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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 극복기

9. 수술 후 1년의 시간

by 큰나무 Feb 26. 2025

어느덧 수술받은 지 1년이 흘렀다.

보이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아픔을 견뎌내며, 하루 1만 보 걷기를 목표로 삼았다. 암 진단 후 10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걸었다. 살아남아야 했기에, 온몸을 던져 버텨냈다.


하지만 수술 후에는 봄날의 따스한 햇살처럼 나른해진 걸까. 이제는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는지, 매일 걷던 발걸음도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두어 번씩 빼먹기 일쑤다. 참, 마음이란 간사한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 준 아내는 여전히 균형 잡힌 영양식을 준비해 주었다.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은, 아내의 사랑이자 나를 지키는 힘이었다.


수술 후 12번의 항암 치료를 마치고 이제는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작아진 위로 인해 충분히 먹지 못하니, 배변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항문에 이상이 생겼다.


나름대로 관리를 하며 버텼지만, 요즘 들어서는 대변을 보고 나면 뭔가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길을 걷다 보면 아래로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오는 듯한 불편함과 불쾌감이 엄습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항문 전문병원을 찾았다. 진료 결과, 대장 내시경을 포함한 검사를 해야 하고, 치핵 수술 후 3일간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수술이라니.


천천히 병원을 걸어 나오며 문득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부모님은 아흔이 넘도록 병원 신세 한 번 지신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이리 병원과 인연이 깊은 걸까.


이 정도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애써 위로해 보지만, 또다시 병실에 누워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항암 후유증으로 인해 세포들이 메말라 가고, 뼈는 약해지고, 근육도 힘을 잃어 간다.

그러니 이곳도 망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또 어디에서, 어떤 후유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 한구석이 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걷는다.

한 발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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