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졸업반의 프롬 퀸
1
캔디스가 내게 물었다. 팬 픽션은 언제 쓸 거냐고. 물론 나는 주인공을 루카스 주니어가 아니라 숀 블루라고 생각하며 읽고 있지만,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고. 나에게 살짝 말해줄 수 없냐고. 나는 캔디스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로맨스 따위 바랄 수가 없었다. 글을 다시 쓰게 되면 루카스가 나를 이상하게 볼 거 아니야. 루카스가 또다시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래서 글을 쓸 수가 없어.
루카스에게 말해 봐.
나의 마음의 소리가 내게 말했다. 행동 교정 캠프에 있을 때부터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 덕분에 외로운 2주를 버틸 수가 있었다. 마음의 소리가 없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지도 몰라.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엄마는 나를 정신병원이 아닌 행동 교정 캠프에 보냈다. 딸을 정신병원에 보내는 건 엄마로서 용납할 수 없었나 보다. 행동 교정 캠프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부모를 납치한 여자애도 있었고 클로자핀을 학교에 뿌려버린 남자애도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루카스가 싫어할 수도 있어.”
내가 말했다. 마음의 소리에 대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캔디스는 자신에게 한 대답으로 착각한 듯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캔디스는 내게 팔짱을 끼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에 들어가자 캐비닛 앞에서 책을 꺼내는 비앙카 레인과 마주쳤다. 비앙카 레인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내 주변을 얼쩡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캔디스 때문일까? 비앙카 레인이 내게 다가오려고만 하면 캔디스가 내게 다가온다. 마치 나와 비앙카 레인이 다시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듯, 다른 사람이 아닌 비앙카 레인이 내게 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런 캔디스가 싫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내 옆에 친구가 있다는 거니까. 나는 이제 외롭지도 않고 미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는다.
밀러 선생님은 내 자리를 캔디스 옆자리로 옮겨주었다. 밀러 선생님은 캔디스 코스트너가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 덕분인지 아무도 내게 쓰레기나 뾰족한 연필을 던지지 않았다. 캔디스가 맞을 수도 있잖아. 특히 제이미 콜린스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캔디스를 쳐다볼 수는 없잖아. 역시 학교의 여왕벌은 최고야.
캔디스를 보니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캔디스는 내 교과서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왜 웃어?』
『아니 그냥 기분 좋아서』
내가 쓴 말에 캔디스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펜대를 잡더니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에게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도 고개를 칠판으로 돌렸다. 아니, 돌리다가 비앙카 레인과 마주쳤다. 내가 비앙카 레인을 쳐다보자 비앙카 레인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나와 캔디스의 행동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왜? 도대체 왜? 나에게 미련이라도 남는 거야 비앙카 레인? 하지만 나는 비앙카 레인에게 다가가 질문 따위 건네지 않았다. 이제는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중에는 루카스도 있었고 케인 지거스도 있었다. 원래 케인 지거스는 여자 애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 나 때문에 같이 먹는 거 같긴 하다. 내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 나는 그런 케인 지거스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유일하게 내게 잘해주었던 케인 지거스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돌멩이가 자꾸만 내 방 창문을 두들겼다. 젠장! 깜짝 놀라 음성 틱이 나와버렸다. 어떤 녀석이 장난을 치는 거야! 설마 케인 지거스가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장난을 치는 거야?! “누구야!”라고 성질을 내며 신경질 적으로 창문을 내렸다. 큰 소리가 났다. 이 소리에 깜짝 놀란 건지 케인 지거스까지 세게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케인 지거스가 물었다.
케인 지거스는 범인이 아니군. 나는 대답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에 있는 사람 때문에 미간이 구겨졌다.
캔디스였다.
“캔디스 어쩐 일이야?”
캔디스는 대답 대신 나와보라는 듯 손짓을 해버렸다. 나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추워.”
케인 지거스가 말했다.
케인 지거스의 말에 겉옷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물론 엄마와 아빠에게 집 밖에 캔디스가 나오라고 해서 잠깐 대화를 하고 오겠다는 허락은 받아서 몰래 나무를 타고 내려가지는 않았다.
케인 지거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케인. 너 재키 좋아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케인 지거스는 성질을 내며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그렇게 세게 문을 닫아버릴 정도로 내가 그렇게도 싫은 거야, 케인 지거스!?
캔디스는 나를 레번 부르프 아저씨의 초콜릿 케이크 가게에 데리고 갔다. 캔디스는 내가 좋아하는 쿠키 셰이크 두 잔을 주문했다. 도대체 나를 부른 이유가 뭘까? 생각하며 빨대를 질겅질겅 씹어댔다. 그런 나를 쳐다보던 캔디스가 뭐가 답답했는지 내 두 눈을 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없어.”
나의 말을 믿지 않는 듯 캔디스가 재차 물었다.
“무슨 일 없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너 되게 큰일이 있어. 혹시…… 비앙카 레인과의 일이야? 비앙카 레인이랑 또 머리를…… 아, 미안.”
“괜찮아. 그리고 그 이후로 비앙카 ‘젠장’ 레인이랑 대화한 적 없어.”
“비앙카 레인이 널 괴롭힌다면 내게 말해.”
“그래. 고마워, 캔디스.”
달콤하고 시원한 셰이크를 마시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루카스가 상관없대.”
캔디스가 말했다.
도대체 뭐가 상관없다고 하는 거지, 루카스가?
“팬 픽션 말이야. 물론 그 팬 픽션이 루카스가 아닌 숀 블루의 팬 픽션일 경우에만.”
“물어본 거야?”
“응. 너는 루카스한테 한 마디도 못 할 거 같아서.”
캔디스는 나에 대해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캔디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캔디스가 누구를 좋아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거 불공평한 거 같아.
“넌 좋아하는 사람 없어?”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놀란 캔디스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애들은 관심 없다는 캔디스의 대답은 의문을 남겼다. 너도 애잖아 캔디스.
“유치한 십 대와 만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데.”
캔디스는 유치한 십 대에게는 관심이 없는지 학교 안의 유치한 십 대 남자 애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학교 밖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 “음…… 노코멘트.” 더 이상 캔디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여학생이 내게 팬 픽션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 시간에 한두 명씩 내게 와 팬 픽션에 대해 묻는데 이제는 대답하기 귀찮을 지경까지 왔다. 캔디스가 내 옆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오지 않았다. 정말 내 보디가드로 캔디스를 써야 되는 건가? 그러면 귀찮아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캔디스는 그 흔한 베이비시터나 극장 아르바이트 따위 필요 없는 부잣집 소녀였다. 시간당 100불을 준다면 생각 정도는 해보겠지만 20불 정도로는 캔디스에게 보디가드의 ‘보’자도 꺼내지 못할 거야.
“오늘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써지지가 않았어.”
내 옆에 앉아 밀러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는 캔디스에게 말했다.
“왜?”
내 말에 캔디스는 펜을 내려놓고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았다.
“비앙카가 대신 타이핑을 해줬거든.”
캔디스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행동 틱 때문에 타이핑을 할 수가 없어. 타이핑을 하려고 하면 갑자기 행동 틱이 나와서 자판을 막 누르게 되거든. 심지어는 저장을 하지도 못하고 행동 틱이 창을 꺼버려서 그간 쓴 글을 날려버린 적 있었어.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저장을 해야 되는데……”
“그렇구나.”
내 말에 캔디스는 나를 도와 타이핑을 해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아쉬웠다. 내 팬 픽션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캔디스는 도와 달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자진해서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괜히 비앙카 레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비앙카가 먼저 내게 팬 픽션을 써보라고 했거든. 내 로맨스가 자신만 알기 아까웠나 봐.”
“비앙카 레인인 자신이 쓰라고 했으면서 폭로를 해버린 거야?”
씁쓸한 듯 웃었다. 그러게. 자신이 쓰라고 했으면서 왜 폭로를 해버린 거야, 비앙카 레인! 밀러 선생님의 수업에 빠져 있던 비앙카 레인이 재채기를 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밀러 선생님의 수업에 빠져버렸다.
“그나저나 이야기는 계속 쓸 거야?”
이제 끝난 줄 알았던 대화였는데 캔디스는 내게 할 말이 아직까지 많이 남은 듯 보였다.
“계속 쓸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내용을 구성하고 있어. 루카스도 실망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쓸 거야.”
“그렇구나. 이제 안심된다.”
정말이지 캔디스는 내 말에 안심이 된 건지 줄곧 보았던 미소와는 다른 편안한 미소를 보였다.
2
비앙카 레인은 후회를 하고 있는 걸까? 캐비닛에서 마주친 비앙카 레인의 눈을 보고 생각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비앙카 레인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분명 후회를 하고 있는 걸 거야. 그때 캔디스가 다가왔다.
“재키, 나랑 같이 화장실 안 갈래?”
예전에는 왜, 늘, 여자 애들은 같이 화장실에 가는 거야? 오줌 싸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아니면 똥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어? 그것도 아니라면 왜? 비밀 이야기를 해야 돼? 화장실에서? 이런 생각을 했는데 캔디스와 함께 놀고 난 이후로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비앙카 레인과 같이 아무 이유 없이 화장실에 가는 건 내가 인기가 많아진 이전에는 별로 없었다.
“그래, 좋아.”
캔디스는 내게서 비앙카 레인을 밀어내고 나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네가 비앙카 레인이랑 같이 있는 걸 불편해하는 거 같아서 널 데리고 온 거야.”
캔디스가 말했다.
사실 캔디스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화장실에 데리고 온 이유는 알고 있었다.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내가 불편해하는 게 보이잖아, 안 그래? 캔디스는 화장실에서 나와 거울을 보며 입술 화장을 고쳤다.
“차라리 비앙카 레인에게 말해버릴까?”
입술 화장을 고치던 캔디스가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될 것처럼 신나 보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음…… 앞으로 네게 다가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비앙카 레인이 상처를 받을 게 뻔하다. 나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비앙카 레인에게 상처를 받았으면 됐지, 주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캔디스에게 말했다. “괜찮아. 비앙카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비앙카가 내게 피해를 주는 게 없잖아.” 난 말했고,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캔디스는 내 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해버렸다.
“모든 일의 원인은 너야.”
“…….”
난 화장실에 숨죽이듯 숨으며 캔디스와 비앙카의 얘기를 엿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화장실은 고요해졌고, 겨우 화장실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캔디스와 그 친구들은 얼마 전까지의 나의 과거를 보듯 비앙카 레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급식을 받고 자리에 가는 비앙카 레인의 다리를 걸거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비앙카 레인에게 물벼락을 쏟거나 수업 중에 공부에 빠져버린 비앙카 레인에게 뾰족한 연필을 던지거나. 이쯤 돼서 동정을 해야 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당항 것들이기에, 모든 원인은 캔디스의 말처럼 비앙카 레인이기에. 하지만 그다음의 괴롭힘은 지켜보는 나조차 눈썹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모든 일의 원인은 너야, 비앙카 레인.”
여자 애들은 비앙카 레인과 마주칠 때마다 비앙카 레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모든 일의 원인은 너야, 비앙카 레인. 그 어떠한 괴롭힘보다 정신적인 괴롭힘이 더 힘들다는 것은 캔디스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도 될 거 같아.”
혼자 속삭였다. 분노보다 동정이 커지려던 찰나였다.
비앙카 레인이 캔디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 나를 처다 보지도 않고 내가 있는 곳을 멀리 돌아서 간다. 케인 지거스에게 들은 말이다. 케인 지거스는 꽤나 진지하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넌 이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케인 지거스는 비앙카 레인이 제법 후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내게 미안함에 다가오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케인 지거스의 말에 오기가 생겼다.
“미안해서 다가오지 못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미안하면 더 적극적으로 사과를 해야 되는 거야! 넌 바보같이 비앙카 레인의 변호인이라도 되는 거야? 왜 비앙카 레인이 내게 해야 될 말을 네가 대신하고 있는 거야!?”
속과 겉은 달랐다.
“너도 바보 같은 행동은 그만해. 너를 괴롭힌 건 비앙카 레인이 아니야. 그런데 넌 너를 괴롭힌 이들이 아닌 비앙카 레인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거야. 내게 비앙카 레인은 그래도 되는 존재니까. 만만하니까.”
케인 지거스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 정답이니까. 비앙카 레인이 친구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별 거 아니었다. 캔디스처럼 여왕벌도 아니고 제이미 콜린스처럼 사악한 마녀도 아니다. 비앙카 레인은 그저 비앙카 레인이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내 말에 케인 지거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네가 뭘 안다고 헛웃음을 내뱉는 거야! 그들에게 당한 건 네가 아니라 나야!
3
집 앞에 캔디스의 빨간 스포츠카가 멈춰 섰다. 엄마와 아빠 심지어는 조니 아줌마와 케인 지거스까지 나와서 캔디스와 그 빨간 스포츠카를 쳐다보았다.
“나 옷 사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캔디스가 우리 집에 온 이유였다.
“그래, 얼른 다녀와. 친구가 부르잖아.”
내 대답 대신 고민을 하고 있던 내게 엄마가 말했다.
무료하게 주말을 보낼 수 없었던 나는 캔디스의 빨간 스포츠카에 올라탔다. 엄마는 내게 잘 나가는 친구가 생겨 기분이 좋은 듯 내 주머니에 100불을 쑤셔 넣었다. 깜짝 놀라 행동 틱이 나와 엄마를 때릴 뻔했다.
“100불로 너도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와.”
빨간 스포츠카가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문을 연 탓인지 날카로운 바람이 내 뺨을 마구 때렸다. 캔디스는 이런 게 일상이 되었는지 내게 문을 닫을까?라는 질문조차 건네지 않았다. 물론 난 이게 싫은 게 아니다. 좋다. 언제 빨간 스포츠카를 타면서 날카로운 바람을 맞겠어?
운전만 하기 심심했던 캔디스는 음악을 틀었다. 라디오에서 에이브릴 라빈의 걸프렌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Hey Hey You You I don't like your girlfriend~ No way No way I think you need a new one~ Hey Hey You You I could be your girlfriend~ 음악을 튼 캔디스는 신난 듯 음악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 노래를 되게 좋아하거든. 뭐,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온 노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데 나이는 상관없잖아.”
맞아, 케인 지거스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커트 코베인의 노래와 음악을 노래를 좋아해. 그래서 케인 지거스의 집에 갈 때마다 그 음악 소리가 들렸었지. 나는 자연스레 그 노래 가사를 외우게 되었고.
7마일을 달린 끝에 쇼핑센터에 도착했다. 쇼핑센터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그 사람들은 명품으로 치장했거나 명품 없이도 화려하게 입었다. 그에 비해 나는 캔디스가 열 번 이상은 입고 질려버려 내게 준 남이 입은 옷이다. 그렇다고 옷에 불평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공짜에다가 비싼 옷일 텐데…… 불만 따위 가지면 안 되지.
나는 비앙카 레인과 쇼핑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앙카 레인도 옷에 관심 없었고 나도 옷에 관심 없었다. 우리가 관심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숀 블루뿐이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었다. 그런데 캔디스와 친구가 된 이후부터 옷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보이는 게 다잖아. 속을 보여줄 수 없으니 겉을 보여주는 게 맞는 거지.
캔디스는 어릴 적 하던 인형 옷 입히기 놀이를 하듯 내 몸에 여러 옷을 가져다 댔다. 그러더니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냐며 묻고 싶었지만 심각한 캔디스에게 겁을 먹은 듯 나는 아무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한 벌이 두 벌이 되고 어느새 열 벌이 쌓였다. 캔디스는 그중에서 나와 가장 어울리는 옷 세 벌을 골랐다. 가격표를 보니 100불은 좋게 넘어버렸다.
나는 가격표를 보자 멋쩍은 듯 웃었다.
“입는다고 돈 내라고 하지 않아.”
맞아, 입는 건 돈을 내지 않아. 옷을 입는 값을 내라고 하는 옷 가게는 없어. 그런 곳이 있다면 바로 망해야 되는 곳이야! 캔디스의 말에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입었다. 행동 틱이 나와 100불이 넘는 비싼 옷을 찢어버리지 않을까 조심하고 조심했다. 사실 행동 틱 때문에 옷을 찢어본 적은 없다. 옷을 입고 거울을 보았다. 생각보다 잘 어울렸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었다. 캔디스가 입지 않는다며 주었던 옷을 처음으로 입고 거울에 섰을 때 딱 그 기분이다.
나와 어울린다는 옷을 입었다. 복고풍 노란색 체크무늬의 투피스. 이런 옷은 클루리스의 세어 호로위츠나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와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내가 세어 호로위츠 정도라는 건 아니다. 모든 옷을 입어보았다. 마지막 옷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비쌌다. 옷을 입기 전 옷을 사는 건 진작 포기해 버려서 그런지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 옷 예쁘다. 너랑 잘 어울려.”
캔디스가 탈의실에 들어왔다. 캔디스의 옷이 바뀌었다. 내게 골라준 옷보다는 더 예쁜 옷이었지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울리는 옷은 아니었다. 캔디스가 입어 예쁜 옷이었다. 캔디스는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캔디스가 골라주는 옷을 입을 때마다 나와 어울리지 않은 옷 같았다. 괴짜가 치어리더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
“어, 그 옷 사야겠다.”
캔디스가 말했다.
100불이 훨씬 넘는다.
“괜찮아. 살 생각 없어.”
“누가 너한테 사래? 내가 사주는 거야. 물론 난 너한테 점심 식사를 얻어먹을 생각이고.”
캔디스의 호의는 계속되었다.
나는 캔디스가 사준 옷을 입었다. 캔디스는 탈의실에서 보았던 옷을 입었다. 우리는 양손에 쇼핑백을 든 채로 쇼핑센터를 걸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캔디스가 너무 예뻐서 쳐다보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이상해서 어울리지 않아서 쳐다보는 건가? 캔디스는 시선을 즐겼고 나는 시선을 피했다.
하나뿐이던 쇼핑백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캔디스는 내게 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들다가 옷이 날아가면 어떡해. 늘어나는 캔디스의 쇼핑백에 비해 내 쇼핑백은 여전히 한 개뿐이다.
“재키, 네 옷도 골라 줄게.”
비싼 옷을 파는 매장으로 들어가려는 캔디스를 저렴한 옷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데리고 왔다. 비싸 봐야 40불이 최대인 티셔츠와 60불이 최대인 바지를 파는 매장이었다. 캔디스와는 거리가 먼 옷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내가 가져오는 옷마다 캔디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렇게 불만인 거야……? 하는 수 없이 캔디스가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돼.
캔디스는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 내게 화장까지 해주었다. 화장을 하면 자신감이 넘친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 깊게 얼굴을 땅으로 처박았다.
“아…… 재키, 미안한데 나 방금 전에 갔던 매장 다시 가봐야겠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옷이 안 맞는 거 같아서 교환하려고. 2층에 젤라토 매장 있는데 거기 가 있을래? 옷만 바꾸고 젤라토 매장으로 바로 내려갈게.”
캔디스의 말에 하는 수없이 혼자서 젤라토 매장으로 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이상한 거야? 지금은 투렛도 심하게 나오지 않는데? 이런 “젠장!” 음성 틱이 나왔다. 심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 취소. 말하기 무섭게 나와 버리는 게 어디 있어.
“어, 미글린 잭?”
내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을 쳐다봤다. 저 미글린 잭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뜩이나 내가 지금 입은 옷도 남들에게 보여줄 정도의 떳떳한 옷이 아니기에 내 고개는 저절로 내려갔다. 미글린 잭이 자신을 세어 호로위츠로 착각해서 그녀의 스타일의 옷이라도 입었다는 걸 소문이라도 내면 큰일이다.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으면 처박을수록 목소리는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러더니 의자 끄는 소리까지 들렸다. 젠장, 네가 거기 왜 앉아! 그나저나 너는 누구야! 케인 지거스라도 되는 거야!? “젠장!” 진심을 담은 음성 틱이 나왔다. 이제 미글린 잭이 아닌 척도 하지 못하겠다. 뭐, 내 앞에 앉은 남자는 내가 미글린 잭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아닌 척해서 뭐 해.
나는 결국 고개를 쳐들었다.
“어…… 루카스?”
루카스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바로 루카스다. 네가 여기 왜 있어부터 시작해서 왜 내 앞에 앉는 거야? 거기는 캔디스 자리란 말이야! 까지 수십 개의 생각이 오갔다.
“화장한 거야?”
화장한 내 얼굴을 본 루카스는 내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는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루카스의 얼굴과 가까워질 때마다 더 깊은 땅속으로 얼굴을 숨기고 싶을 심정이다.
“잘 어울려.”
루카스의 말에 고개를 들고 루카스를 바라보자 루카스가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루카스의 웃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두근거림은 내가 루카스에게 72번 반한 이후로는 또 처음이다. 오늘까지 난 루카스 주니어에게 73번 반했다.
“그나저나 캔디스가 날 부른 이유가 이건가……”
루카스가 혼잣말로 떠들어댔다.
하지만 내 귀에는 제대로 들렸다. 그렇다면 캔디스는 어디에 간 거지? 난 핸드폰을 꺼내 캔디스에게 전화를 했지만 모두 수신 거부당해 버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 캔디스는 『재미있게 놀아!』라는 문자만 남긴 채 핸드폰을 꺼버렸다. 아, 아니…… 캔디스 콜먼 씨, 이러면 내가 곤란하잖아요…… 저기요……!
“저기…… 캔디스가 장난을 친 건 가봐.”
이 말을 하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건지 모르겠다. 겨우 열 세 글자밖에 되지 않는데. 하긴 말은 짧으면 짧을수록 더 긴장이 되긴 하지…… 아무튼 이게 아니지. 너는 왜 여기 온 거야, 루카스. 캔디스가 불렀다고 오는 거야?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난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았거든.”
뭐, 뭐?! 그 말은 설마 루카스도 캔디스에게 관심 있는 거야? 그래 프롬 퀸을 사랑하지 않을 남자는 없지. 프롬 퀸과 프롬 킹의 조화…… 너무 아름답잖아?
“아니, 거절이든 뭐든 얼굴 보고 하는 게 예의잖아. 물론 사랑 고백을 하려면 거절할 마음이기도 하고. 아, 거절은 이상한가? 애초에 우리가 사랑 고백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무슨 말이지. 프롬 퀸과 프롬 킹이 사랑 고백하는 게 이상하다고? 설마 배다른 남매라도 된다는 거야? 설마 이거 미글린 잭의 성장 로맨스에서 막장 드라마가 되는 거야?
“대부 딸이거든. 너와 케인처럼 나와 캔디스는 가족이나 다름없어. 물론 결혼을 하면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지만 우리는 서로가 그런 걸 원하지 않거든.”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나와 케인처럼 루카스와 캔디스는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난 케인 지거스를 가족으로 생각한 적 없는데…… 더군다나 결혼을 하면 문제가 아주 많아질걸? 이건 법적으로도 막아야 되는 관계라고!
“표정이 왜 그래?”
루카스가 물었다.
그러니까 내 표정이 왜 그렇냐고? 내가 방금 전에 했던 생각이…… “아! 케인 지거스랑 결혼하는 상상을 했어. ‘젠장!’” 오, 굿 타이밍! “상상만 해도 토가 나오는데 토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내 말에 루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너에게 케인은 그 정도인 거야?”
“아니지, 그 이상! 나와 케인 지거스의 관계는 가족이 아닌 앙숙으로 생각하면 돼. 그리고 나랑 케인 지거스가 결혼을 하면 이건 법적으로 막아야 되는 거야. 그건 세계 재앙이 될 거라고!”
지금 즈음 케인 지거스는 귀가 가렵다고 막 긁어대겠지?
“하하하, 그렇구나. 너희 제법 친하게 보였는데. 넌 케인을 정말 싫어하나 봐.”
“싫어하는 건 아니야. 방금 전에 말한 거처럼 앙숙 정도? 그래도 케인 지거스는 나에게 유일하게 잘해준 사람이기도 해. 10년 이상을 알고 지냈는데 처음으로 케인 지거스에게 감동을 받았다니까?”
“좋은 녀석이야, 케인은.”
그러게. 10년 이상을 알고 지냈는데 최근에서야 케인 지거스가 좋은 녀석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아, 방금 전에 말하려고 했는데 옷이……”
잊고 있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것을. 루카스의 말에 급격하게 창피함이 몰려왔다. 나는 양팔로 X자를 만들며 옷을 가렸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루카스의 말은 내게 의문점을 던졌다.
“이상하다는 게 아니야. 잘 어울린다는 거야.”
루카스의 말에 양손을 내렸다.
“저, 정말?”
바보처럼 루카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정말. 정말 잘 어울려, 미글린. 처음 봤을 때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너인 걸 알고 난 후 말을 꼭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
74번째 반했다.
쇼핑센터를 나온 나는 루카스의 차를 탔다. 괜찮다고 우버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지만 위험하다며 극구 부인하고 차를 태워준 루카스였다. 다섯 시도 채 되지 않았고 7마일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가 뭐가 무섭다고 유난인지, 물론 그땐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케인 지거스라면 모르겠지만……. 천하의 루카스 주니어가 내게 차를 태워준다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당연 타야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집으로 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꿈같은 주말을 이렇게 끝낼 수 없지. 프랭클린 애비뉴를 지날 때 용기를 내어 루카스에게 말했다.
“나 그리스피 천문대에 가고 싶어!”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루카스는 어깨를 들썩였다.
“어, 어?!”
그리고 당황까지 해버렸다.
이 바보 같은 미글린 잭, 루카스가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으면 그냥 바로 집이나 가지, 뭐 하는 짓이야. 케인 지거스가 한심하다고 혀를 끌끌 차겠어.
그러더니 루카스가 유턴을 해버렸다.
“가, 가려고? 진짜?”
내 말에 루카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3.6마일을 달려 그리피스 천문대에 도착했다. 여긴 비앙카 레인과 몇 번 왔었는데 비앙카 레인이 아닌 다른 사람, 남자랑 오는 건 또 처음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리피스 천문대에 왔던 게 올해 3월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여기에 남자를 데리고 올 거라고는…… 그리고 그 남자가 루카스 주니어일 거라고는 생각도 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남자가 숀일 거라고는 몇 번 생각했었지만…….
어느새 밤이 찾아왔고,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끝내 줬다. 루카스는 내 옆에서 야경에 푹 빠진 듯 야경 사진을 찍기 바빴다. 날씨는 쌀쌀 해졌고 찬바람이 내 몸을 강타했다. 짧은 옷이라 그런지 몸을 벌벌 떨었다. 그런 나를 본 루카스는 자신이 입은 점퍼를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때 나는 저절로 행동 틱이 나와버렸고 주먹으로 루카스의 가슴을 쳐버렸다.
“괜찮아.”
루카스가 말했다.
내가 자신을 주먹으로 쳤는데도 괜찮다는 거지? 이래서 여자 애들이 루카스를 좋아하나 봐…… 루카스 주니어에게 75번 반했다.
“또 가고 싶은 곳은 있어?”
“할리우드 사인이 보고 싶어.”
“갈까?”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갈래.”
얼떨결에 다음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루카스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운 것도 아니고 키스를 해서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루카스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거일 수도 있고. 내가 루카스의 시간을 뺐었으니까.
루카스의 차는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루카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분위기가…… 분위기가 꼭 숀의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분위기 같다. 영화에서 보면 이 상태에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하는데, 루카스가 나랑 키스를 할리가 없지. 당연하지. 루카스가 나한테 키스를 하고 싶겠어? 나는 모르지만…… 라고 생각한 지 10초도 채 되지 않아 루카스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와 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다. 내 손과는 달리 루카스의 손은 너무 따뜻했다. 그 손길에 소름인지 뭔 지 알 수 없는 게 쭈뼛 서 버렸다. 설마 지금 이거 나한테 키스를 하려는 건 아니지?
“겁먹은 거야?”
루카스가 말했다.
루카스의 말에 대답도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이 그저 침만 삼켰다. 목에 매실 씨앗이라도 낀 듯 침을 넘기는 게 힘들었다.
루카스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웃으면 내가 너에게 넘어가잖아, 루카스 주니어……. 내 볼을 쓰다듬던 루카스는 내 뺨에서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처럼 루카스는 내게 키스를 해버렸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분위기에 휩쓸려서 하는 거야? 나는 첫 키스였던 이 키스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영화에서 보면 두 마리의 뱀이 키스를 하는 거 같던데…… 아니면 참새처럼 쪽쪽 대거나.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생각이 섞여버렸다. 으악, 머리가 터질 거 같아. 터질 거 같은 머리는 터지지 않고 볼이 터져버렸다. 붉게 변한 내 볼은 태어날 때부터 홍조가 있는 거처럼 새빨개졌다.
“볼이 빨개.”
루카스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영화에서 키스를 하면 서로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짓는데 루카스는 키스를 여러 번 했는지 부끄러운 듯 웃지 않았다.
“아…… 그래……?”
내 말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앞 도로에 놓인 차의 전조등이 반짝거려 부모님이 나오지 않을까 케인 지거스가 나와 우리가 키스했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키스할 때는 하지 않은 뒤늦은 걱정이었다.
결국 나는 도망가듯 차에서 빠져나왔다.
방에 들어온 나는 다행인지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부모님과 마주쳤다면 왜 이렇게 늦은 거야부터 왜 그런 옷을 입은 거야 그리고 저 밖의 차는 누구 차니 등등 질문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을 지울 도구가 없어 손으로 벅벅 긁으며 화장을 닦아내려 했지만 눈을 칠한 화장은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 있는 내 모습이 마치 판다처럼 보였다. 할 수 없이 엄마가 잠든 안방으로 건너가 엄마를 깨웠다.
“눈 화장을 지울 거 있어요?”
내 말에 엄마는 나를 안방에 딸린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엄마는 화장 솜에 눈을 닦는 오일을 뿌려 내 눈 위에 가져다 댔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재미있게 잘 논 거야?”
엄마의 말에 나는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차마 캔디스에서 루카스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 집 앞에 세워놓은 루카스의 차 안에서 루카스와 키스를 했다는 것은…… 더더욱 말할 수가 없지.
또다시 돌멩이가 창문을 괴롭혔다.
내가 잘 들어왔는지 확인하려고 캔디스가 또 돌멩이를 던진 건가? 생각하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는데 나를 부른 사람은 캔디스가 아닌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흔들어 댔다. 아차 키스 때문에 쇼핑백을 챙기는 걸 잊어버렸다.
“내일 가져다줄까, 미글…… 재키?”
뒤늦게 케인 지거스까지 문을 열어버렸다.
“쟤는 여기 왜 있어?”
케인 지거스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케인 지거스의 말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루카스가 내 이름을 미글린이 아닌 재키라고 불렀어! 내 귓가에 재키라는 이름이 모기처럼 맴돌았다. 재키, 재키, 재키! 모기가 내 귓가에 대고 재키라고 부른다면 기꺼이 내 피를 내줄 수 있어!
“루카스! 미글린 잭은 캔디스랑 있었던 거 아니었어?”
눈치 없는 케인 지거스가 소리쳤다. 케인 지거스 이 녀석아 우리 엄마 아빠 깨울 작정이야? 동네에 내가 루카스 주니어랑 단 둘이 있었다고 소문내고 싶은 거야!? 루카스는 케인 지거스에게 궁금증을 주고 싶은 건지 어깨를 으쓱이고 웃어 보였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루카스에게 말했다.
“루카스, 문 앞에 놓고 가. 내가 내려갈게.”
내 말에 루카스는 집 앞에 쇼핑백을 놔두었다. 내 얼굴을 보려고 하는 건지 루카스는 차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현관 앞에 있을 루카스를 보기 위해 재빨리 1층으로 내려갔다.
“젠장!”
이런 젠장, 엄마와 아빠가 나보다 훨씬 빨랐다. 방을 2층에서 1층으로 옮겨야 되나……. 루카스와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하하하……”
아빠는 자신을 이해시켜 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미간을 구기고 나를 쳐다봤다. “그 여자애는 눈속임이었니?” 엄마가 물었다. 왜 케인 지거스랑 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루카스랑 있으니까 이러는 거야, 엄마.
“쇼핑백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둘이 같이 쇼핑한 거구나. 그 여자애는 널 데려다준 거고. 맞니, 학생?”
엄마가 루카스에게 물었다. 엄마의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다.
루카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또다시 멋쩍은 듯 웃었다.
루카스의 표정을 보니 내가 더 미안해졌다. 루카스 얼른 도망 가! 도망가버려 루카스 주니어! 속으로 몇 번이고 외쳤지만 루카스는 듣지 못했다.
루카스의 차는 집 앞을 떠났고, 굳게 닫힌 현관문 앞에서 살벌한 공기만 오갔다.
큼큼, 엄마가 목을 가다듬었다. 무슨 어마 무시한 말을 할까 걱정됐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젖은 옷을 입으면 감기에 걸릴 거야. 올라가서 옷이나 갈아입어야지.
“미글린 잭.”
엄마가 내 이름을 말했다.
“일주일 동안 외출 금지야.”
엄마가 말했다.
태어나서 외출 금지는 처음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외출 금지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처음으로 딸이 남자랑 단 둘이 있었는데…… 딸이 이제 괜찮아졌는데…… 딱 이런 표정이었다. 차라리 외출 금지를 당할 바에 행동 교정 캠프에 또 보내는 게 낫겠다.
졸업반 여자 애들 중에서 남자랑 둘이 있어본 적 없는 여자는 나 밖에 없을 거야! 내가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 애와 같이 있었는데 왜 우리 엄마와 아빠는 내게 외출 금지라는 벌을 내리는 거야! 모든 여학생들이 제일 부러워할 정도로 루카스는 세인트 레거시 학교의 인기 남이자 프롬 킹 1순위 후보인데 엄마는 왜 모르는 거야! 괜히 심술이 났다.
엄마의 외출 금지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대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일 때문에 늦게 들어와서 내가 집에 없는지도 모를 텐데…….
외출금지 첫날에는 캔디스의 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레번 부르프 아저씨의 초콜릿 케이크 가게에 갔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친구들이 대화를 하는 걸 들었다. 나는 듣기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다. 난 듣는 것도 만족해! 캔디스가 신나게 떠들어대고 내 얼굴에 생크림을 묻혔다. 생크림 전쟁이 일어났다.
외출금지 두 번째 날은 루카스의 차를 타고 할리우드 사인을 봤다. 루카스는 나의 약속을 지켜버렸다. 할리우드 사인은 밤에 봐야 된다는 말이 조금 아쉬웠다. 외출 금지를 당한 내게 밤은 아주 위험하지.
“나중에 또 오자.”
루카스의 말에 안심했다.
외출금지 세 번째 날 아침에 엄마에게 늦게 온 걸 들켜버렸다. 엄마는 조니 아줌마에게 내가 몇 시에 집에 들어오는지 확인을 부탁했고, 착한 조니 아줌마는 엄마에게 내가 늦게 들어왔다는 걸 얘기했다. 나는 조니 아줌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올 거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외출금지 일주일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