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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9m 운두령을 넘다 - 40화

평창 운두령

by 조성현

1089m 운두령을 넘다 / 평창 운두령


14일 차(4월 19일)

용평면 노동삼거리~31번 국도~운두령~조항천길~홍천 내면 18km / 누적 317km


1,089m 운두령 길은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넘을 수 있는 고개 중 여섯 번째로 높다. 이번 도보여행의 최대 난코스라서 도보여행 처음부터 약간의 긴장감을 가졌다. 그러나 막상 코앞에 다가오니 오기가 발동했다. 출발하며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속도도 늦추지 않았다. 뱀이 똬리 틀 듯 휘어지고 굽이치는 급경사 오르막 연속이다. 위를 쳐다봤다. 도로가 좌우로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오르다가 해발 800m 표지판을 보며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출발할 때는 바람이 불어 추웠지만, 해발 800m 표지판을 보며 외투를 벗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 연신 닦아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얼마 후 해발 900m에 이어 1000m 표지판이 보였다. 오르는 도중 아래를 보았다. 까마득하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쉬지 않았다. 하늘을 보았다. 맑은 하늘에 뜬 구름이 산 능선에 걸려 있다. 한 구비를 돌아드니 저 앞에 정상 표지판이 우뚝 서 있다. “여기는 운두령 정상입니다. 해발 1089m 국토교통부 강원국토관리사무소장” 5km를 쉼 없이 걸어 정상에 올랐다.


정상의 전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계령이나 옛 미시령까지는 아니어도 정상에서 보는 경관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인증 사진만으로 만족했다. 운두령 길은 지나는 차량이 드물다. 운두령 정상은 계방산 등산 들머리다. 한계령을 넘으며 보았던 장엄한 기암괴석은 없어도 한적한 분위기와 산과 나무, 파아란 하늘,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이 조화를 이룬다. 내리막도 급경사에 구불구불하기는 매한가지다. 오를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내려갈 때는 무릎에 통증이 심하여 속도를 늦췄다. 정상 속도를 내면 무릎이란 놈은 당장 고문받는다고 아우성치며 협조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릎을 펴서 걷지 못하고 엉거주춤 구부리고 걸었다.


해발 800m쯤 너른 밭에서 구부정한 노인이 홀로 일하신다.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을 밭으로 일군 것이다. 오륙백 평은 족히 넘을 밭에 로터리치고 이랑에는 검은 비닐을 씌워 놓았다. 강원도 심산유곡 고지대에 무엇을 심고 기를까. 심어 놓은 들 멧돼지 같은 야생 동물에게 헌납하는 건 아닐까. 혹한에도 밭을 일구어 사는 분들이 지닌 삶의 애착을 나는 따라가지 못한다. 조금 아래에는 아담한 개량주택이 산허리 품에 안겨있다. 집 앞에는 ‘마지막 집’이라는 앙증맞은 팻말이 보인다. 운두령 도로 오르막 마지막 집인 것이다. 이 집주인 농부는 북풍한설에도 이 높은 곳에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살고 있다.

여느 작은 면 단위와 마찬가지로 이곳 홍천 내면 숙박업소도 허름했지만, 운두령을 넘은 피로감에 더없이 편안했다. 오늘은 운두령 넘는 것을 감안하여 짧게 18km만 걸었다. 이제 도보여행도 종반에 접어들어 총 470km 중 150km 정도 남았다. 방심은 금물이다. 내일은 홍천을 떠나 인제군 상남면 땅에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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