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선을 분명히 하게 된다.
나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몰려가도, 내가 옳지 않다고 느끼면 따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불편한 상황도 생기고, 만들지 않아도 될 ‘적’이 생길 때도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나를 구부릴 순 없다.
오히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선을 분명히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아주 단순하다.
커피 마시는 것, 요가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혼자 가볍게 떠나는 여행,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어두는 일.
그리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나만의 책방을 운영하는 것.
그 책방은 북카페 형태였으면 좋겠다.
깔끔하면서도 옛날 책방 특유의 정취가 느껴지고, 책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꽂혀 있는 공간.
사람들이 조용히 들어와 앉아 책을 펼쳐보고, 커피 한 잔과 쿠키를 곁들이며 쉴 수 있는 곳
가끔 혼자 그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한다.
책 진열장은 어떤 느낌이면 좋을지, 의자는 푹신한 게 좋을지, 음악은 너무 튀지 않는 재즈나 클래식이
좋을지.
실제로 시간이 날 때면, 마음에 들어 보이는 북카페를 찾아가 본다.
음료를 시켜놓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상상을 덧붙인다.
"내 공간이었으면, 저 테이블은 창가 옆으로 옮기고 싶다."
"이 조명은 좀 어두우니까 따뜻한 색깔로 바꾸면 좋겠다."
혼자만의 답 없는 설계도를 그리고, 또 지운다.
인터넷 블로그도 찾아보며 운영 노하우 같은 걸 살펴보기도 한다.
넓고 세련된 북카페들을 보면 괜히 기가 죽기도 하지만, 곧 내 상상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저 조용하고 따뜻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찬 작은 공간이면 된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내 인생의 행복 수치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뭘 싫어할까?
사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떠올릴 때면 긴장이 좀 된다.
나는 너무 시끄러운 공간을 견디지 못한다.
카페에 갔다가 음악이 너무 크거나 사람들이 시끄럽게 대화하는 소리가 겹치면, 금세 머리가 아파온다.
예전엔 친구들과 번화가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나는 대화에 집중도 못 하고 자꾸 창밖만
봤다.
결국 “우리, 그냥 조용한 데로 가자”라고 말해버렸다.
술도 못 마신다.
20대엔 친구들이랑 소주잔 부딪히며 웃던 기억도 있지만, 지금은 맥주 한 캔만 마셔도 머리가 띵하다.
그래도 여름밤, 창문 열어놓고 혼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시원한 맥주 한 캔’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결국 한 모금 마시고는 “역시 안 돼” 하며 그대로 싱크대에 버린다.
그리고 생수 한 컵 마시며 혼자 머쓱하게 웃는다.
놀이기구도 정말 못 탄다.
놀이공원에 가면 늘 “나는 애들이랑 자리 지킬게”라고 말한다.
바이킹은 아예 상상도 하기 싫고, 어릴 적엔 그네도 너무 높이 올라가면 무서웠다.
우리 아이들도 다행히 놀이기구에 큰 흥미가 없어서, 우리 가족은 놀이공원을 가도 주로 산책을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엄마, 이거는 무서워서 안 탈래”라는 아이의 말이 오히려 나에겐 다정한 위로처럼 들릴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순간이 온다.
직장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은 일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데 자꾸 떠넘기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단호하게 “싫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날 만만하게 보고, 나조차 나를 가볍게 여기게 된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언젠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한 걸음씩 내 꿈을 향해 가야 한다.
책을 한 권 한 권 쌓아두고 그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순간이 참 좋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밑줄 긋고, 그런 문장으로 글을 써 내려갈 때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뭐라 하든, 그건 분명히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