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가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집안 청소를 하던 중, 지잉-지잉, 반복되는 모터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 소리가 미치도록 싫었다. 잠시 멈추고 소리를 끄고 싶었지만, 대신 사라지는 작은 먼지들을 바라보며 그나마 위안을 찾기로 했다. 차라리 그 먼지들이 사라지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를 켜고, 사연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누군가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 미소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웃어?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웃어?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갑자기 마음속에서 그런 물음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잠시 멈춰 서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슬퍼할 이유는 없어, " 그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던진 그 말이 마치 빈약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는 헤겔의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관계, 니체의 초인적 자아에 대해 떠올렸다. 인간은 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느끼는 공감은 진정한 감정이 아닌, 사회적 의무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사람이란 도대체 뭘까?’ 머릿속에서 의문이 스쳐갔다.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늘 남의 고통에 슬퍼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 내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얽혀야만 하지?’ 마음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건가? 내가 공감 능력이 결여된, 그런 차가운 사회의 일원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문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멍해졌다. ‘그럼 나라는 개인은 누구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이 질문이 끝없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출근 후, 주인공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어제 부탁받은 문서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몇 번이나 기억을 되짚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은 더욱 흐릿해져만 갔다.
사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고, 그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마치 시간과 일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쉬었다. 그냥 내가 부족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그가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대신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공허한 구멍이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그 공허함은 그저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온, 차갑고 불확실한 감정의 징후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주인공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마음속에 작은 악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악마는 차분하게 속삭였다.
"어차피 해도 잘 안 될 거야. 너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실패할 거고, 그래서 더 이상 너를 믿지 못할 거야."
그 악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부정의 목소리는 이제 그의 일상 속에서 녹아들어,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를 억누르고 있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무엇을 해도 불안감에 휘둘리며, 결국 그가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