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가장 슬픈곳이자 가장 따듯한 곳의 이야기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무안공항에서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12월 초부터 뒤숭숭했던 분위기에 생각지도 못한 큰 사고가 더해지며, TV를 보는 모든 국민이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TV를 켜거나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대통령 탄핵 이야기와 무안공항 사고 소식이 쏟아졌습니다. 여러 기사를 읽고 뉴스를 시청하는 동안 마음이 너무 무겁고 슬펐습니다. 그러던 중, 1월 2일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무안공항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원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생의 좌우명 중 하나로 삼아서 일까요? 저도 가서 미력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리고는 출근 후 평소처럼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까지 아침에 들었던 라디오 소식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TV에서 사고 후속 보도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고 아침에 들었던 라디오 소식이 생각났습니다. 비통한 마음은 들었지만,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했고, 그 마음 역시 달랠 길이 없었으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불편하고 무거운 감정을 그저 묻어두거나 외면하고 TV 채널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직접 가서 돕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가야겠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 마지막 날인 1월 4일 토요일 오전에 중요한 일을 마치고 곧바로 무안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무안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도착하면 어떤 일을 맡게 될지,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생각하며 작은 일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향했습니다. 약 5시간 만에 무안공항 나들목에 들어서면서 TV로 볼 때보다 훨씬 더 슬프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고 현장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주차장 입구부터 경찰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고, 줄지어 늘어선 구급차들을 보며 사고 현장에 도착했음을 실감했습니다.
주차를 하고 공항 로비로 들어가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유가족, 공무원, 경찰, 자원봉사자 등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자원봉사 현장 접수대로 가서 접수한 후 조끼를 받아 입고 출입구 쪽에서 안내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한 시간가량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동안 사고 수습 중인 공무원들과 경찰들의 대화 소리, 통화 소리, 유가족들의 대화 소리 등이 무거운 공기 속을 떠다니다 결국 제 귀에 까지 들어왔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사고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체계가 잡혀가는 단계로 보였습니다.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과 공무원 및 경찰들의 빠르게 돕고자 하는 마음은 서로 다른 시계로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한 시간쯤 서 있다가 다른 자원봉사자분이 교대해 주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쓰레기 치우기, 분리수거, 구호물자 정리, 시설 정리 등 다양한 일을 도왔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열심히 봉사하다가 잠시 쉬고, 쉬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끼리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들만이 들을 수 있는 작고 절제된 목소리로 “힘내세요”, “파이팅!”을 전하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봉사자들 중에는 수원에서 혼자 온 초등학교 5학년 학생, 휴가 중인 군인, 방학 중인 교사, 가족 단위로 온 봉사자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서울, 경기, 인근 지역등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24시가 되어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뒷정리를 하고 소독 및 물품 정리를 마친 후, 조끼를 반납했습니다. 이어 합동 분향소로 가서 한 분 한 분 영정사진을 보며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습니다.
장거리 운전과 18시부터 24시까지 이어진 봉사활동으로 피곤할 만도 했지만, 현장의 긴장감과 따뜻한 분위기에 각성이 되어서인지 졸음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슬프고 안타까운 비극 속에서도 따뜻함이 깃들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불행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하루아침에 닥친 아픔과 슬픔은 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고, 우리의 손길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슬픔은 나누면 작아지고, 따뜻한 마음은 나누면 커집니다. 따뜻한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