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뚜식 또식 김또식 이뚜식
-쾅-
잡았다.
모기 이놈, 드디어 잡혔구나. 역시 파리채 사 두길 잘했어.
"빨리 피하세요! 거인이 움직입니다!"
관리인 하나가 소리쳤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이 솟아올라 민재 옆 행인을 덮쳤다. 그는 순식간에 갈라진 틈 사이로 떨어졌다.
"마이클. 괜찮아? 빨리 돌아가자."
민재는 마이클을 부축하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출입구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들은 서로 밟히고 밟으며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져 있었다. 민재는 출입구를 포기하고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13층에서 민재 네 아파트가 있는 9층 까지는 몇 시간이 걸렸지만, 사람들 틈에 깔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계단 옆으로 미니카로 만든 앰뷸런스 수십 대가 지나갔다.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마이클 어머니도 와 계셨단다."
민재가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 주었다. 거실 TV에는 긴급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다급한 앵커의 목소리가 민재의 귀로 흘러들어 갔다.
"오늘 공원에서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원인 불명의 진동이 발생해서 지반 전체가 무너 저 내렸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사상자만 40명이 넘습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박사님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박사님, 이번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가요?"
앵커가 현장에 나온 거인 박사에게 물었다.
"거인 때문입니다. 거인이 거대한 도구를 사용해 우리가 사는 땅을 내리친 거지요. 그 덕분에 평소랑 달리 충격이 우리 세계로 바로 전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촬영된 영상이 있는데 함께 보시죠."
이윽고 아래 땅 아래 세계에 설치된 CCTV화면이 나왔다. 거인이 끝이 넓적한 어떤 도구로 천장을 때리고 있었다. 그가 천장을 치자 우리 세계에서는 지진이 났다.
"저 도구는 뭔가요? 처음 보는 물건인데요."
"아마도 곤충을 잡으려는 도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필 모기가 이번 참사가 난 곳 바로 아래에 내려앉은 것으로 보이네요.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내진 설계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재와 마이클, 가족들은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침묵을 지키던 어머니가 마침내 입을 여셨다.
"들었지? 그러니까 음악 연습한다고 소리 내지 마라. 거인이 우리 집 아래를 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린 다 끝이니까."
"네."
민재는 볼멘소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수행평가까지는 이제 4일 정도 남았다.
'소시지랑 볶아 먹는 크림 진짬뽕입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금요일에도 간신히 글을 올렸다. 필자의 브런치 시리즈 '뺏어 먹는 라면이 더 맛있다'는 이번으로 6주 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비결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늘 가는 마트에 가면 주인아주머니가 라면을 추천해 주기 때문이다. 그걸 가지고 레시피를 만드는 건 필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크림 진짬뽕을 만들어 보았다. 쫄깃한 치즈와 잘 구워진 소시지, 굴소스가 어우러져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서는 가장 성공적이었으리라.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재료였다. 마트에서 소량 판매를 하지 않는 까닭에 늘 재료가 남았다. 베이컨부터 치즈, 소시지까지 절반 이상 남았다. 이걸 어쩐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학교 갈 시간이 되었다. 달리 방법이 없다. 일단 부엌에 두고 떠나는 수밖에. 어쩌면 학원에서 돌아온 필자의 동생이 간식삼아 먹을지도 모르겠다.
"진짜로 거기 있었어? 그럼 그 거인의 도구도 봤어?"
"당연히 봤지. 그게 땅을 파헤치고 올라오는데 내가 날렵하게 피했다니까."
학교에서는 공원 사건에 대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허풍이 좀 심한 마이클은 과장을 섞어가며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좀 내성적인 민재는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박수도 치고 웃기도 하면서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조용! 너희 공원에서 사고 난 거 들었지? 함부로 큰 소리 내면 안 된다."
"네-"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지루한 특별 교육을 한다고 아침 세 교시를 보냈다. 거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도망치는지가 주요한 내용이었다.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하는데 딱히 실효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변신하는 법만 알면 그만이지, 하고 민재는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몇 시간 뒤 민재가 기다리던 음악 시간이 찾아왔다. 민재는 클립을 구부려 만든 피아노와 병뚜껑 드럼, 연필심을 비벼 소리를 내는 악기를 다루는 데 자신이 있었다. 민재는 자기만 아는 방법으로 두 심을 능숙하게 돌렸다. 두 심 사이에서 불꽃이 튀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역시 민재는 다르구나. 이번에 새로 배울 곡 시범 한 번 부탁해도 될까?"
음악 선생님이 말했다. 민재는 멋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조용히 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한 음악은 이내 불꽃이 튈 정도로 강렬하게 변했다. 마찰이 절정에 이르려는 순간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돌리자 연필심에서 푸른 불빛이 나오며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오직 민재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브라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민재는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굵게, 빠르게, 그리고 여리게. 음악가가 되고 싶은 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래했다. 푸른 불꽃은 어느새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몇 분 뒤, 누군가 아이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곱슬머리를 한 여학생이었다.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 학생은 클립 피아노를 두드리며 민재의 음악에 반주를 맞추었다. 연필심의 회전이 빨라질수록 클립도 빠르게 움직였다. 이심전심이라는 옛말이 그대로 재현된 듯 둘은 완벽한 하모니를 노래했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저, 얘들아, 이러면 너무 부담스럽잖니.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여기가 예술고등학교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허허. 거인이 들으면 어쩌려고, 허허."
"그러게. 영화도 아닌데 다들 대단하시네요."
뿔테 안경을 낀 할아버지 선생님이 호탕하게 웃으셨다. 연주를 마친 민아는 민재를 바라보았다. 민아는 민재처럼 음악 대학교에 가려는 학생이다. 그 층에서 알아주는 부자로, 집안에서도 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다. 비싼 레슨도 받고 악기도 최고급이다. 그런데도 평범한 민재가 더 실력이 좋으니 내심 질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재가 연주할 때마다 끼어들어 함께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같은 곳에서 자라왔기에 민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민재와 민아, 마이클은 같은 동네 출신인 친구였으니까 말이다.
"오늘 정말 굉장했어. 너의 둘은 진짜 잘 어울린다니까. 나중에 그냥 결혼하면 안되?"
마이클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 말에 민아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민재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의 머리에는 오로지 다가올 수행평가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새로운 연주 기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리 속에 가득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얘 그러다 집중 안 되서 대학 못가면 네 책임이다?"
민아가 쏘아붙였다. 마이클은 얼버무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미안. 그런데 어디서 맛있는 냄새 안 나냐? 인간이 구운 소시지 냄새가 나는데."
"그러게? 진짜 맛있는 냄새네. 어디서 나는 거지?"
그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향기에 이끌렸다. 고소한 치즈와 소시지 냄새가 아이들을 마을 구석에 있는 환풍구로 이끌었다. 휙휙 돌아가는 팬 아래로 접시가 보였다. 접시 위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소시지와 치즈, 라면 쪼가리가 널려 있었다.
"저 봉지에 뭐라고 써 있는지 보이냐?"
마이클이 민재에게 물었다. 시력이 좋은 민재는 실눈을 떠가며 봉지의 글을 읽었다.
"크...크림...진짬뽕? 짬뽕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