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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思考)란?

by 서강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그동안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 둔 언어의 한계 문을 열었다. 내 세계의 경계였던 그 문이 열리자, 숨 막히던 생각들이 자유롭게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의 변화무쌍한 모습에서 예술을 발견한다. 산과 강 위로 펼쳐진 구름들은 매일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반겨준다. 문득 산과 강도 구름과 하늘, 그리고 바람이라는 매일 다른 친구들의 방문으로 결코 심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구름, 하늘은 언제라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다려 주는 산과 강이 있어 고향처럼 편안할 것 같다. 우리의 마음도 구름처럼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지는 않을까,





진리는 하나


성경에는 "남의 눈에 있는 조그마한 티는 잘 보여도, 내 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얼마나 정확한 지적인가. 내 안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고의 오류는 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치료하고 정화하는 일이 나의 과제다.


'사고(思考)'의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가 더 깊어진다. 생각할 '사(思)'는 '마음 위에 밭'이 있다. 상고할 '고(考)'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다. 노인이 홀로 서기 위태로워 지팡이를 의지하듯, 인생도 대상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아이보다 노인이, 삶의 연륜과 경험으로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 오래된 속담의 진리가 내 삶에도 적용된다. 못된 마음에는 못된 생각이, 좋은 마음에는 좋은 생각의 열매가 맺히기 마련이다. 내 마음 밭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가시, 돌멩이, 잡초가 가득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실천의 과제


읽고 필사하면 생각이 깊어지는 말들을 만났을 때, 그것을 낭독하고 필사하니 가슴에 울림이 찾아온다. 결국 모든 손가락은 내가 남을 향해 가리킬 때도 검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다. 나 자신의 중심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삶에 세 가지 실천 과제를 정했다:

1. 아침에 눈 뜨면 나와 마주 보며 "잘 잤니?"라고 인사하기

2. 마음의 중심을 수시로 살피기

3. 말을 하기 전, 글을 쓰기 전, 2번 이상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매일 조금씩 변화되겠지. 마음 밭에 있는 가시와 돌멩이를 하나씩 뽑아내며, 좋은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마음 밭에도 아름다운 구름이 떠다니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단단한 산이 서 있을 것을 안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삶의 풍경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날아오르고 있다. 자물쇠가 풀린 언어의 문을 활짝 열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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