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졸업반의 프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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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지거스는 늦게 들어오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며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했다. 단 음식이라고는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하는 케인 지거스가 나를 따라 레번 부르프 아저씨의 초콜릿 케이크 가게까지 오고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높은 거라고는 전혀 오르지 않던 케인 지거스가 나를 따라 그리피스 전망대까지 올라왔다.
“넌 도대체 날 왜 이렇게 따라오는 거야!?”라고 케인 지거스에게 물을 때마다 케인 지거스는 “착각하지 마.”라고 대답했다. 너에 대해 착각은 하고 싶지 않아!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케인 지거스는 멀리 쌩하고 가버렸다.
“진짜 마음에 안 든다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쪽지가 날아왔다. 쪽지에는 ‘재키’라고 적혀있었고, 내게 도착한 쪽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재키,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할 거야?라는 글 밑에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물론 나는 누가 내게 쪽지를 보냈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나는 내게 쪽지를 건네준 뒤에 앉은 아이에게 쪽지를 넘겼다. 넘어가는 쪽지를 보자 미간이 저절로 구겨져버렸다.
“뭐야, 케인 지거스 ‘젠장’ 네가 보낸 거야?”
수업 중이라는 건 잊어버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케인 지거스를 향해 검지 손가락을 쳐들며 말했다. 그런 내 모습에 밀러 선생님은 당황해 버렸다.
“뭐 하는 거니, 미글린 잭.”
“아…… 그러니까…… ‘젠장’ 케인 지거스가 제게 쪽지를 보냈어요!”
나도 당황해 버린 듯 음성 틱과 행동 틱이 난무하게 쏟아지듯 나와버렸다.
“연애 쪽지라도 보내는 거니? 지금 그 쪽지 어디 있니. 케인 지거스 네가 갖고 있니?”
밀러 선생님의 말에 케인 지거스는 쪽지를 입에 넣어버렸다. 가져갈 수 있다면 어서 가져가 봐. 뭐 그런 거야? 그게 뭐라고 더 수상하게 숨기기까지 해. 바보 같은 케인 지거스.
“케인 지거스, 미글린 잭. 수업 끝나고 남아.”
문제아들만 모인다는 방과 후 교실에 케인 지거스와 함께 케인 지거스 때문에 남아버렸다. 나는 방과 후 교실 앞에서 마주친 케인 지거스를 힘껏 째려본 후 문 앞에서 발을 밟아버렸고, 마지막으로 어깨를 밀쳐버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4시에 시작한 방과 후 교실은 6시가 되자 끝이 나버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인 거 알지.”
케인 지거스는 내 말을 무시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나는 케인 지거스의 뒤를 따라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어차피 집에 갈 거 아니야? 데려다줘. 그리고 조니 아줌마한테 말 잘해. 다 너 때문이잖아.”
“안전벨트.”
내 말에 대한 질문은 안전벨트였다.
케인 지거스는 집에 가지 않았다. 반대 방향이었다. 도대체 어디 가냐는 내 질문도 무시하로 대답해 버렸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케인 지거스! 설마 날 납치하는 거야!? 아니면 저 멀리 날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있는 힘껏 소리치는 나와 달리 케인 지거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집에서 5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야. 너 혼자 걸어서 집에 갈 수도 있어.”
케인 지거스는 날 태우고 쌩쌩 달렸다. 속도를 더 내다가는 내가 죽을 거 같아서 차에 딸린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손에 힘을 실었다.
“너 루카스랑 만나는 거야?”
운전을 하던 케인 지커스가 내게 물었다.
“왜?”
내가 대답했다.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와. 밖은 위험해.”
“그래, 알았어.”
나를 걱정하는 듯한 케인 지거스에게 ‘네가 날 왜 걱정해? 설마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우웨엑’이라며 날카롭게 공격할 수 없었다.
5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라고 했는데 집에 가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케인 지거스와 목적지 없이 드라이브를 해버렸다. 이런 드라이브라면 케인 지거스랑 함께 하는 드라이브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아니, 생각보다 괜찮아.
우리 집 앞에서 차를 세워 둔 케인 지거스는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비앙카 레인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케인 지거스의 입에서 오랜만에 비앙카 레인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내 머릿속에 비앙카 레인이 들어왔다.
“걔가 왜.”
“걔가 왜라니. 여자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건 네 눈에 안 보이는 거야?”
케인 지거스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만 쳐다봤다. 괴롭힘을 당하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행복 때문인지 비앙카 레인이라는 존재를 잊어버렸다. 캐비닛이나 교실 그리고 식당에서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비앙카 레인은 후회를 하고 있어. 날 찾아올 정도로.”
케인 지거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는데 그 목소리 탓인지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후회를 한다고?”
“사과하고 싶어 해, 네게.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데 비앙카 레인은 바보처럼 네게 사과도 못 하고 있어. 뭐…… 기회를 스스로 놓친 거지.”
내가 대답이 없자 케인 지거스가 한숨을 푹 쉬어 버렸다. 그 모습에 대답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죄인이 된 마냥 재빠르게 케인 지거스의 차에서 빠져나왔다.
케인 지거스가 내게 마법이라도 내린 것일까? 이상할 정도로 비앙카 레인과 마주치는 날이 많아졌다. 캐비닛 앞에서 책을 꺼내는 비앙카 레인과 그 책을 다시 집어넣는 제이미 콜린스의 행동에 미간이 구겨졌다. 내가 케인 지거스한테 당해봐서 아는데 은근 기분 나빠. 하지만 제이미 콜린스에게 그만하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비겁한 미글린 잭이야.
그러나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캔디스에게 잘 말하면 돼. 캔디스는 세인트 레거시 고등학교의 여왕벌이니까 이 학교에서 캔디스의 말을 거역할 여학생은 없어.
아무런 말없이 딸기 셰이크 빨대를 질겅질겅 씹어 대던 캔디스의 눈치를 보다가 말할 기회를 찾았다.
“캔디스. 내가 다시 팬 픽션을 쓰려고 해. 물론 숀 블루의 팬 픽션.”
“정말?”
얼마나 씹어댔는지 빨대가 헐렁해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내 말에 캔디스는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비앙카 레인이 필요해.”
“비앙카 레인?”
“나의 팬 픽션에 도움을 주고 있거든. 타이핑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적인 부분도……!”
“그렇구나. 뭐, 네 팬 픽션의 팬인 나로서는 네가 다시 팬 픽션을 쓸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내가 아닌 비앙카 레인이 필요하다는 거면…… 다시 비앙카 레인과 친해지는 방법밖에 없겠다.”
“아니야 캔디스. 내게는 너도 필요해.”
“나?”
“응. 제이미 콜린스에게 비앙카 레인을 괴롭히는 짓을 그만두게 하면 안 돼?”
캔디스는 알았다는 말을 하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러니까 남자들이 캔디스 너를 좋아하는 거야. 웃는 모습이 이렇게 예쁘잖아.
“이제 팬 픽션을 읽을 수 있는 거야? 아, 이거 영화로 만들어지면 되게 재미있겠다. 브리짓 존스나 그레이…… 애프터처럼!”
캔디스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캔디스의 차에서 내린 나는 집에 가는 대신 케인 지거스의 창문에 돌을 던지는 걸 선택했다.
“야! 케인 지거스! 얼른 나와 봐! 케인 지거스! 없는 척하지 말고! 너 집에 있는 거 알아!”
내 물음에 케인 지거스가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왜!”
케인 지거스의 음성에서도 신경질이 묻어있었다.
“비앙카.”
“비앙카?”
“비앙카 레인. 아무도 괴롭히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도! 이제 용서할 거 같아, 비앙카 레인.”
케인 지거스를 향해 미소를 보인 나는 케인 지거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케인 지거스의 방 쪽 창 밖을 보자 케인 지거스가 내 방 안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나는 커튼을 쳤다.
제이미 콜린스는 비앙카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캔디스가 제이미 콜린스에게 비앙카 레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한 걸까? 세인트 레거시 고등학교의 여왕벌이 나와 친구라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것도 내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비앙카의 표정은 훨씬 밝아졌다. 비앙카 레인과 눈이 마주쳤지만 내가 재빠르게 피해버렸다. 미글린 잭 네가 죄인도 아니면서……!
캔디스 덕분에 비앙카를 향한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제이미 콜린스를 포함한 여학생들이 비앙카 레인을 괴롭히는 거에서 다른 곳으로 관심사를 바꿔버렸다. 그건 바로 프롬이었다. 졸업반의 마지막, 졸업반의 꽃 프롬! 프롬 때문에 프롬 퀸 후보에 오른 여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프롬 퀸 후보에 오른 여학생들은 부하들을 시켜 이상한 광고판과 전단지를 만들었다. 학교 앞에서 난 그 이상한 전단지를 받았다.
“그냥 버려.”
캔디스는 내 손에 있는 전단지를 뺏어 구긴 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캔디스는 이렇게 여유로운데 저 후보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프롬이 뭐라고…….
케인 지거스에게 비앙카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케인 지거스의 차에 올라탔다. 케인 지거스는 내게 내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바로 갈 거지.”
케인 지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 지거스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고, 우리는 학교를 떠났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루카스에게서 온 전화였다.
케인 지거스는 루카스가 내게 전화를 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이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루카스 왜?”
내 말에 루카스는 잠깐 만날 수 없냐며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루카스에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루카스의 전화가 끊긴 후 케인 지거스에게 학교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을 했더니 케인 지거스는 내려서 가라는 말을 했다.
“내가 네 우버 기사야? 정 학교에 가고 싶다면 네가 내려서 걸어 가.”
그 말에 괜히 심술이 나버린 나는 행동 틱을 핑계 삼아 케인 지거스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케인 지거스의 차가 정차했을 때 문을 열고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케인 지거스는 미친 행동을 해버린 나를 몇 번이고 불렀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향해 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카스 주니어를 향해.
루카스는 등을 기댄 채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거라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여자 친구라도 생겨서 여자 친구랑 재미있는 대화 중인 건가? 생각했다.
“루카스”
루카스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루카스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핸드폰에 있는 걸 내게 보여주었다.
강아지가 양의 등에 올라타다가 넘어졌다.
밈이었다. 밈을 보자마자 속으로 뭐야, 여자 친구 아니야? 다행이네.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내 말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자신의 차로 데리고 갔다. 뭐야, 집에 데려다주려는 거야? 이럴 거였으면 케인 지거스의 차를 타고 집에 갔지. 나는 뭐 특별한 거라도 있을 줄 알았네. 뭘 기다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설마 진짜 집에 데려다주려고 부른 거야? 이럴 거면 케인 지거스의 차에서 뛰쳐나오지도 않았어.
“아니, 스토브 박스에 껌 있는데 꺼내 줘.”
루카스의 말에 실망을 가득 안은 채로 스토브 박스를 열었다.
스토브 박스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있었지만 내 시선은 옆에 깔린 껌에게로 갔다. 껌을 꺼내 루카스에게 건너 주자 갑자기 잘 가던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그 탓에 놀란 나는 음성 틱과 행동 틱을 내뱉었다.
“아, 미안……”
깜짝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의 행동에 당황해 버린 루카스가 나를 쳐다보다가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놀란 건 맞지만 죽지 않아 다행인 나는 루카스의 손을 떼어냈다.
“괜찮아, 괜찮아. 크게 놀랄 필요 없어. 그나저나 왜 갑자기 멈춘 거야?”
내 말에 루카스는 머뭇거리더니 껌을 꺼낸 스토브 박스에서 장미꽃 한 송이를 꺼냈다.
“미글린 잭. 나랑 같이 프롬 가지 않을래?”
루카스의 말에 나는 돌처럼 아니 화강암처럼 굳어버렸다. 이런 말은 로맨스 영화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로맨스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를 두 귀로 직접 들어 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행동 때문인지 루카스는 멋쩍은 듯 머리를 매만졌다. 설마 거절당한 줄 아는 거 아니야? 루카스가 착각하기 전에 루카스 손에 있는 장미꽃을 재빨리 빼앗아버렸다.
“악”
루카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장미꽃을 재빠르게 빼앗다가 루카스의 손가락에 장미가 박혀버렸다. 고작 장미 가시로 응급실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고 약국에서 핀셋과 알코올 솜을 사 루카스의 집으로 갔다. 루카스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루카스는 락을 좋아하는지 방에 락 밴드의 포스터가 붙여 있었다. 깔끔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딱 중간의 방이었다. 루카스의 방에 비하면 내 방은 아주 더러운 수준이지.
알코올 솜으로 루카스의 손가락과 핀셋을 닦고 눈을 부릅뜨며 루카스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빼 주려고 했는데 긴장한 탓일까 자꾸만 행동 틱이 나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루카스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들린 핀셋을 빼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카스는 자신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빼냈다. 처음부터 루카스가 했어야 돼.
가시를 다 뺀 후 침묵이 흘렀다. 숀의 로맨스 영화에서는 남자 여자 주인공이 단 둘이 한 방에 있을 때 무조건 키스를 한다. 설마 루카스가 내게 키스를 할까? 경험자긴 하지만 키스가 긴장되는 건 여전하다. 루카스의 방을 빠져나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루카스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루카스의 집에 들이닥친 루카스의 부모님 덕분에. 키스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죄인처럼 어색함에 웃다가 루카스의 집을 빠져나갔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루카스의 말에도 만류하고 혼자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가는 길에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를 들렸다. 오랜만에 숀의 영화가 보고 싶어 졌다.
“미글린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오랜만에 본 크리스 아저씨의 수염이 더 풍성해졌다.
“아저씨도요.”
“요즘은 비앙카랑 같이 안 오네. 비앙카도 혼자 오던데.”
“걔는 뭐 빌려 봤어요?”
내 말에 크리스 아저씨는 컴퓨터에 비앙카의 대여 기록을 검색했다. “숀 블루 영화.” 역시나 비앙카가 선택한 영화도 숀의 영화다.
숀의 영화 코너 앞에 서자 무섭게 비앙카의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겪은 일이 있는데 그 일을 비앙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예전처럼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에서 숀의 영화를 대여하고 내 방이나 비앙카의 방에서 비앙카가 영화관에서 가져온 팝콘을 먹으면서 숀의 영화를 보고 웃고 떠들고 싶다. 비앙카, 나 루카스랑 키스도 했고 케인 지거스가 아닌 루카스의 방에 단 둘이 들어갔어. 숀의 영화 코너 앞에서 한숨을 깊게 내쉬자 크리스 아저씨가 이상하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둘이 싸웠지?”
크리스 아저씨는 귀가 가려운 듯 검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며 내게 말했다. “비앙카도 딱 이 자리에 서서 한숨을 푹 쉬더라고.” 이번에는 귓구멍을 판 손가락으로 눈가를 긁었다.
“이제는 화해할 때 된 거 같은데. 같은 영화를 두 번 대여하면 나야 뭐 돈을 더 벌어서 좋겠지만 단골이 싸우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크리스 아저씨는 내게 비앙카가 대여한 DVD를 건넸다.
“둘이 같은 영화 보고 떠드는 거 좋아하잖아.”
크리스 아저씨의 말에 고민도 없이 DVD를 대여했다.
레드 마운틴 DVD 스토어를 나온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집으로 향했다.
루카스와 프롬에 같이 가기로 한 게 소문이 나버렸다. 도대체 누가 소문을 낸 걸까. 여학생들은 질투와 분노와 부러움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의 팬 픽션을 좋아하던 이들조차 투렛을 가진 괴짜 작가 미글린 잭의 인생 역전 스토리라며 웃어 대기 바빴다. 그리고 몇몇의 여학생들은 프롬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2의 미글린 잭이 되겠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로 팬 픽션을 쓰기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남학생들은 이미 같이 프롬에 갈 짝이 있다. 심지어는 케인 지거스의 팬 픽션도 나와 나의 웃음을 사버렸다.
“케인 지거스의 팬 픽션이라니…… 그 여자 눈 제대로 삔 게 분명해.”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조니 아줌마가 나의 프롬 드레스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때 나는 프롬 따위 가지 못할 거라며 드레스 대신 맛있는 쿠키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조니 아줌마는 기대 없이 좌절해 버린 나를 위해 쿠키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3년 후 내가 루카스와 프롬에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조니 아줌마는 우리 집에 찾아와 나의 신체 치수를 측정했다.
“케인은 누구랑 프롬에 갈까?”
조니 아줌마가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재키, 케인과 같이 갈 여자를 알고 있다면 내게 귀띔해 줘.”
아쉽게도 조니 아줌마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나는 케인 지거스가 여자를 만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케인 지거스는 나나 남자 친구들에게도 여자 얘기를 한 적이 없는 녀석이다. 심지어 나랑 비앙카는 케인 지거스가 좋아하는 게 여자가 아닌 남자가 아닐까 하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저도 궁금하네요. 케인 지거스와 함께 할 여자를.”
진심이었다. 케인 지거스의 여자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후…… 루카스만 아니었으면 재키 네가 우리 케인과 함께 가줬으면 했지.”
조니 아줌마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는데, 내가 아무리 조니 아줌마를 좋아한다고 해도 일생에 하나뿐인 프롬을 케인 지거스와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 뭐, 내가 팬 픽션을 쓰지도 않고 비앙카와 괴짜 모임에 소속되었다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
조니 아줌마는 일주일에 걸쳐 나의 드레스를 만들어주었다. 아들인 케인 지거스에게는 양복을 빌려 입으라며 300불을 건네주었다.
그 돈으로 케인 지거스는 양복과 셔츠, 나비넥타이, 신발을 대여했다.
프롬 이틀 전 조니 아줌마는 드레스를 완성했다.
그리고 케인 지거스에게 학교가 끝난 후 나를 당장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는지 학교가 끝나자마자 케인 지거스는 내 옷깃을 잡고 나를 끌어당겼다.
“무슨 짓이야, 케인 지거스.”
케인 지거스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를 차에 태웠다.
행동 틱이 나와서 내 주먹이 네 얼굴을 때려도 나는 죄 없는 거야. 케인 지거스의 면전에 대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는 걸 관뒀다. 입 아프면서 말해봤자 어차피 케인 지거스는 내 주먹에 맞을 운명이다.
내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조니 아줌마 혼자 봤으면 좋겠는데 그 모습이 궁금하기라도 한 건지 케인 지거스가 내 모습을 몰래 훔쳐봤다. 그렇게 볼 거 아예 대놓고 보지 그래 케인 지거스? 내 말에 케인 지거스는 놀란 듯 성질을 내며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조니 아줌마에게 드레스와 구두를 선물 받은 나는 집으로 갔다. 부모님에게 드레스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방에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자 케인 지거스의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드레스와 구두를 침대 위에 올려 두고 책상에 아무렇게 나뒹구는 지우개를 찾아 케인 지거스의 창문으로 던지자 케인 지거스가 성질을 내며 문을 열어젖혔다.
“뭐야.”
“내가 화장하고 머리도 하고 드레스 입고 구두 신은 모습을 루카스가 이상해할 거 같아……?”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은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은 유리 성에 갇힌 공주처럼 보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거라는 법은 없다.
“이상하지 않아.”
케인 지거스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정말 이상했다면 문을 확 닫아 버렸을 녀석인데 대답까지 해주고…… 저건 케인 지거스의 100% 진심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케인 지거스와 두 눈이 마주쳤다. 그 이후로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케인 지거스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환하게 웃던 나의 입꼬리는 점점 내려갔다.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문을 확 닫아버릴 생각도 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영화 보러 안 올래?” 케인 지거스가 거절할 줄 알고 말을 꺼냈는데 케인 지거스는 거절을 하지 않았다.
내 방 침대 위에 앉아 숀의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은 비앙카뿐이었는데 이제는 케인 지거스가 비앙카의 자리를 침범해 버렸다. 그나저나 남자들은 이런 로맨스 영화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케인 지거스는 딴짓 없이 영화를 보고 있다. 숀이 여자 주인공과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도 난 케인 지거스의 눈치를 보며 음성 틱을 내뱉었지만 케인 지거스는 두 눈을 부릅뜨고 키스신을 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비앙카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비앙카 레인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마침 케인 지거스가 내게 물었다. 이 녀석 슈퍼파워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비앙카 레인은 왜?”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같이 프롬에 갈 거라고 떠들어댔잖아, 너희. 약속은 지켜야 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난 루카스와 같이 가기로 약속했어.”
“정말 루카스 주니어를 원하는 거야?”
“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케인 지거스의 말에 화가 났다. 네 말의 뜻은 나 따위의 괴짜는 루카스 주니어 같은 인기 많은 농구 선수와 만날 수 없다는 말이야? 나는 그런 사람을 원하면 안 되는 거야? 기분 나쁜 마음에 케인 지거스에게 쏘아 대기 시작했다. 낮에 먹던 약이 이제야 효과가 돌기 시작했는지 음성 틱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내 말에 케인 지거스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케인 지거스가 나간 후로 방에는 냉랭함만 돌고 있었다. 짜증 나. 자기 방도 아니면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어떡해.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케인 지거스…….
케인 지거스에 대한 원망은 잠시였다. 루카스와 둘이서 프롬을 가는 걸 꿈꿨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비앙카가 떠다녔다. 신입생 때부터 비앙카와 같이 프롬에 가려고 했는데 남자 한 명 때문에 우정의 약속을 깰 수 없잖아. 물론 지금 우리의 우정은 비앙카로 인해 금이 갔지만……. 그래도 루카스는 금방 다른 파트너를 만들 수 있고 비앙카는 아직도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지 않고 서야 케인 지거스가 내게 비앙카의 얘기를 꺼낼 리가 없지.
프롬 당일까지 내 머릿속에서 비앙카와 루카스가 떠다녔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 미글린 잭. 이거는 sat 시험보다 간단한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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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내가 사랑하는 졸업반의 프롬 퀸을 읽고 있었는데 캔디스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앞이니 내려오라는 캔디스의 말에 창밖을 보니 캔디스의 차가 아닌 루카스의 차가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 나 배탈이 나서 먼저 가면 안 될까?”
아쉽다는 캔디스의 말을 끝으로 친구들을 태운 루카스의 차가 우리 집 앞을 떠나버렸다.
나는 절대 루카스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루카스와 비앙카 사이에서 고민 중인 상태에서 차마 루카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내일이 프롬인데…….
평소에 나오던 시간보다 10분 더 늦게 나왔다. 혹시나 근처에서 루카스를 마주치면 안 되니까. 현관 앞에 쌓여 있는 편지 더미를 보았다. 어차피 저 편지들 중 내 편지는 없을 테니 테이블 위에 놓고 집을 나가자, 차고에서 나오는 케인 지거스와 마주쳤다. 지각할 거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나는 케인 지거스가 나를 태우고 가지 않을 거 같아 온몸으로 케인 지거스의 차를 막았다. 내 행동에 케인 지거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겼다. 케인 지거스의 차에 올라탔다.
“다음부터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
케인 지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프롬이라 네 차를 타는 거지 프롬 끝나면 네 차를 탈 일도 없어. 월요일부터 난 캔디스 차만 탈 거라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재빠르게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이러면 누가 내게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을 거야. 특히 루카스가!
주차를 끝내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나는 케인 지거스의 등 뒤에 숨어 걸었다. 케인 지거스는 의문을 알 수 없는 나의 행동에 어이없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케인 지거스. 네가 그런 말만 안 했다면…… 내가 지금 루카스와 비앙카 사이에서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야. 넌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돼!
케인 지거스에게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케인 지거스를 주먹으로 몇 번 때리고 욕을 몇 번 내뱉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상처받았을 법도 한데 케인 지거스는 적응이라도 됐는지, 아니면 케인 지거스에게 내 주먹은 타격 따위 없는 건지 아무런 불만도 표출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주먹을 그냥 맞고, 내 욕을 그냥 듣기만 했다.
큰일이다.
저 멀리에서 루카스가 케인 지거스를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다.
“야, 야. 케인 지거스, 빨리 가자, 빨리.”
“뭐?”
케인 지거스는 아직 루카스를 발견하지 못한 거 같다.
“나 오줌 마려워.”
내 말에 케인 지거스가 뒤돌아 나를 보았다. 제대로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러면 루카스가 내가 여기 있는 거 알잖아, 바보야. 그럼 피해 다닐 필요가 없지.
“하……”
나는 되려 한숨을 쉬었다. 내 한숨 소리에 어이없어하는 케인 지거스를 뒤로한 채 학교 안으로 무작정 달렸다. 루카스가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불렀지만 무시해 버렸다.
학교 안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비앙카였다. 루카스만 피해 다녔지, 지금 같은 상황은 비앙카도 피해 다니는 게 맞는 말인데.
“저기……”
억지웃음을 보인 채 비앙카에게서 멀어졌다.
비앙카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거 같지만 지금은 피하는 게 우리에게 좋은 방법인 거 같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루카스도 캔디스도 나를 부를 수 없게. 그리고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서 쉬는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그때 캐비닛에서 책을 꺼냈다. 점심시간에는 식당에 가는 대신 주차장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주차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건강이 나빠지는 느낌과 약간의 기름 냄새만 날 뿐. 원래 누군가를 피해 다닐 때 주로 운동장에서 식사를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운동장이 제일 위험하다. 운동장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농구를 하는 루카스를 마주칠 수 있으니까.
『재키 어디야?』
『재키 뭐 해?』
『재키 네가 안 보여』
주차장에 숨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캔디스에게서 문자가 왔다. 갑작스러운 진동소리에 놀라 샌드위치를 던질 뻔했다.
『지금 주차장에 있어』
캔디스가 오해를 할 수 있으니 캔디스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 주차장에 있어. 그 안에는 오려면 아무도 데리고 오지 말고 제발 혼자 와 라는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캔디스는 그런 내 마음 하나 몰랐다. 어쩜 주차장에 케인 지거스와 루카스를 같이 데리고 올 수가 있어? 이러면 그동안 피해 다닌 게 물거품이 되잖아. 한숨이 나왔다.
나는 나를 쳐다보는 루카스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루카스가 서있는 곳은 일체 쳐다보지도 않았다. 루카스 대신 케인 지거스를 쳐다보는 걸 택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캔디스는 걱정스러운 말로 내게 물었고 나는 머리를 굴리며 변명을 만들어냈다.
“프롬 전 날 주차장에서 점심을 먹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대.”
바보 같은 변명이었다.
케인 지거스는 나의 바보 같은 변명에 미간을 구기고 한숨을 쉬었지만 캔디스와 루카스는 그 바보 같은 변명을 믿었다. 단순한 사람들…….
“그런 거 너만 알기야? 미리 알려주지, 너무하네.”
설마 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야? 묻고 싶었지만 이건 프롬이 끝난 후 묻기로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나를 의문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돼 케인 지거스의 팔을 잡아끌었다.
“뭐, 뭐야?”
“케인 지거스한테 할 말이 ‘젠장’ 있어서,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케인 지거스를 데리고 케인 지거스의 차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야.”
“너 집에 갈 마음 없어? 미글린 잭이 투렛이 심해졌다고 하고 집에 가자.”
“무슨 일인데.”
“급한 일.”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케인 지거스는 더 이상 내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내가 루카스를 피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거나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해 버렸거나.
케인 지거스는 나를 집 앞에 내려주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나와 달리 대학교에 갈 녀석이기 때문에 출석 일수가 매우 중요했다. 나도 그런 녀석의 인생을 막고 싶지는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없었다. 테이블 위에 둔 우편 봉투들이 그대로 있었다. 많이 바빴나…… 우편 봉투도 확인 안 할 정도면…… 십 대 자녀를 둔 부모가 일 때문에 많이 바쁘면 그건 자녀에게 최악이다. 그 최악을 내가 겪고 있잖아.
우편물을 분리하기 위해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이건 엄마, 저건 아빠…… “어?” 그리고 파란색의 편지 봉투…… “비앙카……?” 비앙카가 보낸 나의 우편물이었다. 나는 곧바로 비앙카의 편지를 뜯었다. 어찌나 풀칠을 열심히 했는지 떼 지지 않아서 입구를 찢어버렸다. 편지는 총 3장 분량이었고 나는 천천히 비앙카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니, 비앙카의 편지는 편지가 아니었다. 편지처럼 보일 뿐 편지가 아닌 이야기였다.
졸업반이 된 나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로 살 것만 같았다.
……
프롬 하루 전 그는 나에게 프롬에 같이 가자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이 프롬에 가기로 했던 나는 그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나는 그에게 댄스 플로어에서 만나자고 했고, 그는 흔쾌히 나의 약속을 받아들였다.
댄스 플로어에서 만난 우리는 같이 춤을 추었다.
……
나의 사랑하는 졸업반의 프롬 퀸은 미글린 잭이었다.
그것은 숀 블루 팬 픽션의 탈을 쓴 루카스 주니어의 팬 픽션이었다. 그동안 비앙카가 내 곁에 없어 쓰지 못했던 내가 사랑하는 졸업반의 프롬 퀸의 내용을 비앙카가 만들었다. 비앙카가 내 곁에 없어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걸 비앙카는 알아채고 있었다.
나는 지금 당장 루카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루카스 미안하지만 같이 프롬에 가지 못할 거 같아』
손이 몇 번이고 떨리는 거 쓰고 지우다가 겨우 문자 내용을 썼다. 그리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한참 후에 루카스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비앙카의 일을 루카스에게 말했다. 지금 비앙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의 우정은 영원히 사라질 거 같다고 했다. 그러자 루카스는 댄스 플로어에서 만나자고 했다. 비앙카의 글처럼 나는 루카스와 댄스 플로어에서 만나기로 했다. 프롬 전날이라 루카스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루카스는 나를 이해했다.
나는 케인 지거스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고, 그의 차가 차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자 집을 나와 그에게 다 가았다.
“비앙카가 누구랑 프롬에 가는 줄 알아?”
내 말에 케인 지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내 말에 케인 지거스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뭐라고? 네가 비앙카랑 같이 프롬에 간다고?”
“내가 비앙카 레인이랑 프롬에 가는 게 이상한 거야?”
케인 지거스의 말에 마음속으로는 어! 당연 이상하지!를 수십 번 외쳤지만 입 밖으로 뱉어내지는 않았다. 아니, 케인 지거스 너는 널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을 테고, 네게 같이 가자고 하는 여자들도 많을 텐데 왜 프롬을 비앙카랑 가는 거야? 넌 비앙카를 좋아하지도 않고 비앙카의 미들 네임도 모르잖아!
“낙오자 모임.”
나는 케인 지거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낙오자라고? 웃기지 마. 차라리 너 대신 내가 낙오자 모임에 들어갈 게 어울려. 넌 루카스의 짝으로 둘이 같이 프롬에 가면 되겠네.
“그 낙오자 모임에 나도 껴도 돼?”
“뭐? 루카스는?”
“같이 안 가.”
내 말에 케인 지거스가 미간을 구겼다. 저 녀석의 미간은 이제 더 이상 남아나질 않을 거 같다.
“나 루카스랑 같이 안 가. 네 말처럼 나는 원래 비앙카랑 가려고 했잖아. 네가 나의 비앙카를 빼앗았으니 셋이 같이 가는 수밖에 없지. 내가 너에게 장미꽃은 딱히 주고 싶지 않고……”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케인 지거스에게 건네줬다. “이 사탕 받고 나도 같이 프롬 가자, 케인 지거스.”
한숨을 쉬던 케인 지거스는 내 손에 들린 사탕을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6시 30분까지 비앙카 레인 집에 가기로 했어. 6시 20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 같이 타고 가자.”
케인 지거스의 말에 신이 난다는 듯 미소를 짓고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였다. 내 미소 덕분이었을까 미간을 구기기 바빴던 케인 지거스도 힘을 주던 미간을 풀고 웃어 보였다. 이 장면을 조니 아줌마가 본다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해서 액자로 담아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