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삶의 모습에서 이탈하고 싶어졌다.
아껴 길러오던 치렁치렁한 머리를 잘랐다.
아껴 길렀던 이유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리기도 했고, 주위에서 머리를 꼭 기르라며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매일 긴 머리에 예쁘게 웨이브를 넣어 다녔다. 그래서 웨이브 머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살짝 다듬기만 해야 했다. 근데 어제는 그냥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싶었다.
머리를 댕강 자르고 나니 머리가 가벼웠다. 잘려 새로워진 머리는 바람에도 쉽사리 촤르르 흩어 퍼졌다. 민들레 홀씨와 같은 아기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신생의 가벼움이다. 기교나 교태가 섞이지 않은, 얼룩지고 상하지 않은 원초의 것이었다.
머리가 짧아지고 나니 평소에 넣던 웨이브가 넣어지지 않았다. 별수 없이 손으로 죽죽 머리를 빗어 내렸다. 손아귀에 걸리는 것 없이 머리카락이 빠져나갔다. 머리는 어깨 밑에서 사방으로 뻗쳤다. 곡선으로 유연하게 뻗어나가지 않고 삐죽거리고 뭉툭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짜리 몽땅한 머리로 출근길에 올랐다. 여의도 부근에 오자 검은색 뒤통수들은 세련된 웨이브를 제각각 달고 있었다. 그들과 나는 웨이브 머리로 구별되었다. 느껴지는 거리감은 소외감이 아니었다. 다만 이상야릇한 자유의 감정이었다.
뒷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홀가분함이,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빗나간 거리감이 어떤 신호로 다가왔다.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비켜나갈, 사회적 통념 또는 기준의 울타리를 뛰어넘어갈 신호다.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과 꾸준히 공들여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모두가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일면에 항상 자리 잡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을 제멋대로 해도 될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서도 아이를 낳아야만 할 것 같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으면서도 회사에서 오래도록 버텼고, 남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그려나가기 위해 노력했고, 나 자신을 세상의 기준대로 꾸며나갔다.
나는 겁쟁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애썼던 것이다. 머리카락 하나마저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머리를 고수했던 것이다. 실은 정말 귀찮으면서, 무거우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남들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이 잘린 머리카락의 홀가분함은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삶의 맛보기이자 도화선이 될 것이었다. 아직도 사실은 많이 두렵지만 이 두려움을 서서히 떨쳐나가고 싶다. 나의 인생에 용기를 가져보고 싶다.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나면 그래도 너무 짧게 자르면 안 될 것 같아 조금 남겨놓은 머리까지 다 잘라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올 때까지 남들과 달라지는 것에, 이상적인 삶에서 이탈하는 것에 두려움을 떨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