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식 두식 아 김두식
'쿵... 쿵... 파스슥'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1시까지 깨어 있는 사람은 많지만 3시는 드물다. 그런데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새벽만 되면 어김없이 쿵쿵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 소리요? 아파트가 낡았으니 당연하지요. 아마 보일러 도는 소리일 거예요.'
경비에게 물어보니 별 일 아니라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50년이나 된 아파트인데 멀쩡하면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분명 보일러 소리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똑똑거리는 소리, 나중에는 마치 음악처럼 리듬을 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귀마개를 끼어도 가끔 소리가 들렸다.
'쿵.... 아니, 조금만 더 작게. 그러다 들킬라.'
하. 이젠 사람 목소리까지 들리는구나. 지금까지 이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으니 이젠 환청이 들리나 보다.
'그럼 어떡해요? 음악 시간 숙제로 드럼 과제가 있는데...'
'그래도 안 돼. 시끄럽잖니.'
어머니의 엄포에 한신아파트 36층에 사는 민재는 드럼 스틱을 내려놓았다. 원래 음악적 재능이 많은 민재는 작곡가가 되기를 꿈꿔 왔다. 그래서 이번 음악 수행평가는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민재가 다니는 한신예고는 예술로 정평이 나 있는 학교라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엄만 날 몰라. 좋은 대학에 가려면 더 연습해야 하는데.'
민재는 울적해진 마음도 달랠 겸 코트를 걸치고 길을 나섰다. 벽 사이 좁은 공간에 아파트가 빼곡했다. 한 층에 몇 동의 아파트가 있는지, 민재는 알 수가 없었다. 수백 동, 아니 수천 동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민재는 버스를 타고 윗 층으로 올라갔다. 다이캐스트 모형에 모터를 단 작은 버스가 낡은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종점입니다! 모두 내리세요.'
버스 운전기사가 외쳤다. 민재가 도착한 곳은 13층. 석면이 벗겨진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 푸른 들판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그것들은 민들레나 네 잎클로버에 불과했지만, 민재 정도 크기의 사람에겐 잘 꾸며진 공원처럼 보였다.
'어, 민재. 수행 평가 준비한다더니 언제 나온 거야?'
민재의 동급생 마이클이 반갑게 말을 걸었다.
'몰라. 엄마가 시끄럽다고 하지 말래. 그래서 기분 전환 할 겸 나왔지.'
'어쩔 수 없잖아. 거인들이 알면,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이클이 얼버무렸다. 민재도 알고 있었다. 거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민재가 어렸을 때, 현실로 치면 바로 앞 래미안아파트에서 엄청난 수의 난민들이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거인들이 우리 집을 다 부쉈어요. 아파트 수십 동이 그냥 사라졌으니까요. 다행히 변신술을 해서 벽돌로 둔갑시키기는 했지만 막을 수 없었어요. 그, 리모델링이라나 뭐라나를 하는데, 드릴로 다 부숴서 실종된 우리 사람만 수십 명이 넘어요.'
그들은 지금 한신아파트 13층에 살고 있다. 원래 빈 공간인데 그들에게 내어 준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난민들이 한신아파트로 몰려들었다. 난쟁이들은 점점 살 곳을 잃고 도망쳤는데, 한신아파트에 국가나 다름없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다른 아파트에 몇 명이 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 삼촌이 그러는데, 거인들은 우리를 산 채로 잡아서 구워 먹는다더라.'
'설마. 우리랑 똑같이 생겼는데 좀 징그럽지 않을까.'
민재는 마이클과 함께 떡볶이를 사 먹었다. 그 떡볶이는 아마 정부의 수색대가 가지고 온 물건일 것이다. 민재처럼 예술가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수색 기업'에 취업하여 외부에서 먹을 걸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런 물건들은 대부분 비싸게 거래되었는데 최근에 컵 떡볶이 하나가 들어와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넌 고등학교 끝나면 뭐 할 생각이야?'
민재가 물었다.
'난 수색 기업에 취직하려고. 너처럼 음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뭐.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야지.'
마이클은 손에 든 교재를 들어 보였다. 표지에는 '합격 100% 입사 고사 빈출 유형만 모았다.'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아무 질문이나 해 봐. 나 어제 밤샜거든.'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거인이 당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민재는 기출문제의 첫 문항을 읽었다. 마이클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담배꽁초로 변장한다. 그건 쉽지.'
말을 마친 마이클이 중얼거리자 순식간에 담배꽁초처럼 변했다. 잿조각까지 진짜 같았다.
'요즘 공부한다더니 제법이네. 하지만 더 빨라야 할걸?.'
민재가 웃으며 답했다.
'꺄악! 지진이다!'
'모두 피하세요!'
누군가 소리쳤다. 순식간에 클로버 하나가 쓰러져 민재를 덮쳤다.
모기! 모기가 계속 왱왱거린다. 여름에는 이놈에 모기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거실에서 파리채를 잡아 살금살금 다가갔다. 이놈, 조명 옆에 숨어 있었구나. 딱 걸렸다.
-쾅-
잡았다.
-본 작품은 창작과 현실을 혼합한 작품입니다. 실제로 새벽에 리듬 타는 소음이 발생하였으며 필자는 파리채를 들어 모기를 잡았습니다. 또 떡볶이 놔 둔 게 사라지기도 했는데, 동생이 먹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