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렌져에서 유모차로
나는 백소라다.
원래는 백소라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백소라다.
나의 2막 인생에 대해 써보려고한다.
이혼 후 개명한 백소라로 사는 백소라의 인생 2막.
그로 얻게된 자기조절력과 통제력에 관해.
결혼생활 10년, 그 세월을 살았다. 아니 그냥 살게 내버려 두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부끄러워서 뭐든간에 말이다.
그렌져를 탄 왕자님
결혼전 아직도 또렷한 한장면 중에 노량진 학원 지하주차장에 빨간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가 있다. 나는 여자임에도 친구들은 두명의 남자들이였고, 우리는 흔히 말하는 공시(공무원 시험준비)생이었다. 함께 새벽수업을 준비하는 동고동락의 삶에서 우리는 남녀간의 성 정체성보다 동료애와 끈끈한 우정이 바탕이 된 그런 '진한 친구들' 이었다. 번번히 낙방을 하던 세월을 1년즈음 살다보니, 나는 판단이 서기 시작했다.
'아 이건 내가 할수있는 영역의 시험이 아닐 수 있겠다'
그 즈음 그를 만났다.
천원짜리 호일에 싼 주먹밥을 학원옥상에서 친구들과 나누어먹던 내게, 숯불 돼지갈비를 실컷먹으라며 시켜주던 그를 말이다. 내가 하는 모든말을 귀기울여 들어주었고, 시험관련 문제집을 사려면 30분씩 고민하던 내게, 사고싶은 문제집을 실컷 사라며 서점에서 환하게 웃어주던 그는, 검정색 그렌져를 타고 학원앞으로 데리러 오는 '그렌져 탄 왕자님' 이였다.
그의 배려는 나에게 처음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내 삶에도 화려한 한 페이지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했다. 그가 내민 명함의 '사장'이라는 직함이 그 기대와 희망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 명함이 말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보고싶은데로 보았고, 이렇게 글로 그림을 그리듯 나만의 왕자님이라는 옷을 입혔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가까워지면서 나는 오랜 꿈이였던 시험에서도, 친구들에게서도 점점 멀어져갔다. 멀어지는 간극이 커질수록, 어쩌면 이게 내 '꿈'일지도 모른다며, 그 나이에 여자가 꿔야 할 꿈 '결혼'을 꿈꾸었다.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 그렌져에 홀린 채로 그렇게 진짜 '꿈'에서 멀어져 가짜 '꿈'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갔고, 그렇게 그렌져 조수석에 벅차게 앉아 눈을 감은채 기대었다.
과거의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선택이다. 지금의 선택이 나의 미래를 만들고,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또한 과거의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나는 과거는 여기까지만 담기로 했다.
훗날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엄마의 후회로 인한 상처를 보여주기보다, 미래를 향한 성장의 발걸음에 용기를 보탰다고 말해주고 싶음에서다.
내 인생의 귀한 손님.
매일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속에 나는 빛을 잃어갔다.
잦은 실패에 좌절하며, 바닥에 쓰러져갔다.
막다른 답답함에 숨이 막힐 무렵, 내인생에 '귀한 만남'이 찾아왔다.
'환상의 그렌져가 아닌, 내 손으로 밀어야만, 내 발로 걸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유모차.'
그 손잡이를 쥐는 순간, 나는 다시 빛을 냈고, 꿈을 꾸었으며, 용기와 함께 '희망'이라는 반딧불을 수없이 점프질하며 내 손에 넣어야 했다. 아이에게 그 반딧불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만큼은 답답한 어둠이 아닌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반딧불 같은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다시 일어나야 할,
내가 다시 빛을 내야할,
다시 걸어야 할 이유가 귀하게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한다.
그렌져의 조수석에서 내려
유모차를 밀고가는 백소라의 인생 2막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