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
먼 곳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우리 집은 자동차로 기차역까지 30분 정도 소요되는 터라 미리 출발해서 기차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내는 손님을 마중 나가고 차 안에는 15개월 된 딸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회전 교차로를 열심히 돌고 있는 큼지막한 버스나 승용차들이 있었고, 이 풍경은 조용한 저의 차 안과는 대조적으로 보였습니다. 기차역 쪽으로는 여행을 떠나거나, 이제 막 여행지에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혼조를 이루었고요. 그때 한 커플이 손깍지를 끼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딱 붙어서 촐랑촐랑 발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이 어디서 봤던 것만 같은 아련한 느낌까지 들게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둘만 보일 정도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문득 잊고 있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아내와 저렇게 손깍지 끼고 착 붙어서 다녔던 때가 있었죠. 지금은 어린 딸을 돌보느라 서로 바쁘지만 말입니다. 내게도 그런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만을 부러워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미 내가 가진 것을 잊고 산다는 뜻이니까요. 바깥을 보던 시선을 다시 돌려 뒷좌석을 바라보았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딸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뒀습니다. 내가 이 순간 행복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그대가 갖지 못한 것을 상상함으로써 그대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훼손하지 말라.
-에피쿠로스-
SNS 속의 수많은 여행 사진, 비싼 자동차, 좋은 집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다음은 부러워하게 되고, 그다음으로는 질투하거나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나도 꼭 저런 삶을 이루어내고야 말겠어!"와 같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죠. 후자가 더 나아 보이긴 하지만 저 둘의 공통점은 현재 내가 가진 것은 잊게 한다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훼손하는 것이죠.
그대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은 그대 자신이 한때 갖기를 열망했던 것임을 결코 잊지 말라.
-에피쿠로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깥으로 향한 시선을 안쪽으로 돌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내가 가진 것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잘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손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서 부러웠냐고 내게 묻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부럽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내가 다 가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