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미글린 잭 3
이름을 싫어하고 투렛을 가진 열여덟 소녀 미글린 블루 잭
9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소문은 번개보다 더 빨리 퍼져버렸다. 아니, 소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사실이다.
다들 나를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는 척이 아니라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인스타그램에 친구 신청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다들 나를 미글린 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비앙카만 부르는 이름인 재키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내게 친한 척을 하는 누군지도 모르는 눈앞에 있는 키가 작은 여자 아이에게서 들었다.
“재키, 네 소설 잘 봤어. 아, 팬픽션이지? 숀 블루 팬픽션. 네가 쓴 거 알고 있어,”
궁금증이 풀렸다.
비앙카가 소문을 냈거나 해밀턴 교장이 소문을 냈거나. 그게 아니라면 제삼자가 나와 해밀턴 교장의 이야기를 엿듣고 소문을 냈거나. 내 예상은 후자였다.
“비앙카, 비앙카.”
비앙카는 내게 달라붙는 여자 애들을 피해 저만치 멀리서 걷고 있었다. 나는 그런 비앙카를 불렀다. 비앙카가 내게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 이래.”
그러게. 이건 아주아주 놀랄 일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아니, 이런 생각 따위 한 적도 없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나도 비앙카도 숀도 조니 아줌마도 몰랐을 걸?
“미글린…… 아니, 재키 안녕?”
캔디스가 지나갔다. 내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그것도 내 이름을 미글린 잭이 아닌 재키라고 부르면서.
끼야아아아아! 나는 숀을 만난 소녀 팬처럼 속으로 외쳤다. “캔디스가 나한테 안녕이라고 했어, 비앙카.” 캔디스가 지나간 후, 비앙카에게 내 기쁨을 표현했다. 우린 캔디스가 내게 인사한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Mean girl에 레지나 조지가 있다면 내 이름은 미글린 잭에 캔디스 콜먼이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캔디스가 레지나 조지처럼 나쁜 X의 부류는 아니겠지만.
“나 지금 심장이 ‘젠장’ 떨려.”
내 말에 비앙카는 나의 심장께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누군가 보면 되게 이상한 장면 같지만 이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비앙카와 함께 교실로 들어가니 모두 우리를 아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비앙카는 그들의 시선 밖에 있었다.
“재키 안녕.”
“재키 어서 와.”
“미글, 아니 재키 안녕─”
여학생들이 내게 한 말이었다. 내 옆에 있는 비앙카가 소외감을 느낄 만큼 다들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다정하게 대했다. 나는 그게 너무 이상했다. 낯설었다. 평소 같았으면 내게 말을 걸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이 이렇게 다가온 게 너무 낯설어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틱이 나왔다. 그들은 이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 듯 웃었다. 비웃음이 없자 나는 더 당황해 버렸다. 심지어는 내 뒤에 앉은 아이는 내가 자리에 다가오자 의자까지 빼줬다. 무슨 신사라도 된 마냥 나를 보며 미소까지 지으면서. 비앙카 나를 좀 도와줘. 이렇게 될 거라고 말 안 했잖아. 하지만 비앙카는 내 시선을 피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밀러 선생님이 교실을 빠져나간 뒤, 여학생들이 내게 다가왔다.
“재키, 점심 같이 먹을래?”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집 갈래? 같이 영화 보자!”
“재키 나랑 놀자. 엄마가 애플파이 만들어 준다고 했거든. 애플파이 좋아하니?”
“재키, 오늘 파티에 오지 않을래? 우리 집에서 하거든. 자쿠지도 있어.”
답하기도 힘든 질문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 비앙카랑 같이 밥 먹을 건데…… 오늘 조니 아줌마 집에 가기로 해서……”
그리고 마지막 말에 대한 대답은…… 솔직히 솔깃했다. 파티 같은 것도 초대받는 것도 처음인데 간다고 할까? 그럴까? “그래, 파티는 좋아. 비앙카랑 같이 갈게.” 유일하게 웃으며 한 대답이었다. 분명 오늘 조니 아줌마 집에 간다고 했는데. 뭐, 안 가면 되지.
“비앙카도……? 그래, 뭐…… 좋아.”
내게 파티를 가자고 했던 제이미는 비앙카와 가겠다는 내가 못마땅한 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비앙카가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을 걸 아는 듯, 제이미는 거절 따위 하지 못했다.
내게 달려드는 여학생 틈을 빠져나와 문 밖에서 날 기다리는 비앙카에게로 다가갔다.
“비앙카! 제이미가 파티에 초대했어.”
“파티? 너만?”
“니, 우리 둘 다. 파티 같은 거 처음이잖아, 가자.”
내 말에 비앙카가 양쪽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10
파티는 열광적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긴장을 한 탓인지 평소보다 투렛이 더 심해진 느낌이 들었다. 클로자핀을 먹고 왔음에도 증상이 억제되지 않았다. 비앙카는 나에게 다섯 번 이상 맞았고, 내게 스무 번 이상의 욕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비앙카가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우리 괴짜는 아니잖아. 이건 겨우 파티야. 파티에 겁먹지 말자고. 우리는 초대받은 사람이잖아, 안 그래, 재키?”
비앙카의 말에 클로자핀의 효능이 돌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이미는 나를 반겼다. 안녕, 재키. 어, 그리고 비앙카. 제이미는 비앙카는 별로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비앙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비앙카는 펀치 잔을 들고 구석에 있는 자리로 갔다. 소파에는 캔디스나 루카스처럼 인기 많은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케인 지거스도 앉아있었다.
“넌 또 왜 왔어?”
케인 지거스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제이미가 초대해 줘서 왔어.”
내 목소리에 캔디스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달려들었다. 팔을 넓게 벌린 채로. 금방이라도 저 품에 나를 안길 거처럼.
“재키─”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캔디스는 품에 나를 안으며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이런 상황이 적응되지 않아 돌처럼 굳은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이 아닌 행동 틱과 음성 틱이 나와 캔디스를 당황하게 할 정도였다. 캔디스는 날 끌고 루카스와 케인 지거스가 있는 소파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그 소파에 정확히 말하자면 루카스 옆에 날 앉혔다. 팬 픽션의 주인공 옆에 앉는 게 무척이나 떨렸다. 그에 비해 루카스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비앙카는 혼자 서 있었다. 나는 비앙카에게 손짓했지만 비앙카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자리를 떠났다. 비앙카가 자꾸 밟혔다.
“재키, 재키.”
뭐가 급한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불러 대는 캔디스다. 나는 그런 캔디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응?”
“나 이야기 좀 해줘.”
“뭐를?”
“네 팬 픽션 말이야. 그거 숀 블루 팬 픽션이잖아. 애들이 하도 떠들어대서 읽어봤는데 재미있더라.”
캔디스처럼 모든 아이들이 나의 팬 픽션을 숀의 팬 픽션으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지 주인공 이름이 루카스 주니어가 아닌 블루다. 숀 블루의 그 블루! 그리고 내 필명도 블루였고. 프로필 사진도 숀의 사진이다.
“나도 그거 잘 봤어.”
루카스가 말했다. 나의 그, 나의 블루, 루카스가!
그 어느 칭찬보다 루카스의 칭찬이 가장 듣기 좋았다. 초콜릿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했다. 드류 베리모어와 아담 샌들러는 첫 키스만 50번 했지, 나는 루카스 주니어에게 50번 반한 기분이었다.
“설마. 너도 봤다고, 진짜?”
루카스의 말을 믿지 못하는 케인 지거스였다. 저 녀석은 초 치는데 뭐가 있다니까.
“왜, 나는 뭐 연애 소설 같은 거 보면 안 돼?”
“그건 그냥 네가 생각하는 그런 연애 소설이 아니야. 숀 블루의 팬 픽션이라고. 트와일라잇의 팬 픽션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나 원 디렉션의 팬 픽션인 애프터와 같은 거라니까?”
짜증 나는 케인 지거스였지만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하는 거지 네가? 하지만 케인 지거스의 말은 고마웠다. 내 팬 픽션을 그 정도로 봐준 거잖아. 되려 고맙다. 그렇게 가치를 높게 평가했으니까. 케인 지거스 답지 않게! 나는 케인 지거스의 뜻밖의 칭찬에 기분 좋은 듯 웃어댔다. 케인 지거스는 나의 이런 웃음을 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남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어퐁 게임을 하러 갔고, 캔디스와 집주인 제이미를 포함한 치어리더 부류의 여학생들은 내게 다가왔다. 비앙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서서 홀짝홀짝 펀치를 마셔댔다.
여학생들이 다음 이야기에 대해 내게 묻기 시작했다.
숀 블루 팬 픽션이라는 가면을 쓴 루카스 주니어 팬 픽션인 <내가 사랑하는 졸업반의 프롬 퀸>은 해밀턴 교장에게 불려 교장실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7회까지만 블로그에 연재를 했다. 그 이후로는 비앙카와 글을 쓰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을 조금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캔디스와 루카스가 좋아해 주는데 당연 팬 픽션을 써야지, 해밀턴 교장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조만간 블로그에 올라갈 거야.”
내가 말했다.
내 말에 캔디스는 물개처럼 박수를 치고 환하게 웃었다. “다 쓰면 말해줘야 돼. 내가 네 팬 픽션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숀 블루한테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 그가 멋있어 보인다니까?” 내 팬 픽션은 숀 블루의 팬을 만드는 팬 픽션이었나 보다. 나야 좋지. 비앙카 말고도 숀 블루를 좋아하는 친구를 사귄 거니까.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테일러 잭이 숀 블루고 ‘그’이자 블루는 루카스 주니어라는 것을. 숀 블루의 팬 픽션이라는 가면을 쓴 나의 사심 채우기용 소설이라는 것을.
“여자들. 거기 그렇게 앉아 유치한 얘기만 하지 말고 비어퐁이나 할래?”
마틴의 말에 캔디스와 제이미 그리고 다른 여학생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캔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나를 보더니 “왜 안 일어나? 같이 하자, 비어퐁 게임. 재미있어.”라며 내 팔을 잡았다.
얼떨결에 케인 지거스와 같은 팀이 되었다. 나는 표정으로 불만을 표출했고, 케인 지거스는 내 표정을 읽은 듯 나를 옆으로 밀쳤다. “걸리적거려, 미글린 잭.” 표정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나와 달리 이 녀석은 행동으로 표출했다. 어디 비어퐁 게임 잘하나 봐라. 너 때문에 지면 내가 널 죽일지도 몰라.
그러나 내 예상에 들어맞지 않았다. 케인 지거스는 가장 잘하는 게 비어퐁 게임이라도 되는 듯 공을 던지는 족족 컵에 들어갔다. 요 녀석 밥 먹고 비어퐁만 하는 거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케인 지거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또 나왔어, 또. 저 한껏 추켜올린 눈썹. 케인 지거스는 자만할 때 눈썹을 올리는 버릇이 있다. 나는 저 두 눈썹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표정 정말 꼴 보기 싫다고. 이 말을 들어도 케인 지거스는 별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
너무 잘한 탓일까,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케인 지거스는 탁구공을 놔두고 비어퐁 게임이 열리는 주방을 빠져나갔다. 케인 지거스 때문에 나 혼자만 파트너가 없는 쓸쓸한 신세가 되었다.
“너 파트너 없어?”
고개를 돌자 보이는 건 루카스였다. 이런 상황에서 루카스가 내게 다가온 건 51번 반하라는 뜻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루카스를 쳐다보았다. 당황한 나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린 루카스의 코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럼 나랑 파트너 하자. 그런데 나 케인처럼 잘하지는 못해.”
괜찮아, 괜찮아. 네가 공을 들지 못해도 나는 네 모든 걸 용서하고 수용할 수도 있어. 너는 루카스 주니어잖아. 나는 아주 관대하면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돼 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서 비어퐁 게임을 하며 공 한 개를 넣었다고 방방 뛰며 열광하는 루카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되려 기분이 좋아졌다. 진작 케인 지거스가 아닌 루카스와 함께 파트너를 할 걸 그랬다. 내 차례가 왔고, 루카스는 내 손을 잡았다. 행동 틱 때문에 이리저리 공을 튕길까 걱정돼서 하는 행동일까?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에 땀이 날까 걱정됐다. 이런 내 마음을 루카스가 알까? 루카스가 알고 있는데도 내 손을 잡았다면 루카스는 여우일까?
내가 공을 던지지 않자 루카스는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루카스의 시선에 침을 꼴깍 삼켰다. 내 모습을 보던 루카스는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왜, 못 하겠어? 내가 대신 던져줄까?”
루카스의 미소는 대천사 미카엘의 미소보다 아름다웠다. 시공간이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모든 게 멈췄고 나와 루카스의 시간만 흘러버린 기분이었다. 모든 세상이 흑백으로 변했다. 루카스와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유일하게 색이 있는 건 나와 루카스뿐이었다. 네가 미카엘이라면 나는 타락해서 지옥으로도 갈 수 있어. 내가 루시퍼가 될 수 있다고, 루카스!
나 미글린 잭은 오늘부로 루카스 주니어에게 52번 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