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나에게

나를 단단하게 만든 시간들

by 라라


지하철에서 나는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밀폐된 공간 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숨이 막히고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심한 입덧 탓에 겨우 몸을 이끌고 달려 내렸지만, 계단을 오르다 앞이 흐려지더니 기억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지하철 의자에 앉혀 주고 있었다.



종로에서 살던 나는 임신한 몸으로 잠실까지,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출퇴근을 했다.
매일 아침저녁, 붐비는 인파 속에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버티는 시간이 많았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졌고, 피로는 끝없이 쌓여갔다.

입덧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임신 기간 내내 이어졌다.
속이 울렁거려 사이다를 달고 살았고, 밥 냄새와 김치 냄새가 너무 힘들어 구내식당 대신 간단한

도시락을 싸 다녔다.
업무 중에도 구토와 어지럼증이 반복됐지만,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주변에서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고, 동료들의 작은 배려 덕분에 회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된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멀리 사는 엄마는 동치미가 먹고 싶다는 말에 직접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셨다.
무더운 여름, 살짝 얼린 동치미 국수 한 그릇은 속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엄마의 손맛은 그리운 마음까지

달래주었다.
남편은 체한 내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었고, 동료들은 서서 해야 하는 일을 대신 맡아주었다.
그 모든 순간이 ‘조금만 더’라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입덧이 가라앉을 줄 알았지만, 엄마도 10개월 내내 입덧을 했다는 말을 듣고 체념했다.
생강사탕을 입에 물고 하루를 견디는 동안, 뱃속 아이가 발로 차고 움직일 때마다 생명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에서 양수가 적어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이 도착해 수술동의서를 쓰던 중, 갑자기 아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정보다 한 달 일찍 세상에 나온 아이는 다행히 건강했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준비도 없이 엄마, 아빠가 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작은 몸을 품었을 때의 벅참과 안도는 지금도 선명하다.
그 시간을 버텨낸 나 자신과, 함께 해준 남편과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시간은 쉽지 않았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한 생명을 품고 맞이한 기적의 순간을 평생 간직하게

했다."

어느 날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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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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