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65 댓글 6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인생의 귀한 손님 (새로운 책임)

by 백소라 Mar 17. 2025

나는 결혼이라는걸 내 인생에서 지웠다.

어차피 상대가 알길이 없으니 일단 속이고 할일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 때 한적이 있었다.


" 얘 네가 왜 결혼을 못해?
   애를 못갖는건 아니잖아!"


주변에서도 모두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나는 그저 위로의 말로만 들렸을 뿐,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내 ‘주변머리’로 이걸 설명하고 누군가와 교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인생에는 결혼보다, 자식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이 시대의 '신여성'인 양 열심히 살았더랬다.


그러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열심히 도망쳤다.

내 비밀을 알아차릴까 봐, 봇짐을 꽁꽁 감춘 채 야반도주하듯 몰래, 티 안 나게 도망쳤다.


어느 때엔 참말로 탐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땐 그의 주변을 야무지게도 살폈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도망쳤더랬다.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어쩌면 내가 본 안목으로 탐을 냈으니, 충분히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래 그렇게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러는 시간들을 쌓으며 나는 인생에서 결혼을 지웠다.

20대, 누구나 설렘으로 맞이하는 ‘꽃’ 같은 결혼을.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바라보며 보내주던

그 마음이,

40대 더 큰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보니 참말로 가여웁다.


그런 내가 그를 보았다.


내가 늘 숨기고 싶었던 삶과 아무 상관없는 듯,

당당하게 내 앞에 섰던 그를 보며,

나는 용기 내어 숨겨둔 내 봇짐을 풀어서 보여주었다.

눈 감고, 귀 막고, ‘에라 모르겠다’ 매듭을 풀어 그 앞에 던져 보였다.


돌아올 숨소리가 놀라는 소리일까 두려워,

그의 눈이 커지면 어쩌나.

보는 것이 두려워 눈도 감고, 귀도 막고,

그렇게 숨죽였다.


그땐 몰랐다.

그가 오히려 내 봇짐을 반겼다는 걸.

그는 나보다 더 큰 봇짐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걸.


결혼하고 나서야,

내 앞에 흐트러진 봇짐이 발에 밟혀

"이것이 뭐냐"고,

"왜 이제야 내놓느냐"고

소리치기엔 너무 늦어 있었다.


'그래 난 결혼도 안할 맘이였는데,

이런들 저런들 뭐가 중할까.'


자포자기한 채 그렇게 살다, 살다.

내 좋은 것 하나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서 병원으로 나섰다.

열심히도, 부지런히도, 빚을 내가며 그렇게 다녔다.

내 배에 주사를 찌르고, 새벽까지 묵주를 돌려 가며, 간절히도 빌고 빌었다.


"내게 자식 하나 주시면, 내 이 봇짐 저 봇짐 다 짊어지고 살겠노라."

"그러니 제발 내게 귀한 손님 좀 보내주시라고."


내몸이 그저 귀하디 귀한 그 '손님' 한번 맞이하기 위해 생긴 ‘그릇’인냥 하나 애끼지 않고 갈고 닦고 빌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안 그러면 후회스러워.

원망스러워.

미련하게, 어리석었던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살 자신이 없었다.


생생히 밝은 것이 가장 자랑이던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갔고,

꺼져 갔다.


어쩌면 살기위해 메달릴 곳이 그곳이였나보다.

병원으로 그렇게 나는 두번째 메달려 살 곳을 찾아갔다


'봇짐' 때문에 그길에 서있던 내가,

'봇짐'을 들어줄 그 귀한 손님을 기다리며 그 세월을 살아냈다.





2018년 4월 27일.


또 한 번, 나는 주저앉았다.


쏟아내던 그 ‘’을 어찌 잊으랴.

난임병원 화장실에 조용히 앉아,

입을 틀어막고 뱉던 그 ‘울음’을 어찌 잊으랴.


"와주었구나.

내게, 귀한 네가.

정말로, 정말로 와주었구나."


그렇게,

꽃다운 24살, 나를 절망으로 주저앉게 했던 시련이,

쓰러져 가던 34살,

기쁨으로 또다시 나를 주저앉게 하는


'귀한손님'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나는 그렇게 내 봇짐을 펼쳐,

훨훨 털어내고,

내 어깨에 다시 메었다.

날개가 생긴 것 마냥 동여매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심정이었다.


24살에 주저앉아 있던 나를 손내밀어 일으켜 줄 그 손님을 맞이하던 그 순간을, 나는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다시 일어나야 할,

내가 다시 빛을 내야할,

다시 걸어야 할 이유인


나의 귀하디 귀한 첫째, 그아이가 내게 와주었다.

이전 02화 '애'가 없는 사주팔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