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베스트 프랜드 비앙카 레인
3
미글린 잭의 추억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조종이라도 당하는 듯 내 걸음은 미글린 잭과의 추억이 깃든 곳으로 향했다.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에서 숀 블루의 DVD가 진열해진 곳에 서있을 때면 미글린 잭과 함께 그 영화를 보았던 추억이 떠올렸다. 영화관에서 받은 팝콘을 함께 먹으면서 숀 블루의 영화를 보던 추억, 영화에 너무 빠져버린 우리는 서로 숀 블루는 자신의 것이라며 바보같이 싸웠던 추억, 스쿨버스에 탈 때면 스쿨버스 밖의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며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던 추억, 옆집에 사는 조니 아줌마의 요리 솜씨가 훌륭하다며 다짜고짜 날 조니 아줌마와 케인 지거스의 집으로 데려가 케인 지거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던 추억, 치어리더들을 시녀를 만드는 상상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추억, 내가 가는 곳 모든 곳이 미글린 잭이 있었다. 미글린 잭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빠른 속도로 후회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미글린 잭은 이미 학교를 떠났다. 미글린 잭의 집은 눈 깜짝할 새에 팔려버린 듯 팻말도 없었다. 조니 아줌마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조니 아줌마를 보면 숨어버릴 거 같았다.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했고 모든 건 나로 인한 일이라는 것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미글린 잭의 사랑 이야기는 듣기만 하고 끝낼 걸 그랬다. 괜히 글로 쓰라고 했다. 그 팬 픽션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미글린 잭과 나의 사이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버린 걸까.
내게 미글린 잭의 팬 픽션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길래 이렇게 못 읽어서 안달이 난 걸까? 글을 쓰기만 했지 읽지는 않았다. 아마추어 작가의 글은 특별할 거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팬 픽션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날 귀찮게 하는 거지? 나는 미글린 잭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미글린 잭이 인기가 많아진 이후로 미글린 잭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미글린 잭을 피한 이후로 라고 하는 게 정답이지만.
미글린 잭의 블로그에 댓글이 달려있었다. 댓글을 천천히 읽었다. 다들 팬 픽션의 다음 화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들 중 코튼캔디s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가 봐도 캔디스 콜먼의 닉네임인 댓글이 눈에 띄었다.
[블루. 너의 사랑 이야기를 비난하지 않아. 우리 모두 원하는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나도. 심지어는 너의 사랑 이야기 속 그도 원하는 사랑이 있어. 우리 모두는 로맨스를 할 수 있고 원할 수 있어.]
맞는 말이었다. 미글린 잭뿐만 아니라 나도 내가 원하는 로맨스가 있고 캔디스 콜먼도, 학교에 있는 여학생 남학생들도 밀러 선생님과 해밀턴 교장도 심지어는 케인 지거스까지도 자신들이 원하는 로맨스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미글린 잭이 원하는 로맨스를 비아냥거렸다. 후회는 뒤늦게 온다는 말처럼 나와 이들의 후회는 뒤늦게 찾아왔고, 우리는 우리들의 미글린 잭을 놓쳐버렸다.
다시 돌아와 재키 제발이라는 댓글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쓴 댓글 같지만 내가 쓴 댓글은 아니었다. 재키라고 부르는 사람이 나뿐이었는데 이제 많은 사람이 미글린 잭에게 재키라고 불렀다. 나의 자리를 잃어서 나는 미글린 잭을 뒤돌아서게 된 거였다.
재키…… 재키, 돌아와, 제발…….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는 떨리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재키를 애타게 불렀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곧장 집을 나섰다. 밤늦게 어디를 가냐는 엄마의 말도 무시한 채로 말이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이 내일 당장 유학을 가는데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밖에 없는 거처럼 있는 힘껏 뛰었다. 옆구리가 아파왔고, 내 앞을 가르는 자전거에 자전거를 타고 나올 걸 후회까지 해버렸지만 이미 늦었다.
미글린 잭의 집은 어두컴컴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거라 확신한 듯 미글린 잭의 집 현관문을 두들기지 않았다. 대신 케인 지거스의 집을 현관문을 두들겼다. 케인 지거스의 멱살을 잡든 케인 지거스를 협박해서라도 재키의 행방을 알아야 했다.
“케인 지거스! 비앙카 레인이야, 문 좀 열어줘!”
나의 애타는 부름에 케인 지거스가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케인 지거스는 내가 귀찮은 거 같다.
“미글…… 아니, 재키 어디 있는지 알아?”
미글린 잭이 아닌 재키라는 나의 부름에 케인 지거스의 미간이 지렁이 마냥 꿈틀거렸다.
“몰라.”
케인 지거스는 날 밀어내고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케인 지거스의 행동보다 내 발이 더 빨랐다. 발을 현관 틈 사이로 집어넣었다. 내가 이겼어 케인 지거스. 승자의 웃음이 나왔다.
“이제 친구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찾는 건데.”
케인 지거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이제 재키와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겠지. 혼자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에 갔으니 크리스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혼자 스쿨버스를 탔으니 제임스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누가 재키랑 친구가 아니래. 나는 잠깐…… 잠깐 멈춘 거뿐이야.”
이런 상황일수록 뻔뻔함이 도움 된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뻔뻔하고 너무 어이없다. 이 말을 듣는 케인 지거스는 오죽할까. 하지만 나는 케인 지거스를 배려할 마음이 없다.
“누구 왔니?”
문 뒤에서 조니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저 비앙카예요, 재키 친구 비앙카요!”
“비앙카?”
조니 아줌마가 문을 열었다. 케인 지거스는 내가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조니 아줌마와 나는 주방 테이블에 앉았다. 케인 지거스는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댄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비앙카.”
조니 아줌마가 물었다.
“재키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재키가 전화를 받지 않아요. 제발, 재키랑 대화를 하고 싶어요. 부탁드릴게요.”
조니 아줌마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재키에게 블로그를 꼭 확인하라고 전해주세요. 가능하다면…….”
“잠시만 기다려보렴.”
조니 아줌마가 일어났다. 그리고 주방을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케인 지거스가 앉았다. 케인 지거스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없었다.
침묵 속에서 눈치를 보며 조니 아줌마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니 아줌마가 전화기를 들고 주방으로 왔다. 전화기는 꺼진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니 아줌마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월요일에 다시 학교로 돌아갈 거야. 그 말에 마음이 놓였다.
재키의 얼굴을 볼 생각에 재키와 함께 해야 될 것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재키를 와락 안고 재키에게 사과를 하고 재키와 펑펑 울고 난 후 감자튀김을 셰이크에 찍어 먹고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에서 숀 블루의 영화를 대여한 후에 극장에서 팝콘을 사고 집으로 가서 영화를 봐야지. 그동안 밀린 영화도 몇 편 있으니까 주말 밤을 새워서라도 같이 영화를 봐야지. 다시 재키와 함께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4
조니 아줌마의 말처럼 재키는 월요일에 학교에 돌아왔다.
나는 내 생각처럼 재키에게 다가가 와락 안고 사과를 하고 펑펑 울고 숀 블루의 영화를 볼 마음이었지만 발걸음은 생각만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재키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루카스 주니어가 재키에게 악몽이라도 되는 듯 마주치자 평소보다 더 심한 투렛을 보였다. 투렛을 보이던 재키는 자신의 허벅지를 미친 듯이 때리며 행동 틱을 억제했다. 그리고 혀라도 깨물며 음성 틱을 억제하기 바빴다. 재키 그만해. 재키 그만해도 돼……. 바보처럼 멀리서 재키가 듣지도 못할 걸 알면서 속으로만 외쳤다.
“미안. 나 때문에 더 심해진 거지.”
루카스 주니어였다.
루카스 주니어의 말에 재키는 행동을 멈췄다. 다행인지 루카스 주니어도 재키를 향한 경멸과 혐오를 멈춰버렸다. 루카스 주니어의 눈빛은 이제 동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카스 주니어가 떠나자 힘이 풀려버린 재키는 캐비닛 앞에서 주저앉아버렸다. 그때 재키의 프린스 챠밍이라도 되는 듯 케인 지거스가 재키를 부축했다. 나의 기회는 케인 지거스에게 빼앗겨버렸다.
재키에게 다가갈 기회를 빼앗겨버렸다. 캐비닛 앞에서 책을 꺼내는 재키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피하지 않고 재키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안녕 재키, 나야 비앙카. 재키는 내 눈을 읽었다. 안녕 비앙카. 나는 미글린 잭이야. 나는 재키의 눈을 읽었다. 하지만 눈인사는 딱 그 정도로 끝나버렸다.
나는 뒤를 돌아 교실로 들어갔다. 사실 재키의 눈인사는 매우 날카로웠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동안 재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재키에게 나라는 존재 앞에서 날카로운 건 당연한 거다.
“어, 미글린 잭 왔어.”
재키가 교실에 들어서자 모두 재키를 보며 숙덕이기 시작했다. 재키는 그런 시선과 이야기가 싫어 숨을 잠깐 멈추고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가방에서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냈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의 음량을 가장 크게 틀었다. 시끄러운 교실 속에서도 재키의 음악 소리가 내 자리까지 흘렀다.
아무도 재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재키가 학교에 오면 달려들 거 같던 여자들도 재키의 상태를 보고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기 자리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도 되는 듯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았다.
재키의 하루는 평범하게 흘러갔다. 제이미 콜린스는 재키에게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던지지 않았고 여자애들은 루카스 주니어 때문에 재키에게 물벼락을 붓지 않았다. 물론 그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재키는 장애인 화장실에 도망가듯 숨어버렸다.
나는 재키와 대화를 하기 위해 재키가 숨어버린 장애인 화장실 앞에서 재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 후 재키가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재키는 가방을 품에 안고 있었다.
“……”
재키는 나를 보자마자 놀란 듯 멈칫해 버렸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내가 물었다.
이번에는 재키와 버럭 껴안고 사과하고 펑펑 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듯, “거기 수업 안 들어가니?” 눈치 없는 밀러 선생님에게 재키와 대화할 기회를 빼앗아버렸다.
그다음 날도 내게 기회 따위 오지 않았다. 조니 아줌마는 내가 찾아왔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걸까? 케인 지거스는 내가 재키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걸까. 잠깐 조니 아줌마와 케인 지거스를 원망해 봤다.
매주 토요일마다 유진 선생님에게서 상담을 받는 재키는 상담 날짜를 바꾼 듯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루카스 주니어를 보았다. 나를 먼저 아는 척 해준 건 루카스 주니어였다.
“미글린을 찾아온 거야?”
루카스 주니어의 말에 도대체 루카스 주니어는 재키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했다. 유진 선생님에게까지 상담받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유진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상담 요일을 바꿨다고 하더라고. 아마도 내 얼굴 보는 게 불편해서 인 거 같아. 날 볼 때마다 투렛이 더 심해지잖아…….”
루카스 주니어는 재키가 유진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왜!? 네가 어떻게 그걸 아는 거지?! 투렛이 더 심해진다는 말보다는 루카스 주니어가 유진 선생님을 알고 있다는 게 난 더 놀라웠다.
“넌 이제 미글린과 얘기하지 않는 거지.”
내가 재키와 친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고 이제 다시 재키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루카스 주니어는 서러움과 함께 내게 다가왔다.
“잠깐 나랑 대화할 수 있을까?”
그동안 하던 대화는 대화가 아니고 뭘까.
카페에 자리가 없어 병원 밖 벤치에 앉았다. 나는 루카스 주니어의 눈치를 보며 따뜻한 차를 홀짝였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려고 날 이렇게 부른 걸까.
루카스 주니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내게 지옥 체험을 해주려는 건가……. 불편해도 이렇게 불편한 순간이 없다. 다른 여자 애들은 부러워하겠지만 난 좋지 않아……! 차라리 이 사람이 숀 블루였으면…… 아니, 차라리 재키였으면 좋겠다고……!
“비앙카 레인.”
마침내 루카스 주니어가 입을 열었다.
“응…… 왜?”
“네가 그 글을 쓴 거지. 미글린 폭로 게시글.”
루카스 주니어에 물음에 대답을 잘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루카스 주니어는 한숨을 쉬었다.
“난 케인이랑 가장 친하거든. 그래서 듣지도 보지도 않아도 지금 미글린이 어떤지 알고 있어. 케인의 표정만 봐도. 그 녀석은 표정이 다양하지 못하잖아. 표현도 못 하고.”
루카스 주니어의 말만 들어보면 그가 케인 지거스를 좋아하는 거 같아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에 루카스 주니어는 당황하지 않고 나를 따라 웃었다. 케인 지거스 미안, 지금 우리의 어색함을 깨트리는 건 너야. 이 점은 고마워.
“학교에서 미글린을 보니까 미안해지더라고. 나 때문에 투렛이 더 심해진 거 같아서. 어제는 내 얼굴을 보더니 미친 듯이 허벅지를 때리더라고.”
“재키는 놀라거나 당황하면 투렛이 심해져.”
내 말에 루카스 주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몰랐어. 사실 미글린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어.”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넌 그 병원에 왜 있었던 거야? 그리고 유진 선생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고?”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사실 내가 소아과에서 봉사를 하고 있어. 내가 보고 있는 애가 유진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거든. 그때 미글린이 유진 선생님께 상담을 받고 있었고, 난 그 애의 상담 시간을 대신 잡아 주기 위해 유진 선생님 상담실에 가다가…… 마주쳤지. 우연히.”
“재키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알겠네……”
내 말에 루카스 주니어는 당황한 듯 눈이 커지고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이 매우 재미있었다.
“재키에 대해 궁금하다면 내가 아니라 케인 지거스한테 물어봐. 나는 재키의 좋은 점만 보니까 좋은 점 밖에 알려줄 수 없거든. 그건 재키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잖아. 그에 비해 케인 지거스는 장점이든 단점이든 모든 걸 보니까.”
루카스 주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게.” 루카스 주니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돼서 난 이만 가볼 게.” 루카스 주니어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곳에 홀로 남아 오지 않을 재키를 기다리며 다 식어버린 차를 홀짝였다.
학교 앞에서 케인 지거스를 마주쳤다.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루카스 주니어를 마주쳤다. 가벼운 인사를 했다. 케인 지거스는 언제 둘이 친해지기라도 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학교 안에서는 캔디스 콜먼을 마주쳤고 캔디스 콜먼과는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캐비닛에서 책을 꺼내고 캐비닛을 닫았다.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틀었는데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재키가 보였다.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들어온 재키는 캐비닛에서 책을 꺼내지도 교실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저 교장실로 들어간 부모님을 문밖에서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시간이 늦어지자 재키는 캐비닛 문을 열고 책을 꺼내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비앙카 레인.”
토요일에 루카스 주니어에게 용기를 얻어냈으니 이제 재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내게 기회는 지금 이 순간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면 내게 기회는 두 번 다시없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재키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캔디스 콜먼이 재키에게 다가갔다. 이 순간뿐이라던 기회는 캔디스 콜먼에게 보기 좋게 빼앗겨 버렸다.
화가 났다. 이상하게 화가 치밀었다. 화를 가라앉기 위해 숨을 힘차게 몰아 쉬었다.
캔디스 콜먼이 재키를 껴안았다. 저건 내가 해야 되는 건데. 재키를 껴안고 사과를 하고 펑펑 울어야 될 사람은 나인데 그걸 캔디스 콜먼이 해버렸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 했지만 대화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재키와 캔디스 콜먼은 다시 친구가 되기로 했다.
재키는 교장실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장실의 문을 확 열어젖힌 재키는 복도의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재키와 재키의 부모님은 교장실에서 나왔다. 무슨 대화를 한 걸까. 재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재키. 묻고 싶었지만 나는 다시 용기를 잃어버렸다.
5
스쿨버스가 학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빨간 스포츠카가 눈에 띄었다. 스포츠카에서 캔디스 콜먼과 그 친구들이 스포츠카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키가 내렸다. 재키는 이제 스쿨버스를 타지 않고 치어리더와 운동선수와 함께 스포츠카를 탄다.
캔디스 콜먼은 스포츠카에서 나온 재키의 팔에 팔짱을 꼈다. 재키는 저런 스킨십 따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재키는 싫다는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캔디스 콜먼을 대한다. 무슨 일이지? 왜 재키는 평소처럼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지? 그날 재키와 캔디스 콜먼은 무슨 대화를 했길래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 내가 들어갈 틈조차도 없게!
내 옆으로 케인 지거스가 지나갔다. 케인 지거스는 내 시선을 따라 재키와 캔디스 콜먼을 쳐다보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질투 나기라도 하는 거야?”
그렇다. 케인 지거스의 말 대로 나는 지금 질투 중이다. 너무 질투가 나서 화가 날 지경이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왜 바보처럼 멈칫하며 기회를 날려버린 거야, 멍청한 비앙카 레인. 바보 같은 비앙카 레인.
“너는 저 스포츠카는 안 타는 거야? 원래 같이 타잖아, 너도.”
내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스포츠카 무리에 케인 지거스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왜 케인 지거스는 스포츠카를 타지 않고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학교에 온 거지? 평소라면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들이 지금은 좀 궁금하다.
“쟤를 위해 양보해 준 거지.”
케인 지거스가 신사로 보였다. 그동안 재키가 케인 지거스에게 했던 악담은 사실이 아닌 거처럼 보였다. 케인 지거스가 실제로는 매우 다정할 수도 있어. 내 웃음에 케인 지거스가 미간을 구겼다.
재키의 패션이 바뀌었다. 말괄량이 삐삐처럼 입던 재키는 치어리더처럼 옷을 입기 시작했다. 캔디스 콜먼의 옷을 빌린 걸까. 아니면 같이 쇼핑을 한 걸까? 엉덩이가 보일 정도의 짧은 옷을 입을 바에 차라리 벗겠다는 재키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재키가 입은 옷은 배꼽이나 가슴이 드러나지도 않았고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짧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들과 다를 바 없었다. 더군다나 예뻐 보이지도 않고 흉해 보인다. 재키가 저런 옷을 입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잭 아줌마 잭 아저씨! 재키가 지금 이상한 옷을 입었어요! 저런 옷 다시는 입지 못하게 혼내주세요! 하……. 한숨이 나왔다. 혼은 내가 나야지. 재키를 많이 외롭게 만들어버린 내가!
“재키가 많이 바뀐 거 같네.”
내가 말했다.
“네 마음이 바뀐 거처럼 쟤도 바뀌어야지. 늘 한결같을 수는 없잖아.”
케인 지거스가 신사라고 했던 거 취소, 취소! 내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도 아니고 누굴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난 심난해 죽겠는데……!
바뀐 재키의 모습이 낯설기만 할 뿐 이상하지는 않았다. 재키는 처음부터 내가 아닌 캔디스 콜먼과 친구였어야 된다. 나는 다른 이들과 재키가 친해질 기회와 재키가 인기 있는 여학생이 될 기회를 빼앗아버렸다.
“나는 재키랑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봐.”
내 말에 케인 지거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나는 케인 지거스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씁쓸한 표정으로 재키에게서 뒤돌아섰다. 그래, 나와 재키는 어울리지 않아. 재키는 내가 아닌 캔디스 콜먼과 어울려.
나는 짝사랑을 하는 십 대 소녀라도 되는 냥 재키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재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짝사랑이 이렇게 어렵구나. 재키를 보내주기로 했지만 미련이 자꾸 생겼다.
케인 지거스는 흔쾌히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아는 거처럼 보였다. 재키가 사라졌을 2주 동안 재키 일로 케인 지거스를 찾아갔으니까.
케인 지거스는 내게 왜 왔냐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재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어.”
캔디스 콜먼에게 재키를 보내줬다고 생각했지만 마음까지 다 보낸 것은 아니었다. 자꾸만 재키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 추억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건 재키에게 다시 돌아가라는 뜻이겠지?
“네가 원인이었잖아.”
“알고 있어. 그래서 난 매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어. 하지만 난 억울하지 않아. 네 말처럼 내가 원인이니까.”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라니.”
“다시 미글린 잭을 되찾고 싶은 거야?”
케인 지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재키와 친구가 되고 싶어. 재키를 되찾고 싶어. 과거가 아닌 현재의 베스트프렌드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