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이라는걸 내 인생에서 지웠다.
어차피 상대가 알길이 없으니 일단 속이고 할일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 때 한적이 있었다.
" 얘 네가 왜 결혼을 못해?
애를 못갖는건 아니잖아!"
주변에서도 모두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나는 그저 위로의 말로만 들렸을 뿐,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내 ‘주변머리’로 이걸 설명하고 누군가와 교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인생에는 결혼보다, 자식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이 시대의 '신여성'인 양 열심히 살았더랬다.
그러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열심히 도망쳤다.
내 비밀을 알아차릴까 봐, 봇짐을 꽁꽁 감춘 채 야반도주하듯 몰래, 티 안 나게 도망쳤다.
어느 때엔 참말로 탐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땐 그의 주변을 야무지게도 살폈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도망쳤더랬다.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어쩌면 내가 본 안목으로 탐을 냈으니, 충분히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래 그렇게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러는 시간들을 쌓으며 나는 인생에서 결혼을 지웠다.
20대, 누구나 설렘으로 맞이하는 ‘꽃’ 같은 결혼을.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바라보며 보내주던
그 마음이,
40대 더 큰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보니 참말로 가여웁다.
그런 내가 그를 보았다.
내가 늘 숨기고 싶었던 삶과 아무 상관없는 듯,
당당하게 내 앞에 섰던 그를 보며,
나는 용기 내어 숨겨둔 내 봇짐을 풀어서 보여주었다.
눈 감고, 귀 막고, ‘에라 모르겠다’ 매듭을 풀어 그 앞에 던져 보였다.
돌아올 숨소리가 놀라는 소리일까 두려워,
그의 눈이 커지면 어쩌나.
보는 것이 두려워 눈도 감고, 귀도 막고,
그렇게 숨죽였다.
그땐 몰랐다.
그가 오히려 내 봇짐을 반겼다는 걸.
그는 나보다 더 큰 봇짐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걸.
결혼하고 나서야,
내 앞에 흐트러진 봇짐이 발에 밟혀
"이것이 뭐냐"고,
"왜 이제야 내놓느냐"고
소리치기엔 너무 늦어 있었다.
'그래 난 결혼도 안할 맘이였는데,
이런들 저런들 뭐가 중할까.'
자포자기한 채 그렇게 살다, 살다.
내 좋은 것 하나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서 병원으로 나섰다.
열심히도, 부지런히도, 빚을 내가며 그렇게 다녔다.
내 배에 주사를 찌르고, 새벽까지 묵주를 돌려 가며, 간절히도 빌고 빌었다.
"내게 자식 하나 주시면, 내 이 봇짐 저 봇짐 다 짊어지고 살겠노라."
"그러니 제발 내게 귀한 손님 좀 보내주시라고."
내몸이 그저 귀하디 귀한 그 '손님' 한번 맞이하기 위해 생긴 ‘그릇’인냥 하나 애끼지 않고 갈고 닦고 빌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안 그러면 후회스러워.
원망스러워.
미련하게, 어리석었던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살 자신이 없었다.
생생히 밝은 것이 가장 자랑이던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갔고,
꺼져 갔다.
어쩌면 살기위해 메달릴 곳이 그곳이였나보다.
병원으로 그렇게 나는 두번째 메달려 살 곳을 찾아갔다
'봇짐' 때문에 그길에 서있던 내가,
'봇짐'을 들어줄 그 귀한 손님을 기다리며 그 세월을 살아냈다.
2018년 4월 27일.
또 한 번, 나는 주저앉았다.
쏟아내던 그 ‘숨’을 어찌 잊으랴.
난임병원 화장실에 조용히 앉아,
입을 틀어막고 뱉던 그 ‘울음’을 어찌 잊으랴.
"와주었구나.
내게, 귀한 네가.
정말로, 정말로 와주었구나."
그렇게,
꽃다운 24살, 나를 절망으로 주저앉게 했던 시련이,
쓰러져 가던 34살,
기쁨으로 또다시 나를 주저앉게 하는
'귀한손님'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나는 그렇게 내 봇짐을 펼쳐,
훨훨 털어내고,
내 어깨에 다시 메었다.
날개가 생긴 것 마냥 동여매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심정이었다.
24살에 주저앉아 있던 나를 손내밀어 일으켜 줄 그 손님을 맞이하던 그 순간을, 나는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다시 일어나야 할,
내가 다시 빛을 내야할,
다시 걸어야 할 이유인
나의 귀하디 귀한 첫째, 그아이가 내게 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