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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Da Dec 26. 2024

하고 싶은게 뭐니?미래에 답하다

꿈에 대한 질문의 답을 네 줄로 정리하니 답이 보였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몇 달간 방황을 하고 있을 때, 중국에 살 던 친언니가 추석연휴에 한국에 나온 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는 한국에 올 때마다 부모님 댁에서 5일 정도 머물다 중국으로 돌아가곤 했기 때문에, 언니와 둘이 시간을 보내긴 어려웠다. 그래서, 언니가 한국에 오기 전에 중국으로 전화를 걸어 내 힘든 상황을 털어놓고 이번에 한국에 오면 커피 한잔만 둘이 마시자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언니는 내 얘기가 끝나자 그러지 말고 둘이 1박 2일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언니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언니와 여행을 시작했다.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언니를 보자마자 가슴에 쌓아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친구, 사랑, 직업, 솔비 씨와 나와의 관계며,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다 울고, 또 웃으며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언니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때로는 나를 바라봐 주었다. 여행의 끝자락. 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배운 게 판소리뿐이라 뭔가 더 배워야 일을 할 것 같은데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걸 배워보는 게 어떨까? 근데 답은 너밖에 몰라. 어떤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뭘 할 때가 제일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알려줘. 생각이 정리되면 그 지점부터 다시 얘기해 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니 행색을 좀 볼래? 솔비 씨한테 납작 엎드리고, 집으로 들어가.”

막다른 길에 서 있다고 느꼈던 나는, 그저 언니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솔비 씨는 멋대로 살아가던 나를 오랫동안 외면하며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고, 관계는 차갑고 냉랭하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솔비 씨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언니는 나에게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는 부모님 댁으로 갔고 나는 친구집으로 가서 언니의 연락을 기다렸다.


언니가 어릴 때부터 솔비 씨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몇 년간 쌓인 냉랭한 벽을 하루 만에 허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로, 언니는 단 하루 만에  솔비 씨를 설득했고, 내게 다음 날 연락이 왔다.

“집으로 와.”

솔비 씨에게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살았어서 그랬는지, 집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머릿속으로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솔비 씨가 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는 도끼눈을 예상하며 집에 들어갔는데 솔비 씨가 내 예상과 달리,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어서 와.”

그런 솔비 씨를 보고 당황해서, 쭈뼛쭈뼛 대자 솔비 씨가 어깨를 한 대 툭 치더니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방 안, 마주 앉은 솔비 씨는 화통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 말 필요 없어. 고생했어. 옥탑방 정리해 줄 테니 집으로 들어와."

솔비 씨의 말이 끝나고, "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대답을 하려던 입이 떨리더니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졌다. 버티고 살아 내느라 힘겹게 눌러왔던 감정들이 그 짧은 위로에 복받쳐 오르면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얽힌 채무 관계, 신용불량자, 떠돌이 생활, 힘들었던 인간관계. 정말 그 어떤 하나도 쉽지 않았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며 깨달았다.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감사하고 큰 존재인 건지, 내가 얼마나 그 품을 그리워했는지를.. 그날로써 길었던 방황과 혼란의 시간을 끝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 달쯤 지나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쉴 만큼 쉬었다고 느낄 무렵 솔비 씨는 내게 지리산 암자에 가서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했다. 불교 신자인 솔비 씨는 지리산 큰스님과 인연이 깊었고 나도 어릴 적부터 스님을 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스님을 뵈러 길을 나섰다.

구례에 도착한 후 큰 스님과 식사를 마친 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스님께 내가 요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성공이란 누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아... 부자? 기업인?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스님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성공은 네가 한다. 오늘부터 너 자신을 믿어라. 대통령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어렵나? 너를 믿어야 뭐든 할 수 있다. 외국 나가서 영어도 배우고, 성공해라."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무식하다고 여겨왔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업조차 없이 살아왔던 터라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그런 나에게 '성공, 영어, 대통령'과 같은 말씀은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동시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는 고작 오락실에서 일해 본 사람이에요,”라고 힘없이 말했다.

스님이 큰 손바닥을  쫙 펴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손바닥이 있으니 손등이 있듯, 과거가 있으니 현재가 있는 거다. 네 과거를 부정하지 마라. 그 모든 것이 다 너다. 너를 긍정하라. 너에게 한계를 두지 말고 꿈을 품어라. 어떤 것이든 된다고 믿으면 이루어질 것이다. 꿈꿔라. 사람 품지 말고 꿈을 품어라. 맹수는 혼자 다닌다. 용맹하라.”

스님을 뵙고 돌아온 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는 듯한 깨달음이 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생각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긍정적 확언을 하려 할 때마다 내 안에서 의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그 목소리는 나를 부정으로 이끌었고, 다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생각과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생각들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때마다 생각을 정정하려고 애썼다.

“나에게 한계를 두지 말고 꿈을 품자.”

그렇게 반복적으로 나 자신을 알아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행복할까?"

정말 매일같이 고민하며 답을 찾아갔다. 그리고 3개월 후, 그 질문의 답을 네 줄로 정리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도 나를 좋아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사람들은 나를 찾아오고, 내가 바쁠 때 친구들이 내 약속이 끝날 때까지 나를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하루에 부재중 전화가 30통에서 100통까지 오곤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리지 않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일이 나에게 행복을 줄 것 같다.


질문의 답을 찾으니 희미하지만 답을 알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직업. 그런 일을 고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중국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찾아낸 답을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 말을 듣더니 조언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 중에서 대학에 학과가 있는 곳, 그리고 네가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분야를 찾아봐.”

그 말을 듣고 다시 고민해보았다. 상담사, 사회복지사, 서비스직, 코치 등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러 직업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사회복지학과가 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희미했던 답이 선명해졌다. 아 사회복지사가 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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