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꺄악! 이게 무슨 일이여?'
한밤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필자가 사는 동네가 어둠에 휩싸였다. 무언가 폭발해서 정전이 된 것이었다. 그것도 한창 겨울이었는데 난방도 온풍기도 모두 꺼져버렸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검은 깃털이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인근 주민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어떤 현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전봇대에 불꽃과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아마도 변압기가 폭발한 모양이었다.
'왜 터진 거예요? 사고가 있었나 봐요?'
'아니에요. 까마귀가 전선을 먹다 감전되었습니다.'
전력공사 직원이 구석에 쓰러진 까마귀를 가리켰다. 분명 불에 탄 모양이었지만, 원래 털색이 까만 까마귀라 그런지 몸은 멀끔해 보였다. 그 까마귀가 변압기를 열고 전선을 쪼아 먹었다니. 사람도 열기 힘든 변압기 뚜껑을 열다니 머리가 좋긴 좋은가보다. 그걸 마구 뜯어먹다 기어코 감전되었다고 한다.
'언제쯤 수리될까요?'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정전입니다.'
필자는 하는 수 없이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근래에는 부쩍 까마귀들이 늘어난 것이었다. 지나가는 필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는가 하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아슬아슬하게 전봇대를 들락거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사고를 쳤구나. 정전이 끝나가 돌아와 보니 까마귀가 없었다. 직원들이 치워 간 건지 기절했다가 깨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자였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동네에 동물들이 자주 보인다. 양재천에는 너구리가 출몰하고, 길거리에는 생쥐들이 돌아다니며 까치와 까마귀를 비롯한 수많은 새들이 필자가 사는 곳까지 내려왔다. 계속된 재개발, 재건축으로 살 곳을 찾아 내려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하긴, 필자의 집도 산의 일부가 개발된 것이니까 이곳의 원 주인은 그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려온 동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응했다. 쥐의 경우 대체로 비참했다. 살아 있는 상태로 발견된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까치들은 재건축 아파트마다 둥지를 만들었고, 까마귀는 호기심이 너무 강해 이렇게 종종 사고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잘 적응한 동물은 아마 비둘기일 것이다. 비둘기는 어디가 위험한지, 어디에 먹을 것이 많은지 정확하게 안다. 시장, 식당에서 식재료를 들이는 아침에 제일 많고 정오, 오후에는 거의 없다. 까마귀처럼 전선을 쪼아 먹지는 않지만 그 위에 올라가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가장 기막혔던 비둘기는 지하철을 타는 비둘기였다. 필자도 보았다. 마치 사람처럼 플랫폼을 분주히 오가며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그러다 열차 문이 열리자 사라졌으니 아마 어디론가 이동했을 것이다. 아직 버스에 타는 건 보지 못했지만,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튼 모습도 보았다. 건축 실력은 그리 훌륭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들의 노력만큼은 정말 칭찬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