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미글린 잭 1
이름을 싫어하고 투렛을 가진 열여덟 소녀 미글린 블루 잭
1
“미글린.”
“……”
“미글린 잭!”
“……”
“미글린 잭, 넌 네 이름이 그렇게 싫어도 그렇지, 네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하면 어떡하니!"
해밀턴 교장의 말에 학생들은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비웃음으로 느껴져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자기는 브랜드 이름이랑 똑같으면서 내 이름 가지고 놀리고 있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난…… 해밀턴 교장의 말처럼 내 이름이 싫은 게 맞으니까.
그래, 난 미글린 잭이다. 내 이름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미글린 잭. 차라리 해밀턴 잭이 낫지, 미글린 잭이 뭐냐고. 그래서 난 친구들에게 미글린 잭이 아닌 '재키'라는 이름을 부르게 했다. 누가 정 없게 친구에게 성을 부르게 해. 하지만, 내가 그렇다.
사람들은 내가 재키 선언을 하기 전에는 '미글', '믹', '머글'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믹 재거도 있었다. 젠장할 해리포터, 젠장할 롤링스톤즈. 난 그 이름들이 너무나도 싫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따진 적이 있었다. 왜 내 이름을 미글린으로 지은 거야! 부터 시작해서 왜 나는 멋진 미들 네임이 없는 거야! 까지. 그래서 난 내 미들 네임을 만들었다.
미글린 블루 잭
내가 좋아하는 숀 블루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난 이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물론 미글린을 빼면……. 내가 숀 블루와 결혼하게 되면 미글린 잭이 아닌 미글린 블루 블루가 되겠지만.
그런데 그 아무도 나를 미글린 블루 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내 유일한 친구인 비앙카마저 나를 재키라고 불렀다. 나를 블루라고 부르라고도 했지만, 비앙카는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원하면 날 그냥 재키라고 불러도 좋아. 하지만 미글린이라고는 부르지 마.
“젠장!”
내 고개와 내 눈알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사실 내 고개와 내 눈알이 움직일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움직일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조절하는 슈퍼파워 따위도 없다. 내가 뭐, 슈퍼 히어로처럼 보여?
“젠장!”
또다시 나는 원하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내 욕설에 한숨을 쉰 해밀턴 교장은 해탈한 듯 보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깨를 으쓱 올리고 해밀턴 교장을 바라보았다. 해밀턴 교장 선생님 미안해요. 내가 욕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또 아니잖아요? 말은 하지 않았다. 버릇없다고 상담실에 불려 갈 게 뻔하니까.
나는 가끔, 아니 자주, 매일 매분마다 원하지 않는 음성을 내뱉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행동에 종종 미간을 구기고 만다. 그러다 이유를 알게 되면 동정의 눈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는 그 동정의 눈빛이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다. 그래도 경멸보다는 동정이 낫잖아?
내가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하나 건넸다. 나는 그들에게 나쁜 감정은 없지만, 그들은 내가 나쁜 감정을 가진 줄 알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건네준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나의 행동에 오해하셨다면 미안합니다. 나는 투렛이 있습니다.’
그래. 나에겐 투렛이 있다. 나는 투렛을 가진 열여덟 살 소녀 미글린 블루 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성 틱과 행동 틱을 가지고 있다. 하나만 가진 사람도 있는데, 나는 운이 안 좋은 건지 두 개를 가지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눈알을 굴리거나 주먹을 올리는 행동 틱과 온갖 외설적인 단어들을 뱉어대는 음성 틱을 갖고 있다. 방금 전에 내가 말했던 ‘젠장’도 음성 틱에 해당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가 외설적인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얘는 음성 틱이 있다고!
나는 여섯 살 때부터 틱이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틱이라고는 행동 틱, 딱 하나였다. 여섯 살 때 틱을 감지하고 치료를 할 수 있었지만, 보모에게 맡겨졌던 나는 치료시기를 놓쳐버렸다. 보모였던 캐롤라인의 주변에는 틱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고, 캐롤라인은 나의 틱을 그저 여섯 살짜리 꼬마의 버릇 또는 장난으로 인지해버렸다. 사실 캐롤라인은 무식해서 틱이라는 것의 존재 여부도 아예 몰랐다. 행동 틱이 처음 발견됐을 시기의 나는 정말 말 안 듣는 여섯 살짜리 꼬마였으니까. 캐롤라인의 신발에 흙을 넣었고, 캐롤라인을 위해 치약을 넣은 쿠키를 준 적도 있었다. 그런 행동 때문에 캐롤라인은 내 행동 틱을 아주 당연한 행동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무식하다는 건 미안, 캐롤라인!
내가 여덟 살 때 행동 틱이 심해졌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사실 핑계보다는 그때 정말 많이 바빴다. 그리고 얼마 후 음성 틱을 시작했다.
투렛의 시작이었다.
열 살 때 나는 엄마랑 아빠를 원망했다. 엄마랑 아빠는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나를 방치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다. 난 지금 그러려니 살고 있다. 후회하기도 이미 늦어버렸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투렛이 심해지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투렛이 약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게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는 여전히 바쁘다.
내가 처음 음성 틱을 시작했을 때 옆집에 살던 바보 같은 케인 지거스는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겠다.’ 케인 지거스는 ‘투렛’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 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케인. 재키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케인 지거스의 엄마인 조니 아줌마는 금색의 머리에 매일 짧은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그 원피스는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이었다. 아줌마의 몸매는 2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에 비해 우리 엄마는 40대 평범한 아줌마의 몸매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내가 다섯 살 때 지거스 가족이 맨해튼에서 버뱅크로 이사 왔다. 지거스 가족이 이사 오던 날 조니 아줌마는 없었다. 그리고 늦은 밤 케인 지거스의 집 앞에 빨간색 차 한 대가 서더니 가슴과 엉덩이만 가리는 붉은색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조니 아줌마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조니 아줌마가 콜걸인 줄 알았다. 잠깐만 그때 내 나이가 다섯 살인데 어떻게 기억하냐고? 그건 내 슈퍼 파워라고 해두지.
다음 날 아침 나는 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때 케인 지거스의 집에서 문소리가 들리더니 전날에 봤던 붉은색의 타이트한 원피스와는 다른 또 다른 타이트한 옷을 입은 조니 아줌마가 집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새빨간 차에 올라탔다. 신기해서 조니 아줌마를 쳐다봤는데 그때 조니 아줌마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조니 아줌마는 내게 반가운 듯 미소 지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옆집 꼬마 숙녀.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고, 콜걸을 캐롤라인이 보던 드라마에서나 봤을 때였다.
한참 후에 들은 말이지만, 조니 아줌마는 모델이었고, 스타급의 모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을 마음대로 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갑자기 잡힌 촬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하는 날까지 촬영을 해야만 했던 거였다. 물론 옷과 화장, 헤어스타일까지도 화보 촬영 때문에 했던 것들이고. 그것도 모르고 나는 조니 아줌마를 콜걸로 오해해 버렸다. 조니 아줌마가 모델인 걸 알고 난 후 아줌마의 짧은 옷차림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촬영장에서 씻을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화장한 상태에서 집에 와요. 씻는 건 집에서 하죠. 집이 편하기도 하잖아요.”
조니 아줌마는 모델을 은퇴한 후에 인형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지를 만들기보다 드레스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꼭 인형의 옷만 만든 건 아니었다. 사람의 옷도 만들었다. 하지만 케인 지거스는 조니 아줌마가 만든 예쁜 옷을 입지 않았다. 당연하지! 남자가 드레스를 입을 수 없으니까. 우리가 여덟 살이 됐을 때 조니 아줌마는 예쁜 드레스를 입혀줄 딸을 원하기 시작했지만, 임신은 쉽지 않았다.
“재키. 예쁜 옷 입고 싶지 않니? 아줌마 좀 도와줄래?”
조니 아줌마는 내가 입을 예쁜 드레스를 만들었고, 나는 학교를 끝나고 나면 집이 아닌 조니 아줌마 집으로 가 드레스 만드는 걸 구경했다.
젠장, 조니 아줌마는 나의 욕에 당황하지 않았다.
“쪽가위가 어디 있지…….”
조니 아줌마가 말했다.
“쪽가위 저기 있는데, 가져다 드릴까요?”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쪽가위를 가리키며 말했고, 조니 아줌마는 내 말에 “아니, 괜찮아.”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진 쪽가위를 집어 들었다.
투렛이 심해지고 나서부터는 나에게 그 어떠한 것도 시키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는 쪽가위로 내 이마를 찍어버렸고, 옷을 찢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의 상처는 5년이 지난 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리포터처럼 번개 모양이면 좋겠지만, 체크 모양이다. 아무 상징도 없는 그럭저럭 평범한 체크 모양.
“오늘 학교는 어땠니? 즐거웠니?”
조니 아줌마가 물었다.
“그냥 뭐 평범하죠. 해밀턴 교장이 짜증 났는데 해밀턴 교장한테 ‘젠장’이라고 했어요. 그것도 고의적으로. 해밀턴 교장은 투렛 증상인 줄 아니까 내 말에 아무 말도 못 했죠.”
“그러면 안 되지.”
“괜찮아요, 뭐. 내가 모르고 얼굴을 쳐도 아무도 뭐라고 못 해요. 자기는 정상이고 나는 비정상이니까.”
내가 말했다.
내 말에 조니 아줌마는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저기, 테이블 위에 있는 빨간색 실 좀 가져다줘.”라고 말했다.
“제가 이거 모르고 밖으로 던져버리면 어떡해요?”
“그럼 다시 가져오면 되지.”
나는 조니 아줌마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있는 빨간색 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조니 아줌마에게 다가가는데 젠장, 투렛이 나와 버렸고, 창밖으로 실을 던져버렸다. 당황했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던질 마음 요만큼도 없는데. 조니 아줌마가 내가 고의적으로 던졌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건 진짜 실수예요. 해밀턴 교장한테 한 거처럼 고의가 아니고, 실수. 진짜 실수예요, 조니 아줌마.”
이 불쌍한 소녀의 말에 누가 거짓이라고 할까. 마음 같아서는 믿어 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빌고 싶지만 지금은 손까지 빌 상황은 아니잖아?
“괜찮아. 재키. 계속 옷 만드냐고 지루했는데, 실도 주울 겸 나갈까?”
조니 아줌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물론 행동 틱과 음성 틱의 조화를 이루는 행동을 하면서.
밖의 날씨는 쌀쌀하지 않았다. 딱 적당해서 뭘 걸치거나 하지 않았다.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니? 케인은?”
“친구는 뭐 여전히 비앙카 한 명뿐이고, 케인 지거스는 저랑 말도 안 해요. 그 녀석 요즘 바보 같은 놈들이랑 몰려다니고 있거든요.”
조니 아줌마는 마당에 떨어진 빨간 실을 주워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래? 통 말을 하지 않으니……. 케인이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졸업반인데 케인은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말이 없어. 아니지, 말을 안 하려고 해. 남편이 말을 걸어도 대충 대답하고.”
“사춘기 남자애들이란…….”
“재키. 너는 뭐가 되고 싶니?”
조니 아줌마가 물었다.
케인 지거스를 한심하게 봤던 나는 조니 아줌마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뭐가 되고 싶냐고? 그러니까, 내가…… 내가 뭐가 될 수 있긴 해? 난 투렛이 있잖아. 늘 내가 해오던 생각 중 하나이다. 투렛으로 변명거리 만들기.
“전 투렛이 있는데.”
“투렛은 투렛이고. 너는 재키잖아. 재키로서 뭐가 되고 싶냐고.”
조니 아줌마는 콜걸 같았던 첫인상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다.
“잘 모르겠는데…….”
“그럼…… 늦진 않았어. 이제부터 찾아보고 생각해 보면 돼. 아직 이십 대도 아니고 십 대잖아. 원래 꿈은 스물셋이 되면 저절로 찾아질 거야. 나이만 먹어 가는데 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지금 꿈을 갖고 있거나 꿈을 찾게 된다면 넌 그들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조니 아줌마가 말했다.
늦진 않았어. 이제부터 찾아보고 생각해 보면 돼. 지금 십 대잖아. 늦진 않았어. 이제부터 찾아보고 생각해 보면 돼. 늦진 않았어. 집에 갈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양치를 할 때도 침대에 누워 잠에 빠지길 기도할 때에도 그 말이 계속해서 내 귀에 맴돌았다. “젠장!” 내가 욕을 내뱉었을 때 조니 아줌마는 나에게 잠시나마 환상을 심어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재키』
비앙카였다.
『전화돼?!』
또다시 비앙카다.
나는 비앙카의 문자에 비앙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못 가 끊기더니 내 귀속은 비앙카의 목소리로 차 버렸다.
“왜?”
“숀이 버뱅크에서 공연할 거래.”
“뭐라고?”
“공연 잡혔어. 숀 인스타그램에 공연 잡혔다고 글 하나 올렸어. 지금 확인해 봐.”
비앙카의 말에 전화를 끊지도 않고, 곧바로 숀 블루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 사진 한 장이 업데이트됐다. 그 사진은 숀 블루의 미국 투어 일정이었고, 사진 밑에는 '나중에 만나!'라고 적혀 있었다.
“얼마래?”
내가 물었다.
“몰라. 저번에 유럽 투어 때 가장 저렴한 좌석이 150불이었다고 했어. 아마 150불 언저리 정도 되겠지. 물론 가장 저렴한 게.”
비앙카의 말에 나는 좌절했다. 수중에 100불도 없었다. 지갑에는 고작 36달러뿐이었고, 용돈을 받으려면 26일을 기다려야 된다.
“나는 못 가. 돈도 없어.”
“아르바이트하면 되잖아.”
“누가 나를 아르바이트에 써 주겠어.”
나는 포기가 가장 쉬운 열여덟의 소녀 미글린 블루 잭이다.
“숀의 여자 친구는 좋겠다. 공연도 공짜로 볼 거 아니야.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에서. 그리고 대기실에 가서 뷔페도 먹고 숀이랑 껴안고 키스도 할 거고. 나는 언제 숀의 여자 친구가 되어보나.”
비앙카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도 언제 숀의 여자 친구가 되어보나.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여자 친구. 연애하고 싶다. 젠장!
“뭐야. 욕 한 거야, 아님 투렛이야?”
나는 양쪽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개 다. 이게 케인 지거스가 말한 바보 같은 특권이잖아.
2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내 머리카락은 갈 곳 잃은 듯 흔들리다 내 뺨을 때렸다. 늪지대 마녀의 손길처럼 따가웠다.
“남자 친구는?”
조니 아줌마가 물었다.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젠장! 그것도 없어요.”
원래 이런 질문은 이런 대답을 하는 게 가장 편하다. 이런 대답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질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엄마. 미글린 잭이 남자 친구가 있겠어? 남자들 다 미글린 잭 무서워한다고. 언제 욕을 할지도 모르고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애를 무서워하지 않으면 그게 신기한 거야!”
케인 지거스의 말에 달리는 차 안에서 케인 지거스를 던질 뻔했다.
“아줌마. 그거 아세요?”
케인 지거스의 말을 무시한 척을 했다. 조니 아줌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뒷좌석에 앉은 케인 지거스는 보조석에 앉은 나를 째려보았다. 시선이 무척이나 따갑게 느껴졌다. 그 따가운 시선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냥 버텨내야만 했다.
“뭘?”
조니 아줌마가 물었다.
내 말에 대답을 하는 거 보니 조니 아줌마도 케인 지거스의 말을 아주 개무시해 버린 거다. 하하하, 케인 지거스 넌 나한테 안 돼!
“여자 애들. 걔네 케인 지거스 엄청 싫어해요. 태도가 저런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내 주변에 있는 애들도 케인 지거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쟤는 프롬에 절대 여자 못 데려갈 걸요? 같이 가자고 하면 분명 차일 걸?”
내가 말했다.
뒤에서 케인 지거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는. 그러게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비앙카뿐인데.
조니 아줌마는 대답 없이 호호호 웃음으로 넘겼다.
자동차는 학교 앞에 도착했고, 나와 케인 지거스는 차에서 내렸다. 케인 지거스는 조니 아줌마에게 인사도 없이 곧장 학교로 향했고, 나는 조니 아줌마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중에 봐요, 조니 아줌마‘젠장’ 마!”라고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물론 약간의 음성 틱을 보였고……. 나는 멀어져만 가는 케인의 뒤통수를 보며 저 싸가지없는 놈이라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젠장, 젠장!
“누구?”
“젠장!”
깜짝 놀라 투렛이 나와 버렸다.
“아, 깜짝이야. 근데 누구 보고 싸가지없는 놈이라고 한 거야? 케인 지거스?”
비앙카가 말했다.
“응. 조니 아줌마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잖아. 못됐어. 어떻게 그 천사 같은 조니 아줌마한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응?”
비앙카는 내 말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케인 지거스 저 녀석이 보통 못된 게 아니잖아.
젠장, 비앙카의 말에 동의를 하기도 전에 욕을 내뱉으며 무언가를 주먹으로 쳤다. 사람이었다. 퍽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나는 가방에서 ‘나는 투렛입니다’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야 되나 생각했다.
조심해.
남자다. 분명 남자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에 나와 비앙카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루카스다.
“아, 미안. 얘가 투렛이라.”
투렛 명함이 없는 비앙카였다.
비앙카는 루카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에게 내게 투렛이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아주 확인사살을 시켜버렸다.
“괜찮아. 네 주먹이 센 것도 아니잖아.” 루카스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또 그런 루카스의 웃음에 미안함이 커졌다. “그나저나 나보다 작은 사람이 지나갔다면 얼굴을 맞을 수도 있겠다. 내가 키가 크니까 다행이야.”
“미안. 나도 모르게…… 행동 틱이 다 그렇잖아. 갑자기 주먹을 쓰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 피해 다니고.”
“그래도 난 널 피하지 않았으니까 너의 그 주먹에 맞은 거겠지.”
루카스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순간 조니 아줌마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내 머릿속에 루카스가 떠다닐 것이다. 그렇다고 루카스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냥 잠깐의 설렘 정도? 루카스 옆에 숀이 있었다면 루카스의 말을 무시하고 숀에게 달려갔을 거야. 왜? 나는 숀을 사랑하니까.
“오늘도 조심해. 나였기에 그냥 넘어가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끔찍하다.”
루카스의 말이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게 치료비를 물어내라거나 욕을 하거나 내 캐비닛에 오물을 투척했을 거다. 멍청한 십 대들. 투렛에 대한 배려 따위 없는 소시오패스들! 그런데 루카스는 다르다. 마치 한 달 후에 내가 루카스를 사랑하게 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한테 늘 다정하고, 멍청한 십 대들처럼 나를 대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아닌 비앙카나 멍청한 소시오패스들에게도 다정한 게 문제겠지만…….
“야, 재키, 안 들어갈 거야?”
정신을 차렸을 때 루카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사실 정신을 차린 건 생략해 버린 내 음성 틱으로 인해였다. 나는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비앙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비앙카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그런 비앙카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자는 말만 했을 뿐이다.
공책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야 멍청한 케인 지거스! 조니 아줌마한테 왜 행동을 그딴 식으로 하는 거야! 이 멍청한 소시오패스! 그리고 종이를 찢어 케인 지거스의 미간처럼 구겨버렸다. 저 멀리 케인 지거스의 뒤통수가 보였다. 납작한 뒤통수에 구겨진 종이를 던졌다. 구겨진 종이는 정확히 케인 지거스의 머리를 관통……하지는 않았지만 머리 정 중앙에 맞았다. 케인 지커스는 땅바닥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주웠다. 그러더니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케인 지거스는 미간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미간을 구겨버렸다. 그리곤 구겨진 종이를 펴 읽기 시작했다. 저 녀석 미간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니까?
케인 지거스는 뒤를 돌아 구겨진 종이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내용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분명 내 욕 가지를 적었겠지? 그렇다면 조니 아줌마한테 말하겠어. 케인 지거스가 학교에서 날 괴롭힌다고!
케인 지거스는 종이를 구겨 내게 던졌다. 나는 그 종이를 기대감도 없이 펼쳐 보았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내 욕은 없었다.
조니 아줌마에게 까칠하게 한 행동이 후회가 되기라도 하는 걸까? 어울리지 않게 케인 지거스도 후회라는 걸 하는 거야? 잇새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는 건 아니었다. 그냥 실없는 웃음 정도였다. 후회라도 하고 있을 저 모습을 보니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그러게 왜 후회할 행동을 하는 거야. 나처럼 후회할 행동을 하지 말라고. 아니면, 행동을 하고 후회하지 않는 방법도 있어.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케인 지거스는 발을 까딱였다.
내 답장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나는 그런 케인 지거스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무시해 버렸다. 계속 궁금해해, 케인 지거스.
3
스쿨버스에서 내리고 집으로 곧장 걸었다. 집에 들어가니 테이블 위에 편지가 있었고 그 옆에는 30불이 있었다. 그 편지는 읽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투시 능력이라도 생긴 건지 내용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분명 이럴 테지. 재키 오늘 일이 많아서 늦을 거 같구나. 점심에 잠깐 집에 왔다가 회사 간 거야. 이 돈으로 비앙카랑 저녁 식사라도 사 먹으렴. 어쩌고 어쩌고. 나는 편지를 읽지도 않은 채로 30불만 챙기고 집 밖을 빠져나왔다. 66불 모았다. 이런 속도라면 150불을 모으는 건 금방 되겠는데?
“조니 아줌마 저 왔어요.”
케인 지거스를 보려는 건 아니었다. 조니 아줌마가 옷을 만드는 걸 구경하고 싶었고, 조니 아줌마의 라자냐도 먹고 싶었다. 엄마는 비앙카와 함께 저녁을 먹으라고 했지만, 난 늘 비앙카가 아닌 조니 아줌마를 택했다.
“오늘도 늦는 거니?”
“네. 지금 사흘째예요. 그래도 아침에는 볼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왜 이렇게 일이 많은 건지…… 차라리 아줌마처럼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이런 젠장.
욕을 내뱉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음성 틱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슈퍼파워라도 생긴 걸까? 기억력도 좋고 투시 능력도 있고 음성 틱도 조절할 수 “젠장!” 있는 건 또 아니다. 슈퍼파워는 개뿔. 틱이 있는 히어로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 겉옷을 옷걸이에 걸어 놓고, 조니 아줌마의 맞은편에서 턱을 괴고 앉았다. 조니 아줌마는 부엌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맞다. 오늘 케인 지거스가 아줌마를 걱정하는 거 같았어요.”
“날 걱정해? 케인이? 왜?”
“차 안에서 아줌마에게 못 되게 대한 게 마음에 밟혔나 봐요. 그 녀석 철이라도 든 걸까요?”
내 말에 조니 아줌마는 하하 호호하며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라니까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목을 뚫어버리는 음성 틱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니 아줌마는 말없이 요리를 시작하려는 듯 앞치마를 꺼내 허리에 둘렀다. 먹고 싶은 거 있니?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던 조니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라자냐가 먹고 싶어요.”
조니 아줌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냉장고와 식료품장에서 라자냐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시금치랑 크림치즈 베이스는 어떠니?”
“전 아줌마가 만든 음식이라면 그 어떤 재료로 써도 좋아요.”
내 말에 조니 아줌마는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옷을 만드는 걸 구경하던 나는 조니 아줌마가 요리를 하는 걸 구경한다. 아줌마는 요리하는 걸 절대 시키지 않았다. 그저 구경만 하게 했다. 내가 하면 사고가 날 게 뻔하니까. 나도 아줌마의 집에 불을 낼 생각 따위는 전혀 없거든. 이유를 알기 때문에 불평불만 따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보는 게 또 얼마나 재미있는데. 일 때문에 바쁜 부모님을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니 아줌마가 무언가를 만드는 걸 구경하는 게 훨씬 재미있기도 하니까.
늘 그렇듯 지거스 가족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케인 지거스는 내게 왜 또 집에 와있냐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사람이기에 이 녀석도 내 존재를 익숙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족도 아닌 애가 왜 식탁 자리를 차지하냐고 불만이었지만, 이제 케인 지거스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한다.
“맛있냐?”
케인 지거스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먹는 상태에서 대답을 하게 되면 입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나올 수 있으니까 밥을 먹을 때는 말로 하는 대답 대신 고개로 대답을 한다.
“엄마, 나는 라자냐 별로 안 좋아하는데. 또 미글린 잭이 만들어 달라고 했지.”
“케인, 너는 이 엄마를 도와주지 않잖아. 그러니까 날 도와주는 재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줘야지. 안 그래 재키?”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 지거스, 네가 조니 아줌마를 도와준다면 조니 아줌마는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었을 거야! 그런데 넌 조니 아줌마를 돕지 않고 말을 안 듣고 미운 짓만 하니까! 그러니까 조니 아줌마는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지 않는 거라고!
“내일 치킨 스튜요.”
케인 지거스가 말했다.
케인 지거스, 내가 30불 줄 테니까 조니 아줌마 시키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사 먹고 와. 30불이면 그 치킨 스튜 여섯 번은 먹는다고!
“그래, 내일은 치킨 스튜 해줄게.”
역시 엄마는 엄마였다.
우리 집 불이 켜져 있었다.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명이 돌아왔나 보다. 나는 케인 지거스를 뺀 지거스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불은 켜져 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방으로 갔다. 방에 딸린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르겠지만 저 왔어요. 조니 아줌마가 라자냐를 만들어줬어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지거스 가족에게 신세 끼치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매일매일 내가 조니 아줌마 집에 놀러 가니 미글린 잭이 아닌 미글린 지거스가 된 기분이 들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미글린 블루 지거잭이 되지! 하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왔니?”
안방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샤워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빠겠지? 나는 안방을 빠져나갔다. 엄마의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있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대화를 하지 않고 바로 자게 해 주지.
하지만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내일 비앙카가 내 얼굴을 보면 놀라겠지? 케인 지거스가 내 얼굴을 보면 놀려대겠지? 시뮬레이션을 하듯 내일 일어날 상황들을 상상했다. 그 상상은 머지않아 와장창 깨져버렸다.
“당신, 감히 내게 물건을 던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엄마 아빠는 부부싸움을 시작했다. 폭력을 가할 수 없어 물건을 던졌고, 그 물건이 거울을 맞춘 듯 거울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보기 좋은 부부의 모습이었는데 내 눈앞에서만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궁금하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케인 지거스에게 전화 거는 걸 택했다.
졸린 목소리의 케인 지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엄마랑 아빠 싸우는 ‘젠장’거 같아서.”
“대피할래?”
“너네 집으로?”
“어. 네가 갈 곳이 어디 있겠냐. 비앙카 레인 집이 있다고 해도 늦은 시간에 친구가 집에 오는 거 좋아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
“아니, 됐어. 늦은 밤에 오는 건 아줌마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럼 왜 전화한 거야?”
“실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우리 집에 방문해서 싸움을 말려주길 바라지만 뭐…… 나도 염치라는 게 있지.”
“그럼 네 뜻대로 해. 나는 상관없어.”
퉁명스러운 음성의 케인 지거스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미간을 구기고 내 방에서 보이는 케인 지거스의 방을 째려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행동 틱이 나와버렸고,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아, 케인 지거스……! 나는 케인 지거스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4
비앙카는 내게 영화티켓 두 장을 건넸다. 극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비앙카가 우수 직원 상으로 받은 포상이라고 했다. ‘겨우.’ 그리고 그 포상 두 장이 비앙카에게는 겨우 밖에 되지 않는다.
“보러 가자.”
비앙카의 말에 나는 미간을 구겼다.
“내가 어떻게 극장에 가. 사람들이 싫어해.”
내 말에 비앙카는 영화표를 찢는 시늉을 보였다.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팔아. ‘젠장’ 그리고 그 돈으로 DVD나 보자. 어차피 우리가 볼 영화는 정해져 있잖아. 숀 블루! 그러니까 어디서 보든 상관없잖아, 안 그래?”
내 말에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걸 반납하고 팝콘이나 받아올까? 콜라나 팝콘이나 만우절 이벤트처럼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 오는 거야. 하루 종일 배 터지게 먹어도 남을 정도로!”
로맨스 영화를 볼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팝콘을 먹을 생각 때문이었을까 비앙카는 생각보다 많이 들떠 있었다.
“젠장!”
나는 그런 비앙카의 기대에 찬물을 부었다.
“그래, 알았어. 그러면 8시에 우리 집에 와. 나 아르바이트 끝나고 팝콘이랑 콜라 들고 갈게. 네가 DVD 빌려 놔. 재미있는 걸로 알았지?”
나는 고개를 한 번 획 돌렸다.
“미안, 틱.”
내 말에 비앙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스쿨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스쿨버스에 올라탔고, 버스 기사인 제임스에게 인사와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제임스, ‘젠장’ 안녕하세요.” 내 말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글린, 너도 안녕.” 제임스와 해밀턴 교장을 포함한 학교 내의 어른들은 나를 재키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쿨버스 자리가 꽉 찼지만 내 옆은 빈자리였다. 내 욕을 듣고 싶지도, 내 주먹맛을 보고 싶지도 않은 건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 옆에 교정기를 낀 더벅머리 지미가 앉았다. 하지만 지미는 내게 인사하나 하지 앉았다.
이 녀석도 날 무시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지미 녀석을 무시했다.
아, 맞다! DVD 빌리러 가야 되는데!
“제임스 나 내려야 돼요!”
내 말에 제임스는 문을 열었고, 나는 스쿨버스에서 빠져나왔다. 스쿨버스는 떠났고, 나는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로 향했다.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는 케인 지거스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이다. 다행히 오늘은 케인 지거스가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또 졸업반 녀석들이랑 놀러 가기라도 한 건가……? 케인 지거스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그 녀석에 대해 왜 궁금해해?
“크리스, 숀 블루 영화 새로 나온 거 있어요?”
데스크에 앉아 테트리스를 하던 수염 쟁이 크리스에게 물었다.
크리스는 테트리스 창을 끄고 DVD 목록에 숀 블루를 검색했다. “음…… 가장 최근 게 그 남자와 또 하나의 킬러.”
“그거 봤어요.”
“넌 본 것도 또 보지 않아?”
크리스의 말은 정답이다. 숀의 영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의 얼굴이 예술이고 얼굴만 봐도 재미있는데 재미가 없거나 한 번만 보고 끝낼 리가 없다. 그런 얼굴은 여러 번 봐줘야 된다고! 나는 로맨스 영화가 있는 코너로 가 숀의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어, 이거 보면 되겠다.”
나는 다섯 번이나 보았던 숀의 사람의 영혼 DVD를 꺼냈다. 이번에 보면 여섯 번째 보는 거다. 나는 행동 틱이 나와 DVD를 던질까 봐 손에 힘을 주었다. 다행히 DVD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DVD로 책장을 몇 번 쳐버렸다. 크리스는 단골인 나를 이해해 주었다. 처음에는 이런 내 행동에 당황해 나에게 혼까지 내버렸었다. 억울한 마음에 다음 날 엄마와 함께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를 찾아 크리스에게 명함을 주고 나니 자신이 더 미안하다며 내게 DVD 무료 관람 상품권까지 만들어줬었다. 크리스는 보기에는 험상궂게 생겨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크리스, 케인 지거스는 오늘 아르바이트 안 하는 날이에요?”
“그 녀석, 친구들이랑 어디를 좀 가야 된다고 오늘 대신해 달라고 했었어.”
“이상한 졸업반 녀석이랑 어울려 다니더니 아르바이트도 빠지고……”
“십 대잖아. 재키. 넌 오늘 또 네 친구랑 같이 영화 보려고 하는 거니?”
“당연하죠.”
나는 아저씨에게 영화 카드와 아저씨가 만든 무료 관람 상품권을 건넸다. 돈이 궁할 때마다 무료 관람 상품권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지금이 딱 그때다.
“마지막으로 이 상품권을 사용했던 게 2년 전 같은데, 아직도 남은 거야?”
“네, 세 장 남았어요. 숀 콘서트 때문에 돈을 아껴야 돼서 조만간 다 쓸 거 같아요.”
“그래.”
크리스는 서랍에서 펀칭기를 꺼내 무료 관람 상품권에 구멍을 뚫고, 펀칭기와 함께 서랍에 넣었다.
“다음 주까지 가져와. 아, 케인에게 건네줘도 괜찮고.”
크리스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케인 지거스의 집에 갔을 때 몰래 케인 지거스 가방에 DVD를 넣으려고 했다. 이미 수차례 시도해 본 전적도 있고, 케인 지거스는 처음에만 성질을 내더니 이제 익숙해진 듯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를 나와 집으로 걸었다. 가방에는 DVD가 있었고, 주머니에는 나를 처음 보고 놀란 사람들에게 전해줄 명함이 몇 장 들어있었다. 나는 손에 힘을 풀고 걸었다. 손에 힘을 주다가 옆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먹질을 할 수 있으니까. 손에 힘을 풀고 걷는 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집이 보였다. 우리 집의 불은 꺼져 있었고, 조니 아줌마의 집은 불이 켜져 있었다. 조니 아줌마가 옷을 만들까, 케인 지거스가 좋아하는 치킨 스튜를 만들까 내 궁금증을 돋궜지만 오늘은 조니 아줌마의 집에 가지 않았다. 아무리 조니 아줌마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매일 가는 건 좋지 않지.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비앙카의 집에 가야 되니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비앙카는 팝콘을 먹으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낸 비앙카의 눈가에는 피곤함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런 비앙카의 피곤함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숀의 얼굴을 보면 피곤함 따위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내일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니까 밤새서 볼 수 있어!
“또 그거 빌려온 거야?”
“왜 너 이거 좋아하잖아.”
“나 며칠 전에 그거 봤거든.”
“혼자?”
“어, 혼자.”
“그래도 뭐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게 숀의 얼굴이니까 더 봐도 되지?”
“그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앙카는 노트북에 CD를 넣었다. 그러더니 폴더 하나가 떴고, 비앙카는 폴더 안에 있는 영상 파일을 클릭했다. 노트북을 가득 채우는 영상 화면이 보임과 동시에 우리는 영화에 빠져들었다.
두 시간이 지난 끝에 영화가 끝이 났다. 로맨스 영화 치고는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숀의 얼굴 때문인지 영화가 금방 끝난 기분이 들었다. 비앙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고, 코에는 콧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아, 더러워. 나는 휴지를 뽑아 비앙카에게 건넸다.
“고마워.”
“며칠에 이렇게 질질 짜면서 본 거야?”
“질질 짠다가 뭐야, 슬프니까 울 수밖에 없잖아. 그럼 넌 울지도 않고 감정이 메마른 거야?”
나는 비앙카의 질문에 실소를 터트렸다.
“나 말이지, 재키. 정말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비앙카의 말에 나도 동감했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어. 그런데 누가 나와 저런 사랑을 하려고 할까? 나라도 싫을 거야 비앙카! 너라면 응원해 줄 수 있어! 내 생각을 방해하는 건 비앙카의 흐느끼는 음성이었다.
“너는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어?” 비앙카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했다.
“음,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야.”
비앙카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나는 줄리엣이 아니었다. 그들 같은 사랑을 한 적도 없고, 그들 같은 사랑은 내 인생에서 없을 거 같다. 그냥 돈을 많이 모아서 비앙카랑 실버타운에 가야 되나 생각해 본 적도 많다.
“에이, 그러지 말고. 네 진짜 사랑에 대해 상상해 본 적 있어?”
어느새 진정을 찾은 비앙카가 내 두 눈을 보며 물었다. 진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상상은 많이 해봤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숀의 사람과 영혼처럼 비극적인 사랑은 아니었지만.
“어, 네 표정 보니 있는 거 같은데? 어떤 거야? 응?”
비앙카가 물었다.
비앙카는 날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말할 때까지 날 부담스럽게 쳐다볼 기세였다.
그래, 알았어, 말해 줄게 나 좀 그만 쳐다봐, 비앙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