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한 첫 해외여행기(태국)
중고등학생 시절 학업에 집중하느라 바빴고, 대학 시절에는 ROTC(학군장교) 활동으로 방학마다 시간이 없었다. 졸업 후에는 군복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전역 후에는 임용 준비에 몰두했다. 마침내 교사가 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의 기회가 막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직까지 네 명이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설 연휴, 부모님께서 먼저 "가족이 더 늘기 전에 다 같이 여행을 가보자"라고 제안하셨다. 나 역시 방학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 고민하던 차였고, 이번 가족여행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동생과 나는 자유여행을 즐겨왔지만,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관광지, 식사, 숙소 등을 정하는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 오롯이 행복한 추억만 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이동수단, 먹거리, 숙소 등을 정하는 문제로 동행자끼리 갈등을 겪는 일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이며 편하게 즐기기로 했다.
여행은 할 때보다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레고 좋다고 하던가? 설 연휴 전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캐리어를 챙겨갔다. 나의 여행은 설 연휴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본가에 와서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지를 검색하고 각자의 해외여행 경험담을 나누며 출국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출국 하루 전 우리가 타기로 한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얼마 전 제주항공 사고도 있었던 터라 "이 여행을 가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어렵게 맞춘 일정과 첫 가족 해외여행이라는 설렘이 불안감을 눌렀다. 결국 우리는 짐을 싸고 여행지를 검색하며 무사히 다녀오길 기도했다.
약 5시간의 비행 끝에 태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던 중 낯선 환경에 당황한 듯한 할머니 세 분이 눈에 띄었다. 익숙한 뽀글 머리와 색이 진한 등산복과 허리춤에 메는 작은 가방까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패션 덕분에 한눈에 한국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들은 입국심사 절차가 낯설어 보였고 두리번거리시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란 것을 아시고는 함께 가자며 웃음을 보이셨다. 별것 아닌 일을 함께 해드리며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패키지여행 동행자들이었다.
이번 여행은 34명의 여행객과 함께하는 패키지여행이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인솔을 받으며 움직이니 마치 수학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학생들을 인솔하는 역할만 했기에 무리 속 한 명의 여행자로 참여하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인솔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 빨리고 힘든 일인지 알기에 가이드의 통제에 잘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가이드는 태국에서 24년간 활동한 베테랑이었다. 다부진 체격, 검게 그을린 얼굴, 콧등까지 내려온 깊은 다크서클은 가이드로서 그 경력을 증명하는 듯했다.
초·중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70대 할머니들, 91세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중년 남성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91세 할아버지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이어지는 일정도 거뜬히 소화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여행을 즐기셨다. 할아버지의 건강함과 여행을 즐기시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부모님께 저 할아버지처럼 병원비 대신 여행 경비로 노후를 보내시길 바란다는 말을 할아버지의 실사례를 빗대어 당부 또 당부했다.
점심시간에는 망고 비빔밥을 먹었는데, 비빔밥에 망고라니... 비주얼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상상이 잘 안 갔지만 나름(?) 먹을 만했다. 어떻게 이게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신기해하며 밥을 먹던 중 우리 테이블로 누군가가 던진 비닐이 날아왔다.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김, 김치, 깻잎 장아찌를 공항에서 만난 할머니께서 던지듯(!) 나눠주신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경상도식 플러팅’에 순간 당황했지만 익숙한 한국의 맛 덕분에 더욱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여러 관광지 중 왓포 사원의 와불상, 황금절벽 사원의 거대 불상, 백만 년 공원의 규화목(백만 년이 지난 나무 화석) 등 자신의 소망을 기도하고 기운을 받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끔 하는 곳도 있었다. 그곳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가이드가 영웅담처럼 소개해주었다. 누가 여기서 소원 빌어서 로또 1등이 됐다느니, 태국 국왕의 수명이 길어졌다느니 등등...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곳의 기운만큼은 믿기로 하고 나의 바람을 간절하게 기도했다. 나중에 기도가 이루어지면 어디서 어떤 내용으로 기도했는지 따로 소개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그리고 요트 투어에서는 신청자에 한해 제트스키를 직접 운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91세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제트스키 운전을 신청하셨다. 가이드와 주변 여행객들이 걱정했지만 중년의 아드님은 웃으며 '퇴직 후 오토바이 면허까지 따서 타고 다니셨으니 괜찮다'며 안심시켰다. 다큐에서 보거나 책에서 본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직접 목격한 순간이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제트스키를 탔다. 차선도, 신호도 없는 망망대해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소리 지르고 달리며 맞는 바닷바람은 아주 짜릿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방콕에서 크루즈를 타고 석양을 감상하며 디너를 즐겼다. 시원한 강바람, 붉은 석양, 흘러나오는 노래, 여행했던 추억과 마지막 일정이라는 점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 순간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부모님과 아무 걱정 없이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사진 찍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만끽하며 크루즈를 타고 가는 도중 마주 오는 크루즈의 사람들과 손 인사를 했다. 마치 이 공간의 특별함을 느끼고 있는 것을 서로 축하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가족과 한 첫 번째 해외여행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각 국으로 귀국하는 여행객들이 많아서 체크인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졌고 비행기 시간을 놓칠세라 서둘러야 했다. 할머니들은 입국심사부터 수하물 부치는 과정까지 모두가 모험처럼 느껴지셨는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출국 때처럼 할머니들과 함께 움직이며 짐을 들어드리고 발걸음을 맞춰서 출국 게이트까지 함께했다. 할머니들은 동생과 나에게 아들같이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나의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는 더 나이가 드셔서 공항에서 헤맬 날이 올 테니, 그때 누군가가 도와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반팔, 반바지의 가벼운 옷차림에서 긴팔과 패딩으로 중무장했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가 한국에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했다. 부모님의 입국 후 첫마디는 "한국이 제일 좋다"며 깨끗한 수돗물과 익숙한 우리나라 풍경을 칭찬하셨다. 저녁에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아빠가 갑자기 우리를 다급하게 불렀다.
"야!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태국 나온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TV 앞에 모여 앉아 "저기 우리가 갔던 곳!" 하며 여행을 다시 추억했다. 당장 어제의 일인데 마치 오래전의 일처럼 여행했던 순간을 아련하게 추억했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곳을 가기 위한 것도 아니고 외국이라고 더 좋은 곳도 아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현실에서 벗어나 제3의 세계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오롯이 나의 취향과 생존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상이 또 다른 색깔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부모님은 한국이 제일 좋다면서도 벌써 "다음에는 백두산을 갈까? 유럽을 갈까?" 하며 기약 없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여행은 끝났지만, 여행의 추억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