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 대한 고찰
평범함에 대해 생각한다.
최근 우리 팀에서 경력 직원을 뽑기 위해 면접을 진행했었다. 총 75개의 지원서가 들어왔고, 9명이 면접을 본다고 했다. A파트와 B파트에서 1명씩 직원을 뽑는데 A파트는 증권사 경력이 없는 지원서는 모두 떨어트렸다고 했다. B파트는 업무 특성상 증권사 경력을 가진 직원이 많이 없어서(인력이 귀중하다.) 최대한 자산운용사 경력이 있는 지원서들을 골랐다고 하셨다. 그렇게 75명 중 9명의 면접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팀장님께 들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자리가 뭐길래였다. 이 자리가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단호하게 66명의 지원자를 탈락시킨 것일까.
비어있는 퍼즐판에 최대한 꼭 맞는 퍼즐을 찾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비슷하지 않은 퍼즐 66조각은 단숨에 제외됐다. 새삼 현실은 이렇듯 가까이서 보면 냉혹한 비극인 것이다.
A파트에 뽑힐 사람은 얼추 정해진 것 같은데 (증권사 경력 위주로 봤으니 명확하게 정해졌을 것이다.) B파트가 고민이신 것 같았다. 팀장님께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딱히 없다며 관상이라도 봐야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러다 어제 오후 일하고 있는 내게 @@자산운용 김 씨가 너랑 비슷한 업무를 했다고 하는데 혹시 아냐고 물어보셨다. 신기하게도 김 씨는 나와 6개월 간 매일 같이 업무를 한 사람이었다. 순식간에 내가 김 씨를 판단해야 할 자리에 서게 됐다. 내가 뭐라고.
너무 좋게 말하면 나한테 피해가 올 수도 있어서 객관적으로 말씀드렸다. 6개월 간 일을 못한다고 생각이 든 적이 없었고, 실수를 한 적도 없었다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에 팀장님은 활짝 웃으셨다. 그래서 당연히 김 씨가 뽑히겠구나 짐작하고 있었는데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면접에서 김 씨의 말이 느려서 빠릿빠릿하지 않을 것 같아 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말이 느려도 취업시장에서는 큰 단점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면접은 지원자를 알 수 없다. 지원자의 진면목을, 지원자의 장점을, 숨겨진 보물 같은 장기를, 성격을 절대로 알 수 없다. 다들 평범한 회사원에 부합한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가장한다. 자신이 가진 평범한 회사원의 장점만을 부각하기 위해 열심히 뽐낸다. 퍼즐 위에 그려진 그림은 최대한 감춘 채 퍼즐의 모양이 알맞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한 면접에서 면접관은 면접자의 실제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면접자는 미처 숨기지 못한 평범함에서 벗어난 단점으로 자신의 합격의 당락이 결정된다. (실제로 우리 팀에는 면접만 잘 본 '빌런'이 입사한 적 있다.)
평범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평범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회사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그 회사 속에서 나만의 특별함을 부끄러운 치부처럼 꼭꼭 숨긴 채 평범함으로 가장한 나를 떠올렸다. 경영학과에서 문예창작학과로 편입한 나에게 '그래서 너는 뭘 하는데?' 내지는 '그거 해서 뭐하게?'라는 시선을 암암리에 던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가 속한 공동체란 어쩔 수 없이 이런 곳이다.
채식주의자에서 남편은 영혜를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낸다는 평가를 내린다. 남편의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나 밥과 국, 생선 한 토막을 차리는 등 끼니때마다 식사를 준비하고, 가계를 책임질 것은 기대도 하지 않으니 아르바이트 등으로 가계에 보탬이 되면 된다. 그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내의 모습이다. 뛰어나거나 색다르지 않고 보통인 아내다. 그러한 영혜는 평범한 아내라는 지위를 얻음으로써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이 된다.
다시 한번 평범함에 대해 생각한다. 평범한 회사의 평범한 회사원들, 그리고 그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평범함으로 자신을 가장하는 지원자들. 조금이라도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면 단숨에 단점이 생겨버리게 되는 현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 평범한 척 일하며 나만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나.
평범한 것이 사실은 제일 어렵고 힘든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평범하고 싶지가 않다. 어느새 8년 차. 나만의 색채를 잃어버릴 뻔도 하였다. 경제적인 안정은 나의 특별함을 굳이 발굴시키려 하지 않으니까. 그 평범한 평안함과 안락함에 묻혀버리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 평범함에 대한 요구는 나에겐 세뇌와도 같이 느껴졌다. 왜 나는 평범하게 일하며,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커다란 질문이 내 머릿속에 던져졌다.
평범함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