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썩은 동아줄을 잡은 캘리포니아 신부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한 이유

by HaDa Jan 31. 2025

내가 밴쿠버로 유학을 막 왔을 때 만난 수언니는 내 이민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니, 언니 없이는 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영어를 전혀 못 했던 때라, 하루에도 몇 번씩 언니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했을 때에도, 언니는 싫은 기색 한번 없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런 언니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귀찮을 만큼 졸졸 따라다녔더랬다. 2년쯤 지났을 때, 언니가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더 늦으면 용기를 못 낼 것 같다고 하더니, 미국에 갔다가만 오더라도 우선 가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어디라고 따라갈 수도 없고, 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그때까지 나는 수 언니가 그 정도로 추진력이 강한 사람인지 몰랐다. 그런데 웬걸, 언니는 불과 3개월 만에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솔비 씨랑 떨어질 때도 그렇게 울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동안 너무 정이 들었던 걸까? 가족이랑 헤어질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도 마음이 안 괜찮아졌고 언니가 너무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고민하고 있지? 비행기 값이 40만 원이면 못 갈 곳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얘기를 하고, 휴가 날짜를 맞추고, 캘리포니아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11월.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서 겨울 점퍼를 껴입은 채 공항 안으로 달려들어갔는데, 엘에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입고 있던 스웨터와 패딩을 벗어야 될 만큼 날씨가 따뜻했다. 한국의 가을 저녁 같은 선선한 날씨를 즐기며 수 언니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저 멀리 수 언니가 보이자, 눈물이 났다. 달려가서 언니와 반가운 재회를 하려 하는데, 언니가 대뜸 서둘러 가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어디를 같이 가야 되냐고 묻자,

"A라는 사람이 있는데, 내 하우스메이트 친구야. 사업을 한다는데 일도 잘 된다고 하고 괜찮아 보이더라고. 근데 캐나다에서 동생이 온다고 하니까 밥 사준다 하길래 저녁에 나오라고 했어. 둘이 잘 될지 또 알아?"라고 했다. 급히 차에서 화장을 고치고 옷을 갈아입고 부랴부랴 식당에 도착했을 때 A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부리부리한 이목구비,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나와 닮은 듯한 모습.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여행 왔으니 재미있게 놀아야죠!"라며 맛있는 저녁도 사주고 여기저기 가이드를 해주었다.


다음 날엔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사주겠다고 해서 San Diego로 향했다. A가 전날부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점심을 먹고 내가 카드를 내밀자 A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 만나는 동안 커피 담당이야. 커피만 사 줘. 나머지는 내가 살게." 그의 말속에 우리의 만남을 지속하겠다는 확신이 담겨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묘하게 좋았고, 마치 특별한 관계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식당을 나와 차로 걸어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A가 나에게 물었다.

"미국 친구들 생일 파티는 어떤지 보여줄까? 같이 가자."

수 언니가 갑자기 반색하며 말했다.

"어머, 잘됐다! 안 그래도 저녁에 볼 일이 있어서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네가 데리고 가 준다니 너무 좋네!"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나를 보며, "오빠랑 재밌게 놀다 와~" 하며 능구렁이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저녁. 기분 좋게 한껏 꾸미고 나서 A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차문을 열고 꽃다발을 꺼내면서,

"너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라고 물었고 난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손을 꼭 잡은 채로 친구의 생일 파티에 등장하자, 우리를 보고 친구들이 축하를 해줬고, 심지어 생일 주인공보다 A가 더 많은 축하를 받았다. 파티가 끝나고 수 언니 집으로 돌아와서 언니에게, 언니를 보러 와놓고 A랑 시간을 보내서 미안하다고 하자, 언니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 오는 것이 언니의 소원이라며 남은 3일 동안 A와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꿈같던 3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운명 같은 일이 벌어졌다. 캐나다에 입국하려던 중, 업무 착오로 인해 내가 이미 노동 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여행 비자를 요구하며 내 입국이 거절된 것이다. 그 당시 캐나다는 단기 비자가 없었는데 그날. 내가 캐나다로 입국하는 날부터 단기 비자가 시행되면서, 비자가 나올 때까지 미국에서 기다려야 했다. 일하던 유치원의 원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유를 설명하니,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비자가 나오면 조심히 오라고 했다. 꼬인 비자 덕분에, 4일 동안 A와 행복한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얘기도 많이 하고, 시간을 보내며 빠른 시간 안에 무척 가까워졌다. 4일 후, 비자가 나오고 드디어 작별의 날이 왔다. 공항에서 그와의 이별이 아쉬워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손을 만지작 거리며 함께 있다가, 보딩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놓기 싫은 손을 놓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밴쿠버로 돌아갔다. 다시 밴쿠버 공항에서 스웨터와 패딩을 껴입고 공항 밖을 나왔을 때, 캘리포니아와 비교되게 너무 추웠던 날씨와 A와의 달콤했던 10일간의 시간이 그리워서 서글펐다.


일상으로 복귀를 하고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A와 영상통화를 하며 행복한 일상을 공유했다. 어느 날은 A가 12월에 어머니 생신 잔치를 하는데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여행을 다시 떠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서 원장님한테 어떤 핑계를 댈지 고민하다가,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시는 원장님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미국에 있는 남자친구 어머님 생신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원장님은 결혼 적령기에 일보다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다녀오라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다가왔고, 꿈같은 재회를 한 우리는 다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머님의 생신 잔치 날, A와 함께 그의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 어른들이 몇 분 와 계신 작은 모임일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여 있었다. 가족들은 나를 환영해 주었고, 격식 없이 편하게 대해 주셨다. 그렇게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A와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벤쿠버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A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화면 속 그의 눈빛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 솔직히 한 발 빼고 한발 담그고 있었는데, 나 안 재고 안 따지고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너도 나 재지 말고 캐나다 영주권 포기하고 나랑 결혼해 줄래?”

그의 청혼은 나를 울렸다. 내가 그토록 기다린 캐나다 영주권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듯이 느껴졌다. 그래. 영주권이 어디 거면 어떠고 없으면 어떻겠냐. 그의 청혼을 허락했다.


짧았던 만남, 급진전한 사이, 모든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나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갖다 붙이며, 내 결정을 확신했고 솔비 씨에게 청혼 소식을 알렸다. 솔비 씨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당장 결혼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했다. A에게 정신이 팔린 나는 죽기 살기로 솔비 씨를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유치원 원장님께는 그동안의 은혜를 보답할 길도 없이, 사직 결정과 영주권 포기 의사를 밝혀다. 차를 팔고, 회계사를 고용해 모든 계좌를 닫고, 짐을 싸서 미국으로 보내고, 짧은 시간에 이사를 마무리하고 솔비 씨를 설득하러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 도착해서 몇 날 며칠간 솔비 씨를 설득했고, 솔비 씨가 A와 전화 통화를 했다. A는 자신이 나를 데려와서 어떻게 해줄 건지, 어디에 살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들을 말하며 솔비 씨를 설득했고, 솔비 씨가 결혼이 아닌 교재를 허락했다. 내 캐나다 여권 만기일이 7개월 남짓 한 상황에서 솔비 씨는 미국으로 돌아가 A와 3개월 정도 사귀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캐나다로 돌아가야 되니까, 우선 미국으로 가서 사귀어 보라고 했다. 솔비 씨에게 이미 영주권을 포기했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솔비 씨의 말을 듣는척하고 솔비 씨를 속였다. 솔비 씨는 내가 관광 비자로 미국에서 체류를 하고 사귀어 본 다음에 결혼 결정을 하는지 알고 나의 미국행을 허락했고, 나는 결혼을 밀어붙일 계획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고단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받기 위해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언어의 벽에 부딪히고,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 모든 아픔이 보상받듯,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만 같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그 줄을 잡았을 때, 마치 운명이 내게 손을 내민 듯했고,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믿었다. 그 줄이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른 채. 인생의 중대사를 쉽게 결정한 것에 어떤 후 폭풍이 닥칠지 모른 채. 미국에 도착했다.

이전 11화 캐나다 영주권, 시간을 담보로 한 거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