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1 댓글 5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6개월 공부하고 캐나다 대학 갈 수 있냐고 묻는다면?

영어 못하는 어학연수생의 유학, 취직 도전기

by HaDa Jan 16. 2025
아래로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기 위해 들른 이민 컨설팅 회사에서 밴쿠버가 속해있는 BC 주에서는(주마다 법이 다름) 대학교를 졸업하면 3년짜리 노동비자 (working permit)을 받을 수 있고, 그 기간 안에 풀타임 직업을 구해 1년간 일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직원분의 설명을 쉽게 잘해주셔서 그랬는지, 영주권 취득이 뭐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럼 캐나다에서 대학만 나오면 된다는 거네요?”

Apple 을 두고 A도 모르는 내가 무지하게 물었다.

 “네”라는 대답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유학원으로 향했다.


밴쿠버에서 가장 크다는 유학원의 상담실. 차분한 목소리의 상담직원분은 대학 진학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인 아이엘츠(IELTS) 점수에 대해 먼저 설명해 주었다. 일반 대학 과정은 평균 6.5점 이상, 전문대학 과정은 5.5점 이상이 필요하고, 학교마다 입학 시기가 다르지만, 대부분 3월이나 9월에 개강한다는 설명 해주시고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안해 주셨다.

“11월까지 아이엘츠 점수를 만들고, 12월에 입학 원서를 제출하면 다음 해 9월에 입학할 수 있을 거예요. 이게 가장 이상적인 일정입니다.”

직원분의 열정적인 설명에 현실성은 제쳐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남은 시간은 고작 6개월. 영어 점수를 그 안에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내비치자, 직원분은 자신만만하게 "다 방법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 방법은 바로 아이엘츠 학원에 다니는 것이라며 학원을 추천하며, 그곳의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어 많은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고 대학에 잘 갔다고 설명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라는 말과 함께, 마치 학원에 다니기만 하면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처럼 격려해 주셨다. 그때는 그 무한 긍정에 솔깃해졌지만,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는 유학원에서 학생을 소개해주면  20%의 커미션을 받으신다고. 뭐 그래도 괜찮다. 당시엔 그 열정적인 격려에 마음이 움직여져서 학원에 상담을 갔으니까.  


아이엘츠 학원의 문을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이한 담당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였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친근한 말투로, 학원에는 중·고급반과, 초급반이 있고, 반 배정을 위해서는 예비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날 설명을 듣고 예비시험 날짜를 정하고, 예비시험에 도전했다. 며칠 뒤, 4시간 동안 예비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담당자를 만났다. 그가 다시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참 보기 드문 일이에요. 한 가지로 찍어도 1점은 맞는데, 빵점은 처음 봐요.”
그가 깔깔깔 웃는데 무안해서 덩달아 웃었다.

“죄송한데, 초급반 수업도 못 들으실 것 같은데요?”

그가 농담인 듯 아닌 듯 덧붙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한국에서 중학교 영어 교과서 두 권을 공부한 게 전부였고, 문법 학원도 겨우 3개월 다닌 게 다였다. 빵점이란 결과가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절망감은 피할 수 없었는지 기분이 안 좋아졌고, 내 기분이 얼굴에 다 드러나자 그가 재빨리 태세를 전환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초 영문법 수업과 아이엘츠 초급반을 병행하면 6개월 안에 충분히 점수 나옵니다!”그리고는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학원비를 1700불(한화 약 190만 원)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속으로는 큰 금액에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학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는 길에 생각해 보니 체계적인 학습을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 학원비를 솔비 씨에게 얘기하고, 도움을 받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여, 솔비 씨에게 전화로 상황을 이야기하자 솔비 씨가 바로 옆에서 말하듯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나는 되는 것에만 투자해. 내 돈 받고 싶으면 대학교 합격 하고 얘기해.”

솔비 씨 말이 다 맞는 말이지만 내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서인지, 날 못 믿는 게 속상했던 건지 무지 속상했다. 마음이 풀리지 않아 푸념이라도 해야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털어놓자, 언니가 나를 달래듯 말했다.
“학원에 다녀야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니가 뜻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고 매일 공부하면 될 거야. 그리고 중간중간 책을 사서 부록 된 모의고사 문제지를 풀어보고 실력을 점검해 봐.”

팔랑귀에게 또다시 희망의 소리가 들렸고 6개월 동안 영어에만 매달리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날 이후 내 일상은 지루하고 단순하게 바뀌었다. 하루 6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영어 공부로 채웠다. 매일 단어 100개를 외우고, 끊임없이 듣고, 말하고, 쓰며 온종일 영어와 씨름했다. 인터넷과 책에서 모의고사 자료를 찾아 풀고, 실력을 점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를 위해 매일 정진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지만 이 도전 없이 영주권도 없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계획표에 적힌 목표를 하나씩 지워가며 살아갔고, 가끔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면 술이 간절했지만, 다음 날 스케줄을 생각하며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맥주로 기분을 달래곤 했다.


버티고 또 버텨낸 6개월.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그 시간은 어느새 끝이 보였다. 드디어 아이엘츠 시험을 치렀고, 캐나다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최소 점수인 5.5점을 받았다. 우편봉투를 뜯고 점수를 확인하던 순간, 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비명, 집안을 방방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때의 환희는 지금도 생생하다.


바로 다음날, 결과를 들고 다시 유학원을 찾아가서 어떤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을지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직원분은 공부 자체가 아닌 이민을 목표로 한다면 졸업 후 취업이 쉬운 학과를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관광의 도시 밴쿠버에서는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하면 호텔, 관광명소, 카지노, 여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민이 더 수월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취득한 보육교사 자격증이 밴쿠버에서도 교사 자격증으로 교환 가능하다는 정보를 들었다. 유치원에서 영주권 지원을 받아서 영주권을 진행할 수 있고, 학교를 통해서 워킹퍼밋을 받은 후 영주권을 진행할 수 있는 옵션들이 생겼다. 그러나 입학원서 준비 기간이 빠듯하여, 고민할 시간이 길지 않아서 관광경영 전문대학교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교사 자격증 교환 신청을 진행했다.


해야 할 결정도 끝냈고, 서류도 접수하니 학교 발표까지 4-5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기간 동안 일을 하려 했지만, 당시 내 영어 실력으로는 흔한 햄버거 가게 알바조차 구할 수 없었다. 결국, 한국인 커뮤니티의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본 후,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SAT 학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서든 빠르게 적응하는 성격 덕분에 다른 선생님들과 친해져서 학원의 운영 방식을 단기간에 익혔다. 부모님들에게는 정성을 다해 응대했고, 관계가 곧 신뢰로 이어지자, 학원생 수가 소개 소개로 점점 늘어났으며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학원의 매출을 크게 올리는 성과를 냈다. 모든 게 수월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안정과는 달리, 내 안에서는 영어 부족이라는 현실이 늘 나를 옭아맸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영어 수업은 어떻게 따라가야 할 지도 막막했다. 학원 데스크에 앉아 같은 고민을 하던 어느 날에 학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기다리며,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 준비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려면 에세이를 제출해야 하는데 내용을 추려서 쓰기가 어렵다, 작년에 커트라인은 몇 점이었다더라, 어떤 자원봉사를 했을 때 가산점을 더 쳐준다더라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원봉사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아이들이 저마다 다양한 봉사 경험에 대해 자랑했고, 나는 듣다가 호기심이 생겨거 대뜸, 끼어들어 ”그런 자원봉사는 다 어떻게 알고 하는 거야?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원봉사는 영미권 나라에서 살며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라며, 사이트를 앞다퉈 공유해 주었다. 그리고는 자원봉사 경력도 이력서에 적을 수 있고, 그 기간도 인정해 주며, 원하는 것을 배우며, 실질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원봉사라는 단어가 내 귀와 내 마음에 팍 꽂쳤다. 어차피 나중에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려면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 경험과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유치원에서 자원봉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모로 가도 서울로 간다.‘ 는 생각으로 밴쿠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치원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면접날.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아 원장님께 미소로 대답하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는데, 원장님이 “언제부터 올 수 있냐”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만큼은 알아듣고 “Anytime”이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며칠 후에 합격 통보를 받고, 시간을 조율하고 유치원에서 요구한 모든 서류를 제출한 뒤 드디어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유치원 아이들과 간단한 대화조차 안 됐고, 동료 교사들과의 소통도 어려웠지만 매일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냥 변화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계속 자원봉사를 다녔다. 영어를 못해도 웃어주는 아이들을 통해 힐링을 하고, 쌓이는 경험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버텼던 거 같다.


어느덧 5월이 되고, Capilano University 관광경영학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1년 전,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시작한 준비가 이렇게 결실을 맺다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은 결과였다. 대학 합격의 소식을 솔비 씨에게 전했을 때, 엄마는 지난 10년간의 나에 대한 불신이 사라졌다는 듯 깔깔대며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좋은 일이란 한 번에 몰려오는 법일까. 너무도 감사하게 자원봉사하던 유치원에서 나에게 파트타임 교사 일을 제안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원봉사가 '기회의 장'이라더니, 그 말이 실제로 내 삶에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년 만에 영어 못하는 어학연수 생에서 캐나다에서 직업을 가진 대학생이 되었고, 빨간 단풍이 물드는 9월에 Capilano University에 입학을 하였다.











 



이전 09화 밴쿠버라면 6개월간 3번의 이사도 참을 수 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