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도적인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한편으로는 성격이 급하고, 계획적이기보다 충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아주 못된 사람 같은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적잖이 노력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온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는 좀처럼 닿지 못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원들에게 강압적이거나 분을 참지 못하는 선배들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다짐이 다짐으로 끝나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주변에서 온유한 선배라는 말을 듣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10년 후, 누군가에게 온유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바람으로, 제가 그리는 온유함이 어떤 것인지
이 글에 정리해 보려 합니다.
온유함은 나약함이 아닙니다.
수동적인 태도도, 회피적인 행동도 아닙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나 무색무취한 성품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면 온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한자 안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부드러울 유(柔).
이 글자는 창(矛)과 나무(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무 위에 창이 얹힌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해 보입니다.
부드러움을 뜻하는 글자 안에 왜 날카로운 창이 들어 있을까.
그런데 천천히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창끝처럼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새순이 단단한 나무 껍질을 뚫고 돋아나는 장면입니다.
부드러울 유(柔)는 힘이 없어 조용한 것이 아닙니다.
단단한 것을 뚫어낼 만큼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따뜻할 온(溫).
이 글자는 물(氵)과 가둘 수(囚), 그릇(皿)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갇혀 있는 사람에게 온기 있는 그릇을 전해 준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고,
욕조 안의 사람에게 따뜻한 물을 부어주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해석 모두 같은 장면을 향해 있다는 겁니다.
차가운 곳에 있는 사람 곁으로 걸어가, 그릇이 되어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
溫은 원래부터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그릇이 되기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두 글자를 합치면 이런 정의가 나옵니다.
온유란, 단단한 나무 껍질을 뚫고 나올 만큼의 날카로움과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 따뜻한 인격의 그릇으로 인해 그 힘을 품어낸 상태다.
히브리어에서 온유는 아나브(Anav)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에 나오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아나브는 야생마가 주인의 손길에 길들여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여전히 그 안에 있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구절의 모세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긴 광야 생활로 인해 예전의 날이 꺾이고 평범해진 사람, 그런 모습이 온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나브를 알고 나서 다시 모세를 보았습니다.
날마다 수만 명의 불평과 요구 앞에 서야 했던 사람.
물이 없다고, 고기가 없다고, 이집트가 더 나았다고 몰아붙이는 백성들을 맞닥뜨리면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날 이집트 사람을 단숨에 쳐 죽일 만큼의 격렬함을 가졌던 사람이, 광야 40년을 지나면서 그 힘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폭발하는 대신 품었습니다.
그것이 아나브였고, 그것이 온유였습니다.
지적인 날카로움과 탁월한 리더십을 그릇 안에 담아, 어떤 상황에서도 성냄보다 침착함으로 백성을 대했던 모세의 그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저도 기도합니다.
어설픈 판단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버릇이 현명함으로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성내던 제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압니다.
광야가 모세를 빚었듯, 저도 하나님 앞에 날마다 길들여지는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야생마처럼 뛰고 싶은 이 성격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그릇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10년 후, 온유한 어른이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