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황현필이 또 다른 영상을 올렸습니다. 바로 남침유도설에 관련된 내용인데요. 이번 편은 그가 이번 영상에서 주로 언급한 SL-17 문건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황현필은 SL-17의 보고서를 두고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여러 증언들과 문건들을 언급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다른 건 둘째치고 SL-17을 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사실, 황현필이 내세우는 그거라고 해봐야 이 SL-17 뿐이고 그 외의 증언들도 이 SL-17로 인해 파생된 증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SL-17은 미 육군부 군수참모부가 작성한 '한반도 작전 대비 군수 연구'라는 내용의 보고서로 한국전쟁을 위한 작전계획의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군대는 말 그대로 타국의 침략이나 침공, 혹은 유사시에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적국의 침략과 도발에 대응하여 수많은 작계 관련 내용을 연구하고 보고합니다. 이른바 War-Game이라 불리는 시뮬레이션이죠.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하기 직전 수많은 워게임을 돌렸고, 그 워게임에서 미국의 정신력을 우습게 보고 작전을 진행하다가 결국은 패퇴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일본이 침공해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죠. 그 대상이 진주만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도 수많은 상황을 대비한 워게임이 상정되고 그에 따른 훈련이 진행됩니다. 흔히 말하는 작계 훈련입니다. 이 작계 훈련에 따라 적군의 이동경로와 전쟁 진행에 따른 내용에 따라 진행되는 훈련입니다. SL-17도 바로 이런 일환의 보고서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수많은 전쟁 상황에 따른 대비책으로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 SL-17이 진짜로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는 계획이었다면,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 있는 수많은 작계 훈련 역시도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는 작전이자 남침을 유도하는 계획이 됩니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공격했을 때에 이에 맞서서 실미도 계획이 이루어진 것 역시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SL-17은 수많은 전쟁 상황에 대비한 이른바 하나의 작전 계획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황현필은 SL-17의 보고서가 보고된 날자의 일자도 틀렸습니다. 황현필은 1949년 9월에 이 보고서가 올라갔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SL-17이 보고된 것은 1950년 6월 19일로 전쟁 일주일을 앞둔 상황입니다. 작성을 시작한 시기가 1949년인 것이지, 보고된 날짜가 1949년 9월이 아닌 겁니다. 보고서가 올라간 시점은 이미 애치슨 라인이 발표된 이후입니다. 그가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CIA 국장 힐렌퀘터와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의 증언 역시도 이 SL-17 보고서가 발표된 6월 19일에 우려를 표하는 것입니다. 해서 필자는 그 증언의 원문조차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황현필의 주장이 근거를 가지려면 SL-17 보고서가 이미 한참 전에 보고되었어야 하며, 그가 증거라고 제시하는 수많은 증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한참 전에 나와있어야 합니다. 그가 증거라고 내민 증언들은 하나같이 미국이 북한의 남침 전략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실책을 자인하는 증언이라는 것입니다.
황현필은 과거 그의 수능 강의 영상에서 제주도까지 후퇴한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제주도로 이동하여 임시정부를 세우라고 요청하지만 이승만이 이를 단번에 묵살해 버리죠. 그는 영상에서 이승만조차 북한의 남침을 유도한 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당시의 국제적 정세에 그가 얼마나 무지한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미국은 이승만의 수많은 군사 원조 요구를 묵살합니다. 그 이유는 이승만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해서가 아니라 한국군을 무장시키면, 이승만이 그대로 북진하여 전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거기에 군축에 들어간 미국의 기존의 정책과도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이었기에 이를 거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한 것입니다. 이승만의 발언은 남침을 유도한 것이 아닌, 이나라 대한민국의 군사 안보에 심각한 영향이 올 것을 두려워했기에 이런 발언을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가 그토록 신봉하는 브루스 커밍스조차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내가 견해를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책 '한국 전쟁의 기원'을 모두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나온 '한국전쟁의 기원'1권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금서가 됐다. 2권은 번역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내가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쪽으로 믿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 내가 미국의 지배주의 정책이 전쟁을 발생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나 나는 결코 그처럼 말한 적이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황현필은 한국 전쟁의 기원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취사편집한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진보 성향 신문인 경향 신문과의 2023년 인터뷰에서도 브루스 커밍스는 누가 전쟁을 시작했느냐보다는 어떻게 시작됐나에 초점을 잡고 있습니다.
그가 뒤에 이야기하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대응방침과 SL-17은 말 그대로 유사시에 발생할 수 있는 내용들의 대한 정리일 뿐입니다. 이는 어느 나라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이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할뿐더러 필자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 원문이 공개된 것도 아닙니다. 필자가 찾은 것은 2003년과 2013년에 SL-17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일 뿐입니다. 그가 SL-17이라는 그 보고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한, 또한 그 보고서가 실제로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저 미국 국방부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전쟁 시나리오와 워게임의 한 부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따라서 그의 의견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황현필이 그토록 신봉하는 브루스 커밍스의 인터뷰 한 줄을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력, 특히 민족해방 계열에서 내 책을 읽고 전파하고 토론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시켰다. 그들은 학자가 아니라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한국사람들은 그들(운동권)이 말한 것이 나의 생각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역시 내 연구들은 신중하게 읽혀지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