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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Da Jan 02. 2025

영포자가 캐나다에 가게 된 이유

학점은행제에서 TESOL자격증까지

전문대학교만 졸업했던 내가 사회복지과에 입학하려면 편입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내 학업 실력으로는 그 길이 매우 멀고도 험난하게 느껴졌다. 현실과 꿈 사이를 고민할 때, 솔비 씨가 시립어린이집 원장님이자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계신 이모를 집으로 부르셨다. 이모는 학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내게 학점은행제에 대한 설명과 함께 현실적인 길을 제시해 주셨다.


“오랜 시간 대학 편입 준비에 매달리기보다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1년 과정인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먼저 따고,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며 돈도 벌고, 경험도 쌓아 봐. 그리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따면 학사 학위도 받을 수 있어. 그 경험들은 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든든한 밑바탕이 될 거야. “


이모의 말씀에서 용기를 얻은 나는 그날 이후 발 빠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점은행제를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시작해 보니, 수많은 교육 기관들의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지금처럼 후기나 추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이 깊어졌지만 확실한 기준 없이 교육기관을 결정할 수는 없어서 대학에서 직접 운영하는 산업교육원을 선택했다. 그렇게 몇 달간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준비했고, 마침내 6개월 뒤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준비를 하는 동안, 이모의 조언을 떠올리며 집 근처 어린이집에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경력이 없던 내게 일자리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저녁 시간대의 일을 찾으려 노력했고, 마침내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보조교사 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운 좋게 학업과 일의 병행이 시작 할 수 있었다.


산업교육원에 첫발을 들인 날, 나는 곧바로 내가 알고 있던 일반 대학교 학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 어딘가 노련해 보이는 중년의 얼굴들, 그리고 내 또래보다는 훨씬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다가 학업을 다시 시작한 분들이라 그랬는지 에너지가 남달랐다. 나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느낌이 왠지 낯설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의 센‘기’에 눌려서 그랬을까 아무튼 마음이 알 수 없게 불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화가 찾아왔다. 그룹 활동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교육원 분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시각은 신선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그중 어떤 분은 영어 유치원 개원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하셨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영어 유치원의 운영과 교사의 처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너무 단순한 생각이 떠올랐다. ’ 내가 지금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있으니 영어만 하면 나도 영어유치원에서 일할 수 있겠네.‘ 물론, 나는 생각이 들면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기에 바로 동네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기초가 없던 나는 수업 내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학원을  3번 정도 나갔는데도 강의를 못 알아듣겠고, 수업 진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정도면 학원을 그만둬야 하는 건지, 앉아 있기만 하면 나중에 영어가 느는 건지 막막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 중국에 사는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는 자신도 영어는 잘 모른다며 웃었지만, 친한 친구가 유학을 다녀왔으니 어떻게 하면 되는지 대신 물어봐 주겠다고 했다.


얼마 후, 언니의 친구에게서  중학교 기초 영어책 두 권만 끝내면 학원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테니 언니가 직접 과외를 해주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언니와 만나기 시작했는데, 언니랑 만나면 영어 공부뿐이 아니라 언니의 유학시절 이야기, 문화 차이, 재밌는 외국 생활과, 연애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내 상상과 망상이 더해져 영어 공부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높여주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공부하다 보니, 영어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저절로 생겨났다.


물론, 공짜 과외에서 다들 아시겠지만, 언니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공부를 가르쳐주러 나와서도 본인이 밥을 사주고, 늘 칭찬도 해 주었다. 언니의 배려 덕분에 영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언니의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는 “이대로 열심히 하면 곧 영어 유치원에서 일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몇 개월간 언니와 함께 중학교 기초 영어책 공부를 끝마치고, 드디어 학원에 등록하는 날이 왔다. “이제 학원만 다니면 영어 유치원 교사가 된다. “라는 희망에 부풀어 틈틈이 영어 유치원 구인 사이트를 찾아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상상 속 나는 아이들과 영어로 멋지게 대화하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었다. 현실은 여전히 단어 암기와 문법 문제 풀이에 매달리고 있었지만, 그게 뭐 대수랴! 꿈이 있으니 다 괜찮았다.


그렇지만 얼마못가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영어 유치원 구인공고에서는 4년제 아동학과 졸업자와 외국 TESOL ( Teaching English Speakers to Other Langauge) 자격증 소지자를 찾고 있었다. 내가 학점은행제를 통해 공부를 마친 다 한 들, 나는 자격조건 미달이었다. 영어를 공부해도 영어 유치원 교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는데 솔비 씨가 내 눈앞에 보였다.

“엄마, 나는 4년제 아동학과 졸업자도 아니고 TESOL 자격증도 없어서 영어 유치원에서 일 못한데. 내가 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휴우.”

말이 끝나자, 솔비 씨는 단호하고도 짧게 대답했다.

“그럼 TESOL 자격증 따.”


그 한마디가 내 가슴에 불을 붙였지만 당시 세금을 떼고 월급 112만 원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어서 그랬는지

“그럼 돈은?”라는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솔비 씨는 무심히 대답했다.

“집에서 재워주고, 밥 주잖아. 네가 돈 들어갈 게 뭐가 있냐? 한 달에 90만 원씩 저금해서, 1년 뒤 천만 원 모아서 가.” 라며 금전적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그렇지만 내 의사를 지지하는 입장을 내보였다. 솔비 씨가 너무 태연히 말해서 그랬는지 외국에 나가서 자격증을 따오는 일이, 감나무에서  감 따는 일처럼 쉽게 느껴졌다. ‘아 그럼 되겠네.’ 그렇게 나는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 것과 실질적인 준비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라를 정하고, 학교를 정하며,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까지 모두 계획해야 했지만  내가 가진 정보는 너무 부족했다. 그 후, 정보를 얻기 위해 유학원이란 유학원은 다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관련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를 고민하던 중에, 유학원을 통해 동계올림픽 개최로 캐나다에서 Working Holiday 비자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내가 갈 나라를 캐나다로 정했다.


나라를 정한 후에는 캐나다 한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실질적인 정보들을 모았다. TESOL 학교 정보부터 생활비, 집을 구하는 방법까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Working Holiday 비자를 신청했다. 서류 심사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출국 날짜를 대략 1년 후로 정하고 그동안 영어 공부와 학업, 그리고 야간 보육교사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낮에는 학업, 밤에는 보육교사 일을 하며 시간을 쪼개어 영어를 공부했다.


이모의 조언을 들은 날로부터, 3년 동안 하루하루를 정말 치열하게 살았고, 아동학과와 사회복지학 점수를 모두 이수. 대학교 총장명의의 사회복지학 졸업장을 취득했다. 그리고 일 년간의 노력 끝에 working holiday 비자에도 합격했고 천만 원도 모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짠순이로 살았지만, 사실, 그 천만 원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모을 수 있었다. 영어를 무료로 가르쳐  준 언니 친구, 밥을 사주던 친구들, 차비 하라며 몇 달간 용돈 준 옆집언니, 솔비 씨의 3년간의 뒷바라지. 중국에서 언니로부터  매달 받은 용돈 30만 원과 학비.


내 꿈을 지지해 준 분들의 따뜻한 호의는 사과 놓고 ‘A도 모르는 영포자’였던 나를 캐나다까지 날아가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는 굳건한 마음과 함께, 2010년 TESOL 자격증을 따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안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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