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미글린 잭 5

내가 좋아하는 졸업반의 루카스 주니어

by 곽동배

5

캐비닛에 쪽지가 있었다. 또 나의 팬 픽션을 잘 봤다는 쪽지일까? 나는 쪽지를 펼쳐보았다. 그런데 그 쪽지에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글이 적혀있었다. ‘변태’왜 내게 변태라고 하는 거지? 나는 쪽지의 내용에서 의문이 들었다. 포르노 한 번 본 적이 없는 내가 변태라고? 쪽지의 주인을 찾고 싶었다.

캐비닛을 닫았다. 복도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 맞이했던 시선과는 달랐다. 따가웠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캔디스가 보였다. 나는 캔디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캔디스, 안녕.” 하지만 캔디스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나를 무시했다. 어제 우리가 겪은 것들은 그저 한낮의 꿈이라도 되는 듯 캔디스는 어깨로 내 어깨를 치고 가버렸다. ‘젠장’ 생각하지도 말라는 듯 음성 틱이 나왔다. 젠장. 나와 캔디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잘해주었던 캔디스가 이렇게 차갑게 변해버린 거지? 나는 학생들의 시선보다 캔디스의 행동이 더 궁금했다.

“캔디스, 캔디스.”

어느새 복도 끝까지 간 캔디스의 이름을 부르며 캔디스를 따라잡았다.

캔디스는 대답 없이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무슨 일이 긴. 네가 더 잘 알 텐데.”

캔디스는 내게 문제를 남겨놓은 채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캔디스가 낸 문제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캔디스를 포함한 이들이 나를 차갑고 날카롭게 쳐다보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악.”

주먹이 날아갔다.

“젠장!”

욕이 나왔다.

당황한 탓일까 투렛이 점점 심해졌다. 클로자핀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건너갔다. 식당에서 케인 지거스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케인 지거스.”

“왜.”

케인 지거스는 캔디스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같았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내가 이름을 부른 이유를 궁금하지 않은 듯 되묻지 않았다. “간다.”라는 말만 남겨놓은 채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케인 지거스는 이 일을 모르는 듯 보였다.

식당을 나와 교실로 가는 길에 루카스와 마주쳤다. 루카스,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기도 무섭게 루카스가 나를 아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무슨 일 때문에 루카스까지 내게 이렇게 대하는 걸까? 너무 궁금했다. 비앙카의 마음에 대한 퀴즈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땅을 보며 걸었다. 교실에 가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도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재키…… 아니, 미글린 잭.”

내 이름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치켜드니 제이미가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어? 왜?”

“너 루카스 좋아한다며.”

제이미의 물음에 대답 없이 음성 틱을 뱉어냈다.

“욕을 한 거니, 투렛이니.”

“미안, 음성 틱이…….”

“그나저나 루카스를 좋아하면 그냥 조용히 좋아하면 되잖아. 변태처럼 이상한 글을 써 댈 필요 없잖아.”

제이미의 말에 캐비닛 속 쪽지의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너였구나, 내게 변태라는 쪽지를 쓴 사람이.

“무슨 말이야, 그게.”

내 말에 제이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바쁘게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내게 핸드폰 속 무언가를 보여줬다.

세인트 레거시 고등학교 교내 작가 블루의 비밀!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그리고 내용은…… 블루가 쓴 팬 픽션인 내가 사랑한 졸업반의 프롬 퀸의 남자 주인공은 숀 블루가 아닌 졸업반의 루카스 주니어이고 여자 주인공은 미글린 잭 자신이다!

숨을 가쁘게 몰아 쉬었다.

그래서 모두 나를 그렇게 쳐다봤구나. 캔디스도. 루카스도. 루카스의 그 시선은 경멸과 혐오를 넘어섰다. 루카스의 그 시선은 잊지 못할 정도로 뇌리에 깊게 박혀버렸다. 꺼낼 수도 파낼 수도 없을 정도로 깊었다.

“사실이야?”

제이미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이면 뭐 어쩔 건데. 이미 사실인 거 알고 있잖아. 잔인하게 되물을 필요 없잖아.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저 비겁한 변명으로 알아들을 거면서. 내게 핸드폰을 들이미는 제이미를 어깨로 밀치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는 사이에도 시선이 느껴졌다.

갈 곳 없이 목적지 없이 학교를 탈출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나는 땅만 보고 무작정 걸었다. 머릿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누가 그 글을 쓴 거지? 왜 날 괴롭히는 거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일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의 끝을 보게 하기 위해 그런 폭로를 해버린 걸까?

“아……”

땅만 보고 걷던 나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제발 나를 혐오와 경멸의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길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너구나.”

내가 말했다.

“뭘.”

비앙카가 말했다.

“그 글을 쓴 사람 너잖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너잖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너는 나한테 왜 그러는데.”

비앙카는 지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너한테 잘못한 적 없어. 나는 네가 소외되지 않게 평소보다 널 챙겼지만 그런 나를 피한 건 너라고. 나는 너에게 잘못한 적 없어. 널 기다렸어, 나는.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뭘.”

“너는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너 밖에 몰라. 난 그런 너의 모습을 보고 난 후부 터 너라는 사람이 지긋지긋해졌어, 미글린 잭.”

비앙카의 말보다 내 이름을 재키가 아닌 미글린 잭이라고 부르는 게 더 상처였다.

화가 났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비앙카 레인이 나에 대해 몰랐고 나에 대해 오해를 해버렸고 나의 비밀을 공개해 버렸다.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손은 주먹을 쥐었고, 비앙카 레인의 얼굴로 향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지만 샘통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맞은 비앙카 레인의 코에서는 코피가 흘렀다. 비앙카 레인은 손으로 코를 스윽 닦았다. 코피를 보자마자 머리에 핀트가 나간 듯 양손으로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나도 질 수 없다. 비앙카 레인의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먼저 놓는 사람이 지는 거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음성 틱이 나와버렸지만 나의 음성 틱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누가 이 싸움에서 승자가 될까 그게 더 중요했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학교를 나와 우리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로 들어보면 적어도 서른 명은 넘는다. 핸드폰 소리도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동영상 촬영이 빠지면 섭섭하지. 빌어먹을 SNS 시대에 이런 싸움은 바보 같은 웃음거리가 된다. 빌어먹을 와이파이. 갑자기 꺼져서 저 녀석들 데이터를 다 갉아먹어. 와이파이는 여전히 빵빵하게 터지는지 여전히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싸움을 구경할 뿐 아무도 우리의 싸움을 중재하지 않았다.

“이게 진짜, 놔, 놓으라니까?”

비앙카 레인은 내게 놓으라고 했지만 자신은 놓지 않았다. 나는 이 머리끄덩이 잡기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비앙카 레인의 머리를 다 뜯어 놓는 한이 있더라도 지고 싶지 않다. 싸움을 하는 순간에도 ‘차라리 내게 죽음을’이라는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만하지 못해!”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목소리를 가진 학생은 없다.

선생은 있지.

해밀턴 교장이 나와 비앙카 레인의 싸움을 중재했다. 비앙카 레인이 먼저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놓았다. 아싸 이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

“미글린 잭, 비앙카 레인. 지금 당장 교장실로 따라와!”

나와 비앙카 레인은 아무 말 없이 신경전을 펼치며 해밀턴 교장의 뒤를 따라갔다. 그 와중에 음성 틱과 행동 틱이 나왔다. 욕설은 음성 틱을 가장한 나의 진심이 담긴 욕설이었고, 행동 틱으로 비앙카 레인을 때리고 싶지만 맞지 않아 아쉽기만 했다.

교장실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둘이 왜 멀뚱멀뚱 서 있어? 앉지?”

해밀턴 교장의 말에 나와 비앙카 레인은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길래 둘이 싸운 거지? 내가 알기로는 둘이 베스트 프랜드인데.”

해밀턴 교장은 유도신문을 못한다. 이런 실력으로 형사는 꿈도 꿔서는 안 되겠다.

“비앙카 ‘젠장’ 레인한테 물어보세요.”

내 말에 해밀턴 교장은 코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목을 큼큼 가다듬고 비앙카 레인의 이름을 불렀다.

“비앙카 레인. 미글린 잭의 심술궂은 태도로는 더는 대화가 무리 같구나. 그러니 무슨 일이 있길래 학교가 떠내려가도록 싸우고 소란을 피웠는지 네가 말해줘야 될 거 같구나.”

해밀턴 교장은 나를 공격했다.

“미글린 잭이 먼저 주먹으로 제 얼굴을 때렸어요.”

“뭐라고? 정말이니?”

“투렛이에요, 투렛. 투렛 때문에 모르고 주먹이 나온 거예요. 사과할 틈도 없이 비앙카 ‘젠장’ 레인이 내 머리를 잡았다고요!”

내가 소리쳤다. 왜 자꾸 비앙카 레인의 이름 중간에 음성 틱이 나오는 거지? 비앙카 레인의 새로운 미들 네임이라도 되는 듯이.

“네 투렛 때문에 실수로 비앙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면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할 수 있지, 미글린 잭?”

하지만 사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 비앙카 레인이 우리의 비밀에 대해서 폭로했다고요! 나는 잘못 없어요. 비앙카 레인은 내 주먹에 몇 번이고 맞아도 된다고요! 또다시 주먹이 쥐어졌다. 해밀턴 교장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을 거 같은 기분에 나는 주먹으로 내 허벅지를 치기 시작했다.

“너 뭐 하니, 미글린 잭.”

“행동 틱이 나올 거 같아서요.”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비앙카 레인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물론 해밀턴 교장도 마찬가지였다. 해밀턴 교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나와 비앙카 레인에게 3일 정학이라는 말을 한 채 우리를 교장실에서 내보냈다.

“너 때문이잖아.”

비앙카 레인이 말했다.

사실은 나 때문이 아니라 비앙카 레인 때문인데. 비앙카 레인은 모든 잘못을 회피했다. 숀 블루 팬 픽션의 가면을 쓴 루카스 주니어의 팬 픽션은 비앙카 네가 쓰자고 했고, 나는 네게 잘해주었고 너를 챙겨주었지만 나를 피한 건 비앙카 레인이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어? 비앙카 레인에게 물었지만, 비겁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로 내 어깨를 밀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옷에 코피가 범벅된 우스운 꼴의 비앙카 레인을 보면서 머리만 헝클어진 내가 낫다 생각하며 교실로 향했다.

내가 교실에 등장하자 당황한 밀러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학생들은 나를 보자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캔디스도 있었고 제이미도 있었다. 루카스와 케인 지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글린, 뭐 하는 거니? 집에 가려고 하는 거니?”

밀러 선생님이 물었다.

“정학받아도 가방은 들고 가야 되지 않겠어요?”

내가 생각해도 마지막 말은 꽤나 멋있다.




6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집에서 팝콘을 먹으며 숀의 영화를 보고 엄마 아빠가 회사에 갈 때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겨우 3일 정학이었지만 밤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 기분이다.

정학 첫날 케인 지거스가 문을 두들겼다. 조니 아줌마의 심부름일까? 케인 지거스가 다른 이유로 집 문을 두들긴 건 처음이었다.

“왜”

“무슨 일인가 해서.”

케인 지거스는 어울리지 않게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 너도 아는 거 아니었어? 묻지는 않았다. 그냥 매우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케인 지거스와는 별다른 얘기 없었다. 괜찮다는 말을 하고 더 이상 묻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죽을 날이 다가온 걸까? 케인 지거스는 평소보다 달랐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건 매우 고욕적인 일이었다.

왜 오늘이 금요일일까, 차라리 4일 정학을 주면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왜 해밀턴 교장은 나에게 고작 3일 정학을 준 것일까. 답은 없었다. 해밀턴 교장에게 찾아가 묻고 싶지는 않았다.

내 캐비닛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심지어는 교과서에도 낙서가 적혀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변태 믹, 변태 머글 이 정도의 욕이었다. 나는 세인트 레거시 고등학교의 특별 학생이고 이런 내게 더 심한 욕을 하게 되면 정학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모두 선을 크게 넘지 않았다. 낙서가 가득한 캐비닛에서 낙서가 가득한 교과서를 꺼냈다. 손이 떨려서 주먹으로 허벅지를 세게 때렸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고 바지를 벗으면 피멍이 들 정도로 세게 여러 번 때려 댔다. 허벅지의 상태는 집에 가서 봐야지. 멍이 얼마나 들었을까.

지난번처럼 가방을 챙기고 나가버릴까 비앙카 레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꽂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싸움이나 해볼까 생각했다. 이러면 또 정학받겠지? 그냥 정학도 아니고 이번에는 일주일 정도의 정학이나 줄까? 일주일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일주일이 겨우라고 생각 든다면 한 달이어도 좋고 1년 정학이어도 좋다. 아, 일 년 정학이면 졸업은 못 하겠다. 못해도 좋다. 어차피 난 대학은 가지 못하니까 고등학교 따위 중퇴해도 아무 상관없다. 뭐, 물론 엄마랑 아빠가 속상해하겠지만.

내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속삭인다고 하기에는 매우 큰 소리였다. 귀먹은 밀러 선생님만 듣지 못하는 소리. 걸걸한 목소리. 내가 듣기에는 제이미 콜린스의 목소리다. 제이미 콜린스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난 제이미 콜린스가 의심되니 저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이미 콜린스라고 치자. 제이미 콜린스는 옆에 앉은 사람에게 뾰족한 연필이 있냐고 묻지만 옆에 앉은 사람은 요즘 누가 연필을 들고 다니냐고 말한다. 그 말에 내 필통을 보자 뾰족한 연필부터 몇 번 써서 뭉툭해진 연필 그리고 심이 부러진 연필까지 총 세 자루가 있었다. 나는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뾰족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악!”

누군가가 내 머리로 뾰족한 연필을 던졌다. 그 연필은 내 머리통을 정곡으로 찔러버렸다. 내 소리가 너무 큰 모양인지 학생들을 포함한 귀먹은 밀러 선생님까지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이 싫었지만 더 싫은 건 나를 보며 비웃는 제이미 콜린스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내 머리를 맞고 땅바닥에 나뒹굴어진 연필을 들고 제이미 콜린스 앞으로 한걸음에 다가갔다. 제이미 콜린스는 내 행동에 당황한 듯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 모습이 매우 흉했다. 비웃고 싶지만 웃음을 삼켰다. 그대로 제이미 콜린스의 책상에 내 머리통을 찌른 연필을 올려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행동 틱을 보이지 않으려고 주먹을 있는 힘껏 꽉 잡으며 겨우 참아냈다. 내가 자리에 앉은 후에도 교실 안은 침묵이 오갔다. 이 침묵을 깨야 되는 건 수업을 진행해야 되는 밀러 선생님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을 빠져나가는 학생들과 다르게 나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다가 교실을 나갔다. 밀러 선생님이 나를 부를 줄 알았는데 밀러 선생님은 내게 관심하나 없는 듯 보였다.

교실을 나온 나는 캐비닛으로 곧장 걸었다. 캐비닛에 책을 넣고, 책을 꺼내고 고개를 땅에 처박은 상태에서 캐비닛 문을 닫았다. 책을 든 왼손에 틱이 나와 책을 떨어트렸다. 무릎을 굽혀 책을 줍는데 내 눈앞에 신발 코가 보였다. 누구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줍기도 전에 고개를 추켜올렸다.

“……”

루카스다.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학생들이 나를 째려보고 욕하고 손짓하는 거보다 루카스가 나를 경멸하고 혐오의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가장 참을 수 없었다. 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루카스의 표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화장실에 숨어버렸다. 혹시나 루카스를 마주칠까 하고. 마른세수라도 하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에 손톱자국이 나버렸다. 너무 세게 주먹을 쥐었나 보다. 손톱이라도 깎아야 되나…… 앞으로 주먹을 세게 쥘 일이 많아질 거 같은데.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숨는 건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토커가 따라다니는 건지 화장실에 숨어있는 도중 물벼락에 맞아버렸다. 언제 물벼락을 맞을까 우산이라도 매일 쓰고 다녀야 되나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우산도 없이 맞으니까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밖에 껄껄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가 매우 기분 나빴다. 늪지대의 마녀의 웃음소리였다. 제이미 콜린스의 걸걸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곳을 엿들었다. 사실 엿듣기보다는 들리는 그대로 들었다.

“멍청한 미글린 잭, 네가 루카스 주니어를 넘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화장실 밖의 저 여자애는 루카스 주니어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그럼 범인을 추려 내기 힘들다. 세인트 레거시 고등학교에서 루카스를 좋아하지 않는 여학생을 찾는 게 더 쉬울 테니까. 아,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루카스에게 관심 없는 비앙카 레인은 물벼락의 범인이 절대 아니다.

물 맞은 생쥐꼴로 화장실을 나오니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물벼락을 맞는 순간부터 이 시선은 예정된 것이었다. 내 몸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복도는 미끄러워졌고 청소부인 렉터 아저씨는 청소할 게 더 늘어났다며 짜증을 냈다.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몇몇은 나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기 바빴고, 몇몇은 눈살을 찌푸렸고, 몇몇은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듯 내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땅바닥에 처박은 고개를 들고 교실을 향해 걸었다. 교실에서도 이 시선은 끊이지 않았다.

“미글린 잭.”

내 우스운 꼴을 본 케인 지거스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다가왔다.

자리에 앉은 나는 고개를 들에 케인 지거스를 쳐다봤다.

“뭐야, 이거.”

“뭐가. ‘젠장’ 물에 젖은 거잖아, 안 보여?”

케인 지거스에게 평소처럼 틱틱거리며 말했지만 케인 지거스는 평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이 때문이었을까 긴장이 풀려 음성 틱과 행동 틱이 끊임없이 봇물 터지듯 나와버렸다. 미친 듯이 욕을 내뱉었고 미친 듯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면 자해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했다. 나를 보고 중얼거리던 학생들은 내 행동에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교실은 내 욕설만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세인트 레거시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미글린 잭을 걱정하던 케인 지거스는 내 머리에 자신의 재킷을 올리고, 나를 데리고 교실 그리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주차장에 세워진 케인 지거스의 차에 올라탔다. 날 한 번도 태워주지 않더니 이럴 때 타는 게 우스웠다.

“너 집에 가는 게 낫겠다. 너희 집 가면 아무도 없으니까 우리 집 갈래?”

대답하고 싶었지만 음성 틱이 나를 지배한 듯 ‘어.’라는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대답 없이 음성 틱에 조종당하자 케인 지거스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하기 시작했다.

조니 아줌마에게서 옷을 건네받은 나는 샤워를 하고 케인 지거스의 침대 위에 누웠다. 조니 아줌마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조니 아줌마 뒤로 케인 지거스가 보였다. 케인 지거스는 문 뒤에 서서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케인 지거스에게 입모양으로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러자 케인 지거스도 이내 안심이 되었는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케인 지거스는 내게 방을 뺏겨버렸지만 불평불만 따위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나도 케인 지거스가 아프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케인 지거스에게 내 방을 내줘야 되나……?




7

며칠 사이에 투렛이 심해졌다. 조니 아줌마 집에서는 괜찮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학교를 가려고 하면 두려움 때문인지 나 자신을 너무 심하게 때리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엄마와 아빠에게도 심한 욕을 해버렸다. 평소와 같은 ‘아, 어, 젠장’ 이 정도의 음성 틱은 절대 아니었다. 이제 내가 미쳐버리는 건가 생각했다. 미친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두렵기도 했다. 투렛이 더 심해지고 이제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 건가. 욕도 평소보다 더 심하고 행동 틱은 나와 타인을 공격하고. 나는 이런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줘.”

나는 내가 미친 줄 알았을 거다.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내가 정말 미쳐버린 줄 알았을 거다. 엄마는 내 상태가 심각한 건 알고 있었지만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주지는 않았다. 그게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되는 듯 엄마는 내가 자존심을 잃는 걸 원하지 않았다.

“엄마, 제발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줘.”

다시 한번 말했지만 엄마에게는 내 알량한 자존심이 더 중요해 보였다.

“재키, 학교에 전화할 테니까 오늘은 집에서 푹 쉬어. 아니면 옆집에 가 있을래?”

엄마의 말에 나는 정신병원 대신 조니 아줌마의 집에 가는 걸 택했다.

조니 아줌마의 평소와 다를 거 없는 따뜻함으로 나를 반겼다. 오늘은 예쁜 옷을 만들지 않고 내게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준다며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집에 있는 온갖 베이킹 도구와 재료를 꺼냈다. 내가 조니 아줌마의 집에 갔을 때 도구와 재료들은 보기 좋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조니 아줌마는 나를 의자에 앉게 했다. 내 도움은 필요 없어 보였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학교를 가지 않은 케인 지거스와 게임을 시작했다.

“바보 같은 미글린 잭.”

게임에서 진 케인 지거스는 내게 화풀이를 하는 듯 바보 같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그런 말에는 상처를 받지 않았다. 어차피 케인 지거스에게는 내가 더 많이 상처를 줬기도 하고 게임에서 진 바보 같은 사람은 원래 상대방을 원망하기도 하잖아? 케인 지거스가 딱 그런 사람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게임에 미쳐버린 열두 살짜리 남자 애.

나는 케인 지거스를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케인, 재키 따뜻한 애플파이 다 만들었어. 내려와서 맛 좀 보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조니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케인 지거스의 게임기를 침대에 던져두고 1층으로 내려갔다. 케인 지거스는 마저 게임을 하는지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아줌마는 예쁜 접시에 예쁘게 담긴 애플파이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옆에는 케인 지거스가 먹을 애플파이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내 애플파이가 조금 더 크다. 케인 지거스는 신기하게도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조니 아줌마의 애플파이라도 가장 큰 조각을 탐내지 않는다. 그래서 늘 그 가장 큰 조각은 내 차지가 된다. 엄마에게 조니 아줌마에게 애플파이 만드는 방법을 배우라고 했지만 엄마는 귀찮다며 미루기만 바빴다. 이참에 내가 조니 아줌마에게서 애플파이나 배워볼까? 아참, 투렛이 있는 나는 반죽과 필링을 사방 곳곳에 던질지도 몰라. 드디어 케인 지거스가 내려왔다. 케인 지거스는 더 작은 애플파이가 앞에 앉았다.

조니 아줌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와 케인 지거스의 손을 잡고 식사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애플파이를 먹기 전에 하는 기도라니…… 케인 지거스 또한 조니 아줌마의 행동에 의아한 듯 보였다.

두 눈을 감은 조니 아줌마를 쳐다보다가 나도 두 눈을 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식사 기도문을 외웠다. 사실 입모양으로 따라 하기만 했다. 그 순간 행동 틱이 나왔지만 케인 지거스가 힘을 주며 내 손을 잡은 탓일까, 조니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평온해 보였다. 나는 눈을 뜨고 케인 지거스를 쳐다봤지만 케인 지거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여전히 내 왼손을 잡은 케인 지거스의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양손에서 힘이 풀렸다. 식사기도문을 끝낸 조니 아줌마는 미소를 짓으며 이제 먹자고 했다. 나는 던져도 아프지도 않은 미글린 잭 전용 플라스틱 포크를 들고 애플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반 정도 먹었을 때 케인 지거스의 애플파이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엄마, 어제 먹던 피자 남았지.”

케인 지거스는 조니 아줌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어 먹다 남은 피자를 꺼냈다. 야, 먹지? 케인 지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 지거스는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주방을 빠져나갔다.

이 주방에서 침묵 따위는 없었다.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조니 아줌마와 사소한 얘기를 하며 떠들어대기 바빴지만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비앙카 레인의 이야기를 했겠지만 오늘 나의 사소한 이야기에는 학교와 비앙카 레인이 빠졌다. 빈자리를 케인 지거스로 채웠다.

“케인 지거스가 요즘 달라진 거 같더라고요.”

피자가 알맞게 익었는지 전자레인지에서 울리는 경쾌한 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피자의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나와 조니 아줌마의 시선은 전자레인지에 갔지만 엉덩이에 풀이라도 붙인 듯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케인 지거스가 피자를 꺼내라는 뜻이었다. 조니 아줌마는 나를 쳐다보고 다음 이야기를 하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평소라면 게임기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을 텐데 그 게임기를 제게 건네줬다니까요? 며칠 전에는 웃어주기까지 하고.”

“그래? 케인이 재키를 좋아하는 건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피자를 꺼내기 위해 2층에서 내려온 케인 지거스가 날카롭게 조니 아줌마에게 쏘아 댔다. 케인 지거스 내가 그렇게 싫은 거야? 천사 같은 조니 아줌마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할 정도로? 케인 지거스는 전자레인지 앞으로 가 피자를 꺼내고 뜨거운 그릇을 장갑도 없이 잡았다. 뜨거운지 ‘아악!’ 소리가 들렸다. 케인 지거스는 옷소매를 장갑 삼아 피자를 꺼내 주방을 빠져나가려던 찰나에 조니 아줌마가 손가락을 튕기며 케인 지거스를 붙잡았다. 케인 지거스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니 아줌마는 눈빛을 보냈다. 자리에 앉아서 먹어. 3개월 먹은 강아지가 어미 개한테 혼나듯 케인 지거스는 피자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조용히 의자를 뒤로 빼 의자에 앉았다. 다시 식사기도문이라도 외워야 되나…… 조니 아줌마는 애플파이를 나누던 케이크 서버로 피자를 나누고 우리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케인 지거스는 조니 아줌마의 눈치를 보기라도 하는 듯 조니 아줌마가 피자를 먹을 때까지 피자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난 눈치 따위 보지도 않았다.

죄라도 지은 건지 케인 지거스는 묵묵히 피자만 먹었다. 얼굴을 피자에 처박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피자를 어느 정도 먹은 케인 지거스는 조니 아줌마의 눈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줌마, 엄마는 안 된 대요.”

“뭐가?”

“저 정신병원에 보내는 거요. 아줌마가 대신 절 정신병원에 보내주세요.”

내 말에 조니 아줌마의 주방은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남은 애플파이를 나이프로 썰던 조니 아줌마는 행동을 멈췄고,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케인 지거스는 손가락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야? 케인 지거스도? 에이,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루카스의 경멸과 혐오의 눈빛으로 손짓을 당하고 제이미 콜린스의 날카로운 연필심으로 머리통도 맞고 루카스를 좋아하는 여자 무리에게 물벼락까지 맞았고 심지어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비앙카 레인이 배신해서 부작용으로 투렛도 심해졌는데? 그런 내가 정신병원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여전히 침묵은 가라앉지 않았다. 대신 조니 아줌마는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손은 그새 따뜻해졌다. 이런 게 그리웠던 걸까. 그렇다고 엄마가 내 손을 잡아주거나 날 안아주지 않는 건 아니다. 그냥 조니 아줌마의 따뜻함이 조금 더 좋을 뿐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조니 아줌마의 집에 있었다. 케인 지거스와 마저 게임을 했고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까지 같이 봐주었다. 숀의 로맨스 영화에 푹 빠진 나와 달리 케인 지거스는 지루해하며 하품을 하기 바빴지만 나에게는 역사적인 날과 같았다.

다섯 시가 되고 엄마가 조니 아줌마의 집에 와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집의 공기가 현관문 앞에서부터 느껴졌다. 매우 차가웠다. 늪지대의 마녀의 피부처럼 차가웠다. 얼른 벽난로를 틀어 집을 따뜻하게 만들어야지. 에취. 재채기가 나왔다. 엄마는 나를 한 번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니, 다가오기보다는 재빠르게 난로를 켰다. 내가 난로를 켜면 불이라도 날까 봐? 아니, 엄마는 엄마로서 해야 되는 행동을 한 것뿐이다.

작은 마시멜로 다섯 알이 들어간 따뜻한 핫 초코를 마신 후에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엄마는 내게 저녁 식사를 하라고 했지만 조니 아줌마의 집에서 간식을 너무 많이 먹는 탓인지 배는 고프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일찍 자라고 했지만 일찍 자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고 뜨면 학교에 가야 된다는 게 너무 끔찍했다. 시간이 가는 게 두려웠다. 평생 밥을 먹지 않아도 되니 학교 안 가게 해주세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바보 같은 소원을 빌었다.

아침부터 출근 준비로 분주한 엄마와 아빠에게 또 정신병원에 보내 달라고 말했다. 그 덕분인지 학교도 안 가고 조니 아줌마와 유진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러 갔다. 급하게 잡은 상담이라 짧은 시간만 가능했지만 학교에 가지 않아 다행이다.

“급하게 상담을 해야 될 거 같다고 해서 겨우 시간을 만들었는데 무슨 일 때문이니. 투렛이 심해졌니?”

유진 선생님은 제법 나를 걱정하는 말투였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요”

“괴롭힘이라니. 친구와는 아직도 화해를 하지 않은 거니?”

유진 선생님은 내게 끊임없이 비앙카 레인과의 화해를 요구했지만 나는 비앙카 레인과 화해할 마음이 전혀 없다. 비앙카 레인이 죽을 날이 다가오는 시한부라고 해도……! 나는 비앙카 레인과 화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앙카 레인이 먼저 사과를 하지 않는 이상…….

“잘못한 사람이 먼저 하는 게 맞잖아요. 잘못하지 않은 제가 먼저 화해를 하자고 하면 비앙카 레인은 저를 만만하게 볼 거예요. 유진 선생님은 몰라요. 이 바보 같은 고등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어요. 친구 사이에서도 왕이 있잖아요. 레지나 조지처럼.”

“나는 미글린 네가 이 상황을 잘 이겨낼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난 이겨낼 수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정신병원에 보내 달라고 하겠어요? 엄마 아빠에게도 심지어는 케인 지거스가 있는 자리에서 조니 아줌마에게도 정신병원에 보내 달라고 했어요.”

“조니 아줌마라면 밖에 있는 사람이겠구나.”

“네. 오늘은 조니 아줌마가 제 보호자이자…… 엄마예요, 엄마.”

“그렇구나. 잠시 부인……”

“지거스요.”

“지거스 부인을 불러볼 수 있겠니?”

유진 선생님의 말에 문을 열자 상담실 앞에 서있는 조니 아줌마가 보였다. 엄마는 적응이 됐는지 걱정 없이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패션 잡지를 봤을 텐데 조니 아줌마에게 이런 상담은 처음인 건지 나를 걱정하는 게 표정과 행동에서부터 드러나 있었다.

“조니 아줌마. 유진 선생님이 들어오래요.”

내 말에 조니 아줌마는 유진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미글린, 너는 잠깐 나가 있으렴.”

유진 선생님은 상담실에서 나를 내쫓아버렸다. 나를? 왜? 이 상담의 주인공은 나잖아! 그런데 나를 왜 내쫓는 거지?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나쁜 얘기를 하지 않을까 겁이 났다. 조니 아줌마에게는 늘 좋은 모습,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유진 선생님이 나에 대한 나쁜 말을 해서 조니 아줌마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혹시나 루카스가 봉사를 하러 오지 않을까.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루카스와는 마주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조니 아줌마와 유진 선생님이 벽을 두고 알 수 없는 말을 해댔고 앞에서는 루카스가 올까 봐 고개를 땅에 처박는 게 한심하고 불쌍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조니 아줌마의 표정은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과 달랐다. 바뀌었다. 덜컥 겁이 났다.

상담실에 들어가니 유진 선생님은 내게 다음 상담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대답해 줄 거 같지 않았다.

조니 아줌마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조니 아줌마는 실컷 떠들어대기 바빴지만 나는 긴장이 돼 그 말조차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용기 내서 물어볼까? 용기 내서 무슨 말을 했냐고 물어볼까? 눈치만 보기 바쁜 나 때문에 조니 아줌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힘들면 우리 집에 와. 나는 늘 집에 있어, 재키. 만약 내가 없다면 케인에게 털어놔도 좋아.” 조니 아줌마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안심이 된다. 케인 지거스는 미글린 잭 전담 보디가드라도 된 듯 내 옆에 붙어 다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캔디스 휴스턴의 케빈 코스트너 역을 자처했는데 이번에는 케인 코스트너가 재키 휴스턴의 보드가드를 자처했다. 이제 총알만 날아오면 된다. 케인 코스트너 덕분인지 학교 내에서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케인 코스트너가 들어올 수 없는 여자 화장실이나 여자 탈의실을 제외하고는. 그곳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입이 너무나도 많았다. 케인 코스트너가 없는 곳에서 뱀의 혀를 굴러 대다니 너무나도 비겁했다.

케인이 미글린 잭의 보디가드라도 되는 거야?

왜 그런 애를 보호해?

케인은 루카스 가지고 더러운 팬 픽션을 쓴 게 미글린 잭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

설마 케인 지거스가 미글린 잭을 좋아하는 거야?

문밖의 여자애들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보처럼 그 루머를 듣기만 했다. 케인 지거스가 엄청 기분 나빠할 거야. 나도 나쁘지만…… 그나저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려? 반대로 물벼락을 뿌려버려? 행동 틱을 앞세워서 그 못난 얼굴들에 주먹을 꽂아버려? 풉, 그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안에 누구 있나 봐.”

내 존재를 들켜버렸다.

“거기 누구야.”

여자들은 화장실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칸의 문이 열리지 않자 유치한 여자애들이 문을 마구 흔들어 대며 거기 누구야. 대답해. 문 뜯어 버리기 전에. 라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내게는 매우 공포로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목소리에 비웃었는데 이제는 저 목소리가 두렵다. 늪지대 마녀, 슬랜더맨, 푸른 수염,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존재보다 더 두렵다.

천장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올리자 긴 생머리의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기억은 이제 여기까지다. 아마 기절했을 수도 있고 심장마비로 죽었을 수도 있다. 몇 시간을 기절했거나 죽은 지 몇 시간 됐거나. 앞으로의 일은 내가 깨어난 후 알 수 있겠지.




8

양호실에서 눈을 뜬 후 부모님과 케인 지거스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갔다. 복도에는 사람 한 명도 없었다. 늦은 시간인 거 같다. 난 이번에도 케인 지거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내가 쓰러지고 난 후로 부모님은 내게 더 다정하게 대했다. 원래부터 다정했지만 내 상태가 너무나도 심각하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아버렸다.

엄마는 일을 하루 쉬었다. 회사에서는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거짓말했다. 침대에 누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엄마를 쳐다보다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파 엄마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토스트 먹을래 아니면 시리얼?”

“토스트요.”

내 말에 엄마는 내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눈을 감고 토스트를 만들어올 엄마를 기다렸다.

눈을 감고 나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다음 블루는 그녀와 어떻게 됐을까. 블루는 그녀에게 프롬에 같이 가자고 했을까. 내가 만든 이야기지만 뒤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비앙카 레인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블루는 루카스 주니어였고, 루카스를 생각하면 그 눈빛이 떠오른다.

엄마는 이불 위에 토스트 접시와 오렌지 주스가 올려진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나는 엄마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만든 토스트에 초코시럽을 뿌렸다. 엄마는 눈으로 내 행동 모두를 담기 시작했다. 엄마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운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포크로 토스트를 자르던 도중 엄마에게 정신병원에는 언제 보내줄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행동을 멈췄고 나는 포크로 토스트를 찍어 입에 넣었다. 식빵에게 설탕 옷을 많이 입힌 듯 너무 달았다. 그러자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시선을 토스트에서 엄마의 얼굴로 옮겼다.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나를 안아주었다.

“어, 엄마!”

나를 와락 껴안는 바람에 엄마의 옷에 초코시럽이 묻어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더 세게 안아버렸다. 나도 힘을 주고 엄마를 세게 안으려고 했지만 엄마의 따뜻한 품 때문인지 몸이 나른해졌고 힘이 빠져버렸다.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학교로 갔다. 토스트 사건 이후로 엄마는 내게 네 뜻대로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아빠는 나를 너무 걱정했던 탓일까 반대하지 않았다.

복도를 걷던 나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 시선을 무시하려 애썼다. 박스를 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손톱을 깎아서 손에 손톱자국이 나거나 아플 일은 없다.

커다란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캐비닛 문을 열고 캐비닛 안의 책을 박스 안에 넣었다. 차곡차곡 박스에 산에 산처럼 쌓였고 이걸 어떻게 차 앞까지 들고 가야 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들고 가다가 행동 틱이 나오면 어떡하지? 숨겨진 괴력이 나와서 박스를 던져버리면 어떡하지? 바보 같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무릎을 굽혀 박스를 들어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무거웠다. 발로 끌고 갈까? 짐을 덜어 놓고 한 번 더 올까? 아니야, 그건 폼이 나지 않아.

그때 신발 코가 보였다. 신발 코에 고개를 드니 케인 지거스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케인 지거스는 심드렁한 얼굴과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뭐냐. 그 말에 나는 짐을 싼다고 했다. 그러자 케인 지거스의 미간은 종이짝처럼 구겨졌다. 그리고 박스에 넣어 놨던 책더미를 꺼내 캐비닛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케인 지거스의 행동이 의아했다. 뭐 하는 거야. 또 장난치는 거야? 날 괴롭히는 거야? 학교에서 못 빠져나가게 하려고? 묵묵히 채워지는 캐비닛의 책을 빼내 박스에 넣었다. 내가 책을 박스에 넣으면 케인 지거스는 다시 캐비닛에 넣는 꼴이 돼 버렸다. 케인 지거스의 행동에 보다 못한 나는 있는 힘껏 케인 지거스의 정강이를 발로 차 버렸다.

“아악! 뭐 하는 거야!”

케인 지거스는 고통의 신음을 내뱉더니 두 손으로 정강이를 감싸며 나를 있는 힘껏 째려봤다. 째려보면 뭐 할 건데! 먼저 나를 방해하는 건 너잖아!

케인 지거스가 괴로워할 때 캐비닛 안에 있는 짐을 박스로 쓸어 담아버렸다. 열쇠로 캐비닛을 잠근 후 나를 쳐다보고 있는 케인 지거스의 얼굴을 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어차피 너는 옆집에 사는 특별할 거 없는 이웃이잖아.

무거운 짐을 발로 질질 끌며 복도를 걸었다. 이 짐을 내가 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멋있게 박스를 들고 학교를 퇴장하려고 했지만 현실에서 슈퍼파워는 나오지는 않는다. 누군가 이 무거운 박스를 들어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트렁크에 무거운 박스를 실었다.

아빠는 운전석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해밀턴 교장과 대화 중이었다. 어느새 대화를 끝낸 건지 엄마는 차에 올라탔다. 아빠가 시동을 걸었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케인 지거스에게서 온 전화였다. 집에서 치료비를 청구하면 될 것이지 얘는 왜 전화를 하는 걸까. 전화는 받지 않고 통화 거부 버튼을 눌렀다.

아빠의 차는 학교의 정문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왜 이런 마음이 든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학교를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고 2주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건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2주 후에 또 지옥의 맛을 볼 수도 있는데.

뒤를 돌아 작아지는 학교를 쳐다보았다. 케인 지거스가 날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은 루카스와 캔디스를 걸쳐 비앙카 레인 앞에 멈춰 섰다.

“……”

학교를 떠나 행동 교정 캠프로 향하는 차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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