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진부면~용평면 속사보건진료소~이승복기념관~생가 진입로 입구 15km / 누적 299km
이번까지 3년 연속 국토 종주를 4월에 하다 보니 들녘을 지날 때면 거름 냄새가 진동한다. 밭에 로터리를 치고 검은 비닐을 씌운 밭도 있지만, 퇴비만 뿌려 놓은 밭도 많다. 내가 걸으며 냄새 맡은 퇴비는 주로 돼지 똥과 닭똥으로 만든 축분 퇴비다. 냄새가 여간 고약하지 않다. 가끔은 구수한 퇴비 냄새도 맡는다. 오래전에는 짚이나 나뭇잎 등에 사람 오줌과 똥을 섞고 푹 삭혀서 퇴비를 만들었기 때문에 채소를 제대로 씻지 않고 먹으면 회충에 감염되었다. 그 좋은 사람 똥오줌이 수세식 변기 등장으로 아깝게 버려지며 그 자리를 돼지 똥과 닭똥이 차지했다. 가축 먹이도 곡물이나 꿀꿀이죽 대신 사료를 사용하니 그 똥 또한 자연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밭에서 자란 작물을 우리가 먹는 것이다. 물론 육류 소비 증가로 가축 사육이 늘었고, 엄청난 가축 배설물은 환경을 오염시키지만, 이를 퇴비로 재생산한 것은 일거양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걷다 보면 하루살이가 자주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날아다닌다. 코에 앉고 눈앞에서 얼쩡거려 무척 성가시다. 쫓아도 소용없다. 배낭을 짊어지고 뛰어도 봤지만, 이놈들은 이내 쫓아왔다. 모자를 휘둘러 눈앞 하루살이를 쫓다가 안경을 내려치는 바람에 자칫 안경이 깨질 뻔도 했다. 얘네들은 나에게서 나는 땀 냄새에 홀려서 떠나지 않았다. 하루 도보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먼저 빨래부터 한다. 피곤도 하고 빨래를 마쳐야 저녁을 먹을 수 있으므로 비누칠도 헹굼도 대충한다. 부실하게 세탁한 옷이 다음 날 땀과 섞여서 걸을 때 쉰내가 솔솔 피어난다. 이 냄새가 하루살이의 후각을 자극한다.
내가 뀐 방귀 냄새는 구수하다. 나만 그런가? 얼마 전 지하철에서 방귀 냄새가 나길래 코를 막고 얼른 일어나 다른 곳으로 피했다. 다른 사람이 똥 누고 간 화장실에 바로 들어가면 그 냄새 때문에 참기 어렵지만 내가 눈 똥 냄새는 참을 만하다. 사람은 본래 ‘나 중심’으로 창조되었나? 그래서 다툼이 많고 전쟁도 하나?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한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내 방귀 냄새에 타인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생각하면 전쟁도 사라지지 않을까?
<반포보은>
까마귀를 이처럼 가깝게 본 적이 있었나. 불과 몇 미터 앞 전깃줄에 까마귀가 날아앉아 까~악 까~악 울어대다 날아간다. 이어 다른 까마귀가 근처 밭에서 날아와 전깃줄에 앉지만 조용하다. 가만히 보니 입에 뭔가를 물고 있다. 먹이다. 필시 이 까마귀는 늙은 제 어미 봉양하려는 것일 게다. 미물인 까마귀도 늙은 제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데, 소위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님께 무심했던 게 후회되었다. 어머니께는 잘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잘해드리는 게 뭐 특별한가.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 나누며 밥이라도 같이 먹는 게 다일 것이다. 병약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결핵이 의심되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루 격리병동에 계셨다. 어머니만 홀로 둘 수 없어서 나도 마스크를 쓰고 같이 지냈다. 회색빛 도시의 창밖으로 먼동이 밝아왔다. 다행히 결핵은 아니지만 독한 약을 먹어야 했다. 가끔 어머니 사시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버지 살아생전 어머니와 같이 가셨던 식당에 들러 냉면을 사드렸다. 병원에 다녀온 날 내 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마당에서 어머니가 “우리 둘째 아들 안아보자”라며 조막만 해진 당신의 몸으로 나를 안아 주셨다. 그게 이승에서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7개월 7일 만에 당신 남편 곁으로 가셨다. 제대로 모시지도 못했는데 나는 저 까마귀보다 못하다.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다고 스스로 위안했으나 핑계에 불과했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작년과 재작년 도보여행 전에는 실전 연습차 26km 거리에 있는 부모님 묘소에 걸어갔었다. 이번에는 차일피일 미루다 가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내 마음에서 벌써 멀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가 찾아주니 기쁘지 않은가>
광운중학교, 신일고등학교 동창인 신연식 씨가 운두령 코앞까지 찾아왔다. 친구가 홀로 걷는다니 위문차 먼길을 마다치 않고 밥 사주러 찾아온 것이다. 중견 건설업체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친구는 동홍천 현장에 출장 왔다가 1시간이나 차를 달려왔다. 고교 동기회 산악회장도 역임한 친구는 산악 전문가이고 체력도 남다르다. 기회가 되면 야영 장비 짊어지고 국토를 종횡으로 걷고 싶단다. 한옥을 점방으로 개조한 민박 겸 식당에서 먹은 토종닭 백숙은 내일 이번 여정의 최대 난코스인 운두령 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걸으며 먹으라고 빵과 건강 크런치바까지 사 왔다. 친구의 배려에 당분간 풍성한 점심이 될 것이다. 홀로 걸으며 고독을 즐기는 나도 친구가 찾아온다고 하니 낮부터 친구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친구가 돌아가고 민박집 방에 홀로 앉아 나를 돌아보았다. 나라면 내 돈 들여 친구 밥 사주러 이 먼길을 달려왔을까. 스스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베풀기보다는 받기에 익숙하지 않았나 싶다.
4월 중순인데 오늘도 세찬 바람에 손이 시려 장갑을 끼고 걸었다. 바람이 세면 체력 소모가 크다. 내일 1,100m 운두령을 넘어야 하므로 오늘은 체력 비축을 위해 적게 걸었다. 내일 홍천 내면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