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가 악재가 아니고 호재가 호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배정은 추첨제로 이루어졌었다. 솔비 씨는 “추첨제라도 다 집 근처로 가는 거야!”라며 의심 했지만, 예상을 깨고 꽤 거리가 있는 강남의 명문 중학교에 배정을 받게 되었다. 솔비 씨는 "사실은 될 놈은 된다!"며 엄청 좋아하셨고, 내가 입학과 동시에 똘똘한 새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를 쏼라쏼라하며 날아다닐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새 친구들을 사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들끼리 찰싹 붙어 다니고 있었고 내가 무리에 낄 틈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루하게 한 학기가 지나갈 때쯤, 우리 반에 전학생이 나타났다! 이름은 차차(가명).
차차의 남다른 행색은 등장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행에 맞게 몸에 맞게 딱 줄여 입던 교복이 아닌,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펑퍼짐한 치마에 헐렁한 조끼, 단정하게 아래로 묶은 머리.
아이들의 무반응 속에서 차차가 입만 웃으며 어눌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Um, 잘 부탁해...”
머리 스타일, 말투, 얼굴 생김새까지, 모든 것이 어색한 조합이었지만 차차는 묘하게 매력적이었고 예뻤다.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교복은 처음 입어 본건지, 내 안에 숨어 있던 참견본능이 꿈틀댔지만, 쭈뼛쭈뼛 차차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차차의 도시락이 눈에 들어왔다. 정성껏 자른 야채와 맛있게 볶인 불고기가 한가득 들은 도시락.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한입만 먹어도 돼?"
그 말 한마디를 건넨 이후로 우리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나에게도 드디어 단짝이 생겼다. 며칠 뒤 차차는 알고 보니 옆반에 친구가 있었다며 키 170에 늘씬하고 이쁜 S라는 친구도 소개해 주었다. 삼총사끼리 방과 후 떡볶이도 먹고 학원 땡땡이도 쳐보는 신나는 학교생활을 기대했었지만, 차차와 S는 바쁜 스케줄로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가기 바빴다.
가끔 차차 도시락은 찬합에 담겨 누군가가 배달해 주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도시락은 그야말로 궁중 연회 수준이었다. 특히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다양한 반찬들에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그 도시락 하나로 차차는 우리 반의 스타가 되었다. 세상은 결국 밥심이었다. S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늘 우아하게 식사했다. 급하게 먹거나 반찬을 흘리는 법이 없었고, 음식들을 꼭 미슐랭 별 3개짜리 코스 요리처럼 대했다.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차차와 S 덕분에 나도 덩달아 친구들이 생겼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더랬다.
그 무렵, 담임 선생님이 솔비 씨를 학교로 부르셨다. 평소처럼 학부모 면담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학교에 갔던 솔비 씨가 날 무섭게 불렀다.
"이리 와 앉아."
그리곤 기세와 달리 뜸을 들이더니, 주저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휴... 네 담임 선생님이... 차차랑 S랑 다니지 말래."
"왜?"
"아니, 몰랐어? 차차랑 S가 누군지? 재벌가 자제들 이래!"
"뭐?!"
속이 잔뜩 상한 솔비 씨는 냉수를 마셔가며 선생님 말을 전했다.
"차차 아빠가 뭐 형제의 난인가 뭔가 때문에 회장직을 맡게 돼서 미국에서 급히 한국에 왔단다. 그리고 차차는 1년만 더 있다 다시 미국 간대. S도 중학교만 졸업하면 떠날 건가 봐."
솔비 씨는 한숨을 내쉬었고, 나를 달랜 건지, 말을 전한 건지 모르겠지만 마무리 맨트를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네가 쓸데없이 상처받지 않게 애들이랑 못 놀게 하라고 하더라. 너랑 어울릴 애들이 아니래나 뭐래나. 야, 뭐가 아쉬워. 친구야 또 사귀면 돼. 문제 만들지 말고 놀지 마"
방으로 들어왔다. 멍했다. 그리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친하다면서 왜 그동안 말해주지 않았어.....
아... 내가 그동안 순진하게 믿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구나...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버스 정류장이 멀어서 뒷문으로 가야 한다는 말, 알고 보니 운전기사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한 거였고, 늘 남다르던 도시락의 정체는 집에 상주하는 셰프의 작품이었다. 바빠서 못 만나다는 말은, 집사님이 짜놓은 스터디 플랜과, 가족 모임으로 꽉 찬 스케줄 때문이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쌓아 온 우리의 우정을 어쩌겠는가.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차에게 전화를 걸어 폭풍 오열을 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엉엉 울며 말했다.
"선생님이 너랑 놀지 말래! 너 XX 딸이라며"
가만있던 차차가 덤덤히 말했다.
"Um, 신경 쓰지 마. 바뀐 거 없어. 학교에선 안 노는 척하고 앞으로는 우리 집에서 놀면 돼!"
차차의 어눌하지만 강한 어조가 나를 안심시켰다. 어쩌면 재벌의 삶을 곁에서 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재미있는 상상으로 기분이 바로 풀어졌다. 심지어는 중 2병에 걸린 건지 갑자기 솔비 씨가 무섭지 않았다.
그 후, 우린 학교에서 점심을 함께 먹진 못했지만, 밤만 되면 전화기를 붙잡고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차차는 미국에 가기 전까지 최대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직접 솔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외박 허락을 받고 5성급 호텔에 날 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차차와의 우정은 레벨업에 레벨 up거듭했지만, 내 성적은 레벨 down을 거듭했다. 50명 중 42등.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을 호강에 42등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솔비 씨는 그런 꼴을 오래 참을 사람이 아니었다. 결단의 여왕답게 엄청난 결정을 내리셨다.
"인문계 못 갈 거면, 예고 간다."
단호한 솔비 씨의 결정으로, 적성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첫 번째 도전은 성악이었다. 솔비 씨의 지인 소개로 만난 성악 선생님은 두 번의 레슨 후, 내 목청이 높지도 낮지도 않아 특색이 없다며, 조심스럽게 다른 분야를 고려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조언을 건넸다.
다음은 미술. 내가 그린 사과를 본 솔비 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전자를 그려왔구나!"
그렇게 미술도 실패.
거기서 멈추지 않고 피겨스케이팅에 도전했다. 레슨을 지켜보던 솔비 씨는 내가 빙판 위에서 겁에 질려 덜덜 떨며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고 빙판 위를 돌아다니는 고물 자동차 같다며 포기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솔비 씨는 영화 서편제를 보고왔다. 감명받았는지 지인들을 총동원해 선생님을 수소문 하여 나를 판소리 학원에 데려갔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섬세한 소리와 강렬한 카리스마로 많은 제자를 이끄셨던 전설적인 소리꾼이셨던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몇 음절을 따라 하라고 하시더니,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솔비 씨를 보며 말씀하셨다.
"요거요거 물건이네! 입시반 준비합시다."
그렇게 시작된 판소리. 예고 준비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과, 재벌가 자녀 차차와의 특별한 우정을 만끽하던 찬란했던 날들이 지나가고, 차차는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실의에 빠진 나는 판소리 연습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10일 정도밖에 안 지났던 거 같은데, 물론 우리 솔비 씨는 그런 나를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
”예고는 반드시 간다!"
솔비 씨는 집 옥상에 연습실이라는 이름의 빨간 벽돌 방을 만들었고, 밤낮으로 연습을 시켰다. 내 서러운 마음과 차차에 대한 그리움을 판소리에 실어 절절히 풀어냈다. 그리고 솔비 씨의 바람대로 서울 국악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솔비 씨는 내가 예고생이 되어 전국의 판소리상을 싹쓸이하고 멋지게 예대에 입학할 거라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고, 난 이번에는 평범한 친구를 사귀어 소소한 행복을 누려볼 거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입학 전까지는 몰랐다. 예고라는 곳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특별한 친구들로 가득 찬, 범상치 않은 세계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