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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횡단 철도 여행 -최남단역, 니시오야마역

JR 최남단역을 가다.

by 늘 담담하게


2005년 8월, JR홋카이도를 이용한 여행이 나의 일본 철도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일본 각지의 철도 노선을 이용해서 여행을 했다.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규슈까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든 철도 노선들과 역시 이름을 다 언급하기 힘든 열차들을 탔으며, 수많은 역들을 지나치거나, 내려서 여행했다.


그 많은 여행들 중에서, 일본 JR의 끝부분에 있는 역들을 간 것은 사실 처음부터 그곳을 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홋카이도를 주로 여행할 때, JR의 최북단역과 최동단역이 JR 홋카이도관내에 있었기에 가보게 된 것일 뿐 처음부터 그곳들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왓카나이는 일본 최북단의 소야미사키와 리시리와 레분섬을 여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곳이고, 히가시 네무로는 일본 최동단 네무로반도 여행을 위해서 가는 여행에서 잠시 들렀을 뿐이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끝지점을 찾아가는 것을 남자들의 전형적인 치기 혹은 정복욕 비슷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런 끝 지점을 가는 것은 그것보다는, 내가 살던 곳에서 가장 멀리 간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일본 JR의 끝부분의 역들은 일단 최북단역이 JR 왓카나이역, 최동단역은 JR네무로역, 최서단역은 JR사세보역이고 최남단역이 바로 이 규슈 횡단 여행에서 찾아갔던 JR니시오야마역西大山駅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JR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JR이 아닌 일반 사철 철도까지 포함하면 최서단과 최남단은 달라진다. 변경된 기준으로 따지면 최서단역은 사세보역이 아니라 그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마츠우라 철도의 타비라히라도 구치역 たびら平戸口駅((본토기준), 오키나와를 포함하면 나하공항역那覇空港駅이다. 최남단역은 JR기준으로 하면 니시오야마역이지만, 오키나와까지 포함하면 아카미네역이 赤嶺駅된다.



자, 어찌 되었건 이부스키에서 열차를 타고 니시오야마역으로 갔다. 흔들거리는 보통열차, 주변의 풍경은 넓은 밭뿐이다.


image.JPEG?type=w966 니시오야마역에 도착한 열차

드디어 도착한 니시오오야마역, 나를 비롯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 황량한 역에 내렸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일본 최남단역이라는 것 때문에 잠시 더 정차해서 탑승객들이 사진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가고시마주오역에서 56.7KM 지점에 있는 니시오야마역은 북위 31도 11 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0 년 개업한 이래 오랫동안 일본 최남단의 역이었지만, 2003년의 오키나와 도시모노레일선의 개업에 따라 아카미네역 (북위 26도 11 분 36초)에게 일본 최남단역의 자리를 넘겨줬다. 그때 일본 최남단의 역이라는 표지판을 본토 최남단의 역이라고 고쳤지만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가 아니냐는 오키나와 측의 항의에 따라 2004년에 표기를 JR 일본 최남단의 역으로 바꿨다. 하지만 현존하는 일반철도(일반 레일을 이용하는 철도) 역으로는 종래대로 일본 최남단역이다. 승강장에서 바라보는 가이몬다케의 모습이 묘하게 이 무인역과 잘 어울렸다.

JR本土最南端の駅「西大山」.jpeg

여기에서 사진에 보이는 가이몬다케開聞岳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자. 가이몬다케는 일본 가고시마현 사츠마반도 남단 (이부스키시 소속)에 위치한 해발 924m의 화산이다. 1964년 3월 16일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일본백명산, 신 일본백명산, 규슈백명산으로 선정되어 있다. 산기슭의 북동쪽 절반은 육지로, 남서쪽 절반은 바다를 향하고 있어 원뿔형 모양 때문에 사쓰마후지(薩摩富士さつまふじ)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開聞岳 空撮.jpeg 공중에서 본 가이몬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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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오야마 부근의 건널목은 역시 일본 최남단의 철도 건널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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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의 각 끝단 지점의 역들을 표기한 지도, 사세보역佐世保駅, 왓카나이역稚内駅, 히가시 네무로역東根室駅이 보인다.(이 사진을 촬영한 시점에서는 최동단역이 히가시네무로역이었다. 하지만 2025년 3월 15일 폐지됨에 따라 최동단역은 네무로역이 되었다)


왓카나이역과 사세보역은 그나마 도시역이고, 히가시네무로역은 주택가 속에 있지만 니시오야마역은 그야말로 시골의 벌판에 있는 외로운 역이다.


image.JPEG?type=w966 니시오야마역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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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이렇게 밭과 몇몇 공장들만 보였다. 니시오야마역 바로 앞에 있는 농산물 판매장이다. 이곳에서 인증서를 판매하고 있다.

西大山駅 (4).jpeg


역 부근은 이렇게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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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고 싶었으나 이래저래 가지 못했던 니시오야마역, 이 역에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이곳이 워낙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규슈의 남쪽 가고시마현까지 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더더구나 이 역으로 가는 열차 편이 워낙 드문드문 있기 때문에 가고시마에서 하룻밤을 자지 않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마음에 품으면 이미 절반은 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 믿음이 나를 저 역으로 이끌어 갔다. 처음 이곳으로의 여행계획을 세운 지, 7년이 지난 뒤였지만 결국 나는 니시오야마역에 도착했다.

西大山駅 (3).jpeg

어떤 이는 말한다. 끝단역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런 말은 철도마니아들에게 매우 모욕적인 발언이겠지만 나는 앞서 말했듯이 내가 사는 이곳에서 더 먼 그 어느 곳까지 떠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안정지향적이고 좀처럼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삶의 답답함에서 떠나서, 그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나는 잠시나마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西大山駅 (1).jpeg

니시오야마역에서 많은 시간을 머물 수는 없었다. 13시 37분에 이 역에 내린 나는 다시 14시 18분에 가고시마주 오역으로 가는 보통열차를 타야만 했다. 이 열차를 놓치면 16시 56분까지 꼼짝없이 이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이 역을 언제 다시 올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가야 할 무수한 철도 노선들이 있고 그 노선들위에는 더 많은 역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역들을 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이 외진 역에 다시 오기란 쉽지 않다.

西大山駅 (5).jpeg

때문에 이 역에서 머무는 그 짧은 시간이 내 삶에 있어서는 정말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니시오야마역에서 머문 그 짧은 순간들은 여행의 추억 속에 남겠지만 기억이란 점차 희미해지는 것이고 사진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안타까운 시간들이 지나고 저 멀리서 보통열차가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담담하게 열차에 올랐다. 그리고 돌아보며 니시오야마역을 향해 마음으로 속삭였다. 사요나라, 니시오야마...


나를 태운 열차는 니시오야마역을 떠나서, 가고시마주오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쉬움과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와서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는 것이 느꼈다. 그런데 열차가 가고시마주오역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바다 위로 떠오른 무지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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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 위의 무지개였고 나는 그 광경에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찍었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 희미하게 남겨져 있는 무지개의 흔적.. 허탈함 속에 빠져들었던 나를 웃게 만들어준 무지개였다. 혼자만의 여행인지라, 누구와 이 무지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무지개를 보았노라고 전했다.



저 바다 위의 무지개.



그 무지개는 쓸쓸한 내 삶과 여행에 있어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한...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무지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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