 이미 4.5 ~ 5.0의 가게들은 섭렵한 상태이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는 '바게트 빌리지'라는 성신여대역 근처 빵집을 선택했다.
나는 원체 디저트와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먹는다고 한다면 달지 않고 더부룩하지 않은 것이 내 조건이다. 전자의 요건은 치아바타와 소금빵, 깜빠뉴와 같은 빵 종류 선택으로 해결했다. 후자의 경우는 충족하는 곳이 흔치 않았다. 아니 '바게트 빌리지'를 제외하고는 발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가게는 이런 나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빵집이다.
최근에 방문했을 때에도 여전히 존맛집 이었다. 골프연습장에 들렀다가 집에 걸어 돌아가는 길이었다. 무화과 깜빠누 half 1개와 치즈/올리브 치아바타 1개를 샀다. 컷팅된 빵을 1조각씩 꺼내 들어 길거리에서 우적우적 먹으면서 걸었다.
애플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했다.
빵이라고는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게 필요한 건, 소화는 잘되지만 달지 않은 고소한 빵이었다. 니즈(needs)가 없던 나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최애 맛집으로 손꼽을만하지 않은가?
이렇게 나만 알고 싶은 밴드처럼, 나만 알고 싶은 가게가 생겼는데 사건이 발생했다.
3주 전 토요일에 '바게트 빌리지'에 10시 15분 즈음 들렀다. 내가 '치즈 치아바타'를 고르자 사장님께서는 이 빵이 오늘 마지막 빵이라고 하셨다.
"띠용??? 9시 반에 오픈인 가게인데 벌써 품절되는 품목이 생기는건가;;;"
집에 와서 아내와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안 그래도 최근에 '나 혼자 산다'에 어느 여배우가 나와서 '바게트 빌리지'를 촬영하고 갔다는 것이다. 긴급한 마음으로 유튜브를 찾아봤다.
'지금도 동네에서 유명해서 빨리 문 닫는 집인데.... 더 유명해지면 안 되는데...'
최근에 꽤나 핫한 여배우가 본인의 최애 빵집이라고는 했지만, 그렇게나 파급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누가 빵 사 먹으러 여기까지 오겠어-? 라며 가벼이 여겼다.
그러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아내와 오후에 어딘가로 놀러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아점을 간단하게 집에서 해결하기 위해, 내가 골프연습장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빵을 사가기로 했다. 골프연습장 시간은 9시~10시로 예약을 하고 걸어갔다.
8시 45분 즈음에 '바게트 빌리지'의 앞을 지나가는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가게 앞에 4명 정도가 마치 오픈런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서 있는 게 아닌가? 토요일 오전 9시도 안 되었는데 저 사람들은 대체 뭐지-? 싶었다.
연습장을 마치고 10시 10분에 가게 근처를 지나는데....
지하철역 근처에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있는 게 아닌가.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있기는 한데, 버스도 안온 지금 미리 줄도 서있고 시민의식들이 투철하는구나- 싶었다.
이렇게 충전되던 인류애가 '나혼산'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줄은, 질서 정연하던 대기줄이었는데 '바게트 빌리지'까지 이어져있었다.
이게 실화인가 싶었다. 하지만 나도 목포와 일산에서 그랬듯 대기하고 있는 분들의 얼굴에는 굉장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나는 직감했다. 앞으로 최소 3개월은 이곳의 빵을 먹지 못하겠다는 것을 말이다.
안 그래도 주말이면 오후 3시에 / 주중에는 오후 5시면 재고 소진하고 문을 닫던 분들인데, 이렇게 되면 오전 9시 반에 오픈하고 11시에 문 닫는 게 되는 걸까?
내 것은 아니지만, 내가 누리던 것들이었다. 정확히는 '쉽게 접근해서 취할 수 있었던' 것을 뺴았겼다고 생각하니 별의별 생각이 다들기도 한다.
나만 알고 싶은 밴드와 나만 알고 싶은 가게라는 표현 자체에
극단적인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던 나였는데
내가 그쪽에 서있어보니, 이것만큼 분통터지는 일이 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