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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by om maum

여럿이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혼자서 여행하는 것도 굉장한 매력이 있다. 나만의 템포와 취향을 100% 반영하여 여행 일정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순간의 선택에 만족할 때도 있고 후회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알아가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 제주도를 2박 3일 다녀오기로 했다. 1/21(화)~1/23(목)의 여행 일정을 기록해 보려 한다.


1.21(화) - 첫째 날


16:05 비행기라 아침에 여유 있게 일어나 짐을 챙겼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요가&명상, 한라산 등산, 해안도로 러닝, 하다 책 숙소에서 졸릴 때 자고, 일어나 책 보고 하는 신설놀음 하기로 정했다. 그러다 보니 짐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다. 겨울 산 등반이라 등산화, 아이젠, 스틱 등등 등산용품과 러닝에 필요한 러닝화, 요가 명상할 때 입을 편한 옷 등등..

캐리어를 들고 가자니 수화물 맡기고 찾는 것이 귀찮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여름 같으면 해외여행 갈 때도 배낭 하나 메고 가는 편이다. 그래서 등산복은 입고 등산화는 신고, 나머지는 가방 하나에 꾹꾹 눌러 담아 가기로 했다. 혼자 여행 갈 생각에 들떠서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공항 근처 친구 집에 주차해 두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스타벅스에서 여유 있게 커피도 한 잔 했지만 너무 서둘렀을까.. 공항에서 수속절차를 모두 끝내고도 한 시간이 남았다. 그래도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설렘이 있지 않은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표정과 일 년에 몇 번 오지 않는 공항의 적당한 긴장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활주로의 풍경, 각 항공사의 유니폼을 정갈하게 입고 비행 준비하는 기장과 승무원들을 보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인수했다. 내 차가 아닌 다른 차를 운전한다는 것도 참 묘한 감정이 생긴다. 마치 새 신발을 신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평소 운전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요가&명상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해서 갔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몸동작을 하고 둘러앉아 명상을 하는 동안 처음 느꼈던 낯섦이 안정감으로 바뀌고 오롯이 지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있을 한라산 등산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 일찍 잠들려고 애썼다.

1.22(수) - 둘째 날


오늘은 한라산 윗세오름에 갈 예정이다. 유튜브, 네이버 등에서 검색해 보니 오백장군과 까마귀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으면 영실 매표소부터 1시간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보통 07:30까지 가면 안정권이라길래 안정권에 안정을 더해 07:00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06:00시 알람 소리에 바로 일어나 대충 씻고 미리 챙겨둔 등산복과 장비를 챙겨 출발했다. 가는 길에 해가 뜨고 잠도 깨면서 오늘 마주하게 될 한라산의 설경을 막연하게 상상하고 기대했다. 영실 매표소에 도착했더니 오백장군과 까마귀 주차장은 결빙으로 차량 통제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혹시 모르니 화장실도 들리고 빠뜨린 장비는 없는지 확인 후 (이럴 땐 내가 J성향이긴 한가 보다) 출발선에 서서 인증샷을 남기고 등산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금방 숨이 차고 몸에 열이 올랐다. 30분쯤 가서 입고 있던 패딩을 가방에 구겨 넣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서야 오백장군과 까마귀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이다. 이 구간을 위해 준비해 온 아이젠과 스틱을 꺼내 당당히 겨울산 안으로 파고들었다. 초입이었지만 폭설과 낮은 기온으로 눈이 녹지 않고 한라산 전체를 포근하게 덮고 있었다. 그 설경을 마주하자마자 ‘아,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과 올라갈수록 더 멋지고 감동적으로 펼쳐질 설경을 기대하며 뽀드득 소리를 BGM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올라가서 마주한 병풍바위와 내 등 뒤에 펼쳐진 다른 오름들을 발 밑에 두고 있자니 그 풍경은 나의 발을 한참 동안 머물게 했고, 휴대폰 용량은 계속해서 줄어만 갔다. 윗세오름에 도착하는 길은 아주 다채로웠다. 설경의 느낌이 마치 새로운 산에 올라온 듯한 전혀 다른 느낌을 계속해서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윗세오름 끝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혼자 왔기 때문에 윗세오름 인증샷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곳까지 함께 올라온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인증샷을 남기고 대피소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먹었다. 자유시간, 삶은 달걀, 물, 라면인데 여기서는 5성급 호텔 뷔페도 부럽지 않은 꿀맛이었다. 감히 비교하자면 군대에서 야간 행군 중 먹었던 컵라면 하나와 비교할 한 인상적인 맛이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인가…

그렇게 나만의 5성급 뷔페를 먹고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더 미끄러워서 아이젠과 스틱이 없었다면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다. 나의 준비성에 뿌듯해하며 안전하게 내려왔다. 하산이 끝나갈 때쯤 이 멋지고 황홀한 설경 속에서 내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 찍었던 풍경을 찍고 또 찍고 조금이라도 눈에 더 담아가고 싶어서 머물러 둘러보았다.

하산 후 제주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말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마지막 날을 보낼 ‘하다 책숙소’ 체크인 시간에 맞춰서 갔다. ‘하다 책숙소’는 몇 년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마침내 이번에 오게 되어 오늘 오후는 오롯이 여기서만 보내고 싶었다. 이 숙소의 특징은 1, 2층 복층구조에 군데군데 책이 꽂혀 있고 쌓여 있어서 눈에 밟히고, 들어선 제목의 책을 공용공간이나 자기 방에서 편하게 읽으면 된다. 그리고 투숙객도 소수만 받고 운영해서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마치 도서관에 숙소가 있는 느낌이랄까.. 한라산 다녀온 피로 때문인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숙소를 둘러보다 눈에 딱! 띄는 책 제목이 있었다. ‘아무튼, 달리기’ 작가의 표현력도 너무 재미있고 평소 관심사이기도 해서 그런지 한숨에 끝까지 다 읽었다. 특히, 파리 마라톤 대회를 자세히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파리를 8박 다녀와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서 파리의 곳곳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대회를 상상 속으로 함께 뛰었고, 그 당시 파리에 있었던 내가 그립기까지 했다. 우연히 만난 책과 즐겁게 교감하고 난 뒤 내일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근처 편의점에서 산 맥주 두 캔과 함께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이번 제주 여행의 추억을 붙잡고 있다.

1.23(목) - 셋째 날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눈을 뜨자마자 방 안의 큰 유리창은 파란 물감에 흰색을 막 섞기 시작한 색으로 뒤덮인 하늘이 사진 처럼 걸려 있었다. 나는 내가 제주도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고 오늘 돌아가야한다는것이아쉬웠다. 8시 30분부터 먹을 수 있는 조식을 먹고 바로 출발해서 렌터카를 반납하기 전에 신창풍차해안도로에서 러닝까지 했다. 봄 같이 따듯한 날씨에 적당한 세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주 여행을 마무리 한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라산의 설경을 보며 느꼈던 감동과 하다책숙소에서의 편안함은 앞으로의 삶에서도 계속해서 나를 지탱해 줄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그 사람과의 특별한 연결고리가 된다면 혼자 하는 여행은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과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다.

다음 여행을 통해 만나는 나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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