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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상실 I

더 이상 빛나는 서커스는 여기 없다.

by 지니의 예술상점 Nov 28. 2024

“무대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망치려 서커스를 찾지만, 결국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종적을 감췄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그녀를 대신할 서커스단 뿐이었다. 텅 빈 무대 위에 남은 것은 희미해져 가는 발자국과 낡아빠진 의상들, 그리고 너를 끌어당기는 기억의 잔상들이었다. 그녀가 떠난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처음엔 돌아올 거라 믿었다. 모든 짐을 챙기지도 않았고, 마지막 인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너와 함께했던 날들, 서커스단의 불빛 아래에서 나눈 꿈들과 키스는 그저 잔인한 농담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부재는 서커스단의 균열을 드러냈다. 너와 함께 한 배를 탔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마치 오래된 인형처럼조용히, 흔적 없이. 누구도 떠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짐을 싸고, 더는 돌아오지 않을 뿐이었다.


너는 남았다. 그리고 서커스단은 너의 것이 되었다. 사실 그것이 처음부터 너의 몫이었다고 믿으려 애쓰고 있다. 서커스는 살아 숨 쉬는 것이었다. 환상과 열정, 그리고 무대 위의 불꽃이 모두 합쳐져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더 이상은 그녀가 설계한 빛나는 서커스는 여기 없다.


단원들은 불만이 쌓였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오래 버티지못했다. 그토록 네가 원했던 서커스단은 이제 너의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네게 말했을 것이다. “이제 네 시간이다.” 책임과 고독은 상상 이상이었다.


너는 그녀가 설계한 무대를 다시 재구성했다. 이 모든 작업은 너 자신을 위한 투쟁 같았다. 서커스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잃어버린 열정과 목적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완성된 무대를 바라보며 너는 또 다른 의문에 사로잡혔다.


무대 장치의 마지막 나사를 돌리고 물러섰을 때, 완벽하게 균형 잡힌 구조물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비정상적으로 복잡한 기계 같기도 했다. 네가 한 걸음 다가가자 무대의 중심부에서 기계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너를 초대하는 듯한 기묘한 소리였다.


문을 열자 너는 무언가에 의해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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