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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횡단 철도 여행-A 트레인으로 떠나는 미스미여행

작은 항구, 미스미

by 늘 담담하게

여행 4일째 규슈 철도 여행의 정점을 찍는 날이 밝았다. 이 날의 여행 계획은 관광열차로 운행되는 특급 A- 열차로 구마모토의 서쪽 항구인 미스미三角를 다녀오는 것과, 역시 관광 특급열차인 아소보이를 타는 것, 그리고 미나미아소철도를 타는 것 이렇게 3가지였다. 

A_%EC%97%B4%EC%B0%A8.jpg?type=w1 JR규슈의 특급열차 A 열차로 가자.

*특급 열차 A열차로 가자(A列車で行こう)와 미스미선三角線은?


JR규슈의 홈페이지에 보면 특급열차 A열차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16세기 아마쿠사 지방에 전해진 유럽문화를 테마로 디자인된 관광열차입니다. 차분한 색조의 원목과 스테인드글라스로 곳곳에 화려하게 수놓은 객실공간은 품격 있는 여행을 연출합니다. 열차 안에는 재즈음악이 더해져 한층 더 분위기에 젖어듭니다. "



유럽문화를 테마로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열차에 대한 사전 공부를 통해 열차의 모습들은 확인하고 갔지만 실제 탑승하고 나서의 느낌은 어떤 것일지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자, 일단 이 열차가 운행하는 노선을 설명한 다음 A-트레인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 열차가 운행하는 미스미 선(三角線)은 구마모토현 우토시의 우토역으로부터 구마모토현 우키시의 미스미역사이의 지방 노선이다. 미스미 선 개업은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슈 철도가 구마모토 방면과 아마쿠사제도, 시마바라반도와 연락하기 위해 미스미항까지 선로를 깔아 놓은 것인데 처음에 우토 반도의 남쪽을 통해서 미스미항까지 노선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어민들의 반대로 북쪽을 지나는 노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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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도를 보면 앞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마모토에서 우토역을 지나 우토반도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 미스미선三角線은 미스미항三角港 까지 이어지고, 여기에서 선박으로 아마쿠사제도天草諸島와 나가사키현 시마바라반도(미스미-시마바라 노선은 2006년에 폐지됨)와 연결했던 것이다. 영업거리 25.6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의 이 노선은 2011년 9월에 공모에 의해서 아마쿠사미나미선 あまくさみすみ線이라는 애칭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노선을 운행하는 관광 특급 A열차는 어떤 열차일까? 일본 철도 덕후 수준에 못 미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일본 철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 자신도 이 열차를 실제로 탑승했을 때, 그 화려함과 깜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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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8일에 등장한 이 열차는 미스미역에서 가장 가까운 미스미항에서 아마쿠사제도의 혼도항을 잇는 정기 여객선항로( 아마쿠사 타카라지마 라인(天草宝島ライン)과 연결되어 있다. 이 열차의 운행과 함께 미스미역의 리뉴얼도 이루어졌다. 열차 이름의 " A "는" 남만 문화가 전래된 아마쿠사를 모티브로 유럽을 이미지화한 성인의 여행을 뜻한 성인 ( A dult)와 아마쿠사 ( A makusa )의 머리글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남만문화(南蠻文化, 난반 분카)는 도쿠가와막부가 쇄국 조치를 취하기 이전인 센고쿠 시대(전국시대) 말기와 에도 시대 초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일본에서 꽃핀 문화를 말한다. 남만(南蠻)은 원래 중국에서 '남쪽에 사는 오랑캐'를 부르던 용어였지만 일본에서 남만인(南蠻人)은 스페인, 포르투갈 출신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대항해 시대에 교역이 많았던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은 동남아시아를 거쳐 일본에 도착했다.


1549년 가고시마에 도착해 일본에서 포교를 개시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를 비롯해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계속 일본 땅에 들어왔다. 에도 시대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신부 가스파르드 빌렐라(Gaspard Vilela, 1525년 ~ 1572년)가 집단세례를 통해 '잠복(潛伏) 크리스천'의 기초를 마련했고, 루이스 프로이스는 일본포교사를 편년체로 정리했으며, 알렉산드로 발리냐노는 일본에 인쇄술을 전해주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포르투갈어로 '신부'라는 뜻을 가진 '파드르'(padre)라는 단어를 그대로 옮겨 '바테렌'(バテレン)이라고 불렸다. 이들 선교사들에 의해 활판인쇄술이 전파되고 로마자에 의한 기독교 문학, 종교, 서적의 번역 및 일본어 사전의 간행 등이 이루어졌다. 이 출판물들을 이른바 '기리시탄판'(キリシタン版)이라고 하는데, '기리시탄'은 포르투갈어 '크리스탕'(cristão)에서 온 외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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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차의 외관이다. 검은색과 금색으로 치장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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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차의 차내 좌석. 좌석의 문양 또한 어찌나 곱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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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차의 A-트레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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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에 이렇게 화려한 공간을 만들다니 솔직히 부러웠다. 이 바에서는 아마쿠사의 소금을 사용한, 「A열차로 가자」 한정 판매의 「카카오 연구소 소금 초콜릿」이나 5종의 감귤 스트레이트 과즙을 독자적인 제법으로 블렌드 한 「통째로 꽉 젤리」, 미네랄 풍부한 아마쿠사의 소금을 사용한 아이스크림 「소금 바닐라」 등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열쇠고리와 스트랩, 차량 내 재즈를 수록한 CD, 클리어 파일, 수건 등의 오리지널 상품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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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이나 소파, 벤치 좌석 모켓(보풀이 있는 직물의 한 가지, 벨벳과 비슷하며 의자 커버등에 주로 쓰임)은 남만 문화를 주제로 한 열차에 어울리는 무늬 모양이 채택되었다. 바 카운터 근처에는 햇빛을 받고 내부를 아름답게 칠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16세기 대항해 시대 한가운데의 남만 문화를 묘사한 마리아 상의 장식물 등 그 시절의 아마쿠사에 타임 슬립 한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사실 A 트레인 열차에서 표현되는 남만 문화는 상당히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이지만, 그 이후의 진행은 잔인한 종교탄압의 역사가 이어졌기에 무조건 좋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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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차의 외관이다. 내가 탄 열차는 바로 이 2호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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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 안에는 운행하는 동안 재즈 음악이 내내 흐르는데, 'Take the A Train'이라는 곡이다. 원곡을 한번 들어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cb2w2m1Jm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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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 Ellington, "Take the A Train"

This is a segment from the film Reveille with Beverly from 1943; the song was composed in 1939.


www.youtube.com


1941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할렘을 거쳐 맨해튼을 향하던 '뉴욕시 지하철 A선'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음악인데 이 원곡을 무카이야 미노루가 편곡했다. (열차 안에서 듣는 재즈라니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런 모습의 열차이기 때문에 열차는 대부분 만석으로 운행하게 되는데, 이 열차를 탔던 날도 좌석은 만석이었다. 승객들은 주로 중장년층이었다. 이 열차는 우토반도의 북쪽을 따라 40분쯤 달려가는데 일본에서 아름다운 모래갯벌로 알려진 오코시키御輿来 해안을 통과하게 된다. 그 오코시키 해안선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일단 정말 아름답다.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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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치장된 열차, 푸른 하늘, 부드러운 재즈음악, 그리고 아름다운 해안선, A- 트레인으로 떠나는 여행은 정말 낭만적인 여행이었다. 혼자였어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열차 여행을 거듭하게 되면 점차 외로움에 깊게 빠져들게 되는데 이 여행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기하고, 감탄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내게 따뜻한 위안을 준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40분 정도의 열차여행이 끝나면 종착역인 미스미역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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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역은 1899년 12월 25일에 처음 개업한 역으로 현재의 역사는 A-트레인의 운행과 함께 전면 리뉴얼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교회의 느낌이 전해지는 역이었다. 미스미역은 우토반도의 끝부분에 있는 미스미항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미스미선이 건설되었을 때, 그 종점역으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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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A-트레인이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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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역은 바다가 보이는 역들 중의 하나로, 역사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기 전, 바다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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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역의 내부



원래의 미스미항은 우토반도 북쪽에 있었지만 항구 주변의 땅이 좁았기 때문에 미스미역은 우토반도의 남쪽에 건설되었다. 또한 건설 예정지가 매립지였기에 잠정적으로 1899 년 12 월 25 일에 개업했다가 , 1903 년 9월 5일에 원래의 예정지였던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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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이전에는 역사 앞에 이렇게 바다를 보는 전망대가 있었다. 리뉴얼공사와 함께 이 전망대는 철거되었다.



당초 이 날의 여행계획은 A트레인으로 미스미역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아소보이를 타기로 되어 있었는데 열차 내에서 인터넷검색을 하다가 미스미서항三角西港을 여행했던 이의 여행기를 보고 급히 여행계획을 수정했다. 여행 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미스미서항. 뒤늦게 그 여행지를 발견하고 계획을 바꿨던 것이다. 나는 미스미역에 내리자마자 건너편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찾아가서 미스미서항三角西港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여행변경이었다.


미스미서항三角西港은 미스미역에서 버스로 약 15분이면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의 종점이 미스미서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있기 때문에 찾아가기는 쉽다. 다만 예정에 없었던 여행인지라, 미스미역에서 미스미서항에 대한 안내 자료를 챙겨갔다. 여행 중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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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항은 서항과 동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중 1884년에 서항의 정비가 시작되어 1887년에 개항했다. 현대 항만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에 해당되는데, 이 미스미서항 건설에는 국비가 투자되어 미야기현의 노비루축항野蒜築港, 후쿠이현의 미쿠니항三国港 과 함께 메이지시대의 3대 축항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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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서항의 전체적인 모습)

1880년에 구마모토현은 츠보이가와 (坪井川 )하구의 햐칸코항 百貫港을 후보지로 하고, 내무부에 무역항의 건설을 신청했다. 당시 구마모토현은 제대로 된 항구가 없었기 때문에 항구의 건설이 절실했다. 이듬해 구마모토에 파견된 네덜란드출신의 토목기사 안토니 토마스 루베르투스 로벤호르스트 뮐더(Anthonie Thomas Lubertus Rouwenhorst Mulder)와 현령 토미오카 케이메이( 富岡 敬明 1822-1909)의 조사 결과 우토반도의 끝이 더 자연입지가 뛰어난 항구라고 보고 그의 설계 지도하에 1884년부터 3 년의 세월을 걸쳐 축항공사를 진행했다. 그는 도시 전체에 해수를 도입하고 벽돌수로를 설치했다. (당시 현지에서 이를 수도水道 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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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더의 사진 1841-1901 메이지 정부의 초청으로 일본에 와서 항만의 건축, 설계등에 관여했다. 1890년에 귀국하여, 결혼을 했고 1901년 네이메헨에서 사망했다.)


뮐더는 수로를 위해 마을을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북쪽 지역부터 서항 1구, 2구, 3구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벽돌수로는 완성된 후 바닷물이 모든 수로까지 닿지 않고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공사는 모두 석재로 진행되었다.(이 공사에는 아마쿠사의 숙련된 석공들이 동원되었다, 공식기록에 의하면 연인원 13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서항은 부두 및 폐수 하천, 교량등이 건설되었으며 해안에는 해운 창고가 늘어섰고 그 뒤에 여관등의 서양식 건물들이 건설되어 번영을 이루었다. 쇼와시대 초기까지 서항에는 법원, 상선학교, 수산시험장 경찰서장 관사, 해안보안청 선박 정박 시설등이 들어섰다. 이후 미스미서항은 쌀, 보리, 유황, 석탄의 수출항으로 성장해 갔다. 쇼와시대 초기부터 중기에 걸쳐 상선학교에서 법원에 이르는 거리는 커다란 벚꽃 나무들이 심어져 훌륭한 경관을 자랑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그 모습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서항이 들어선 후 번영을 이루었지만 항구 주변으로 산이 있어 부지확장에 어려워 곧 동항이 정비되었고 1899년에 개통된 규슈 철도의 미스미선이 동항으로 이어져버린 뒤로는 서항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물류 및 사람들은 동항으로 이동해 갔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이 미스미서항의 쇠퇴이유는 당시 부두 접안 시설이 파도와 태풍 등에 자주 손상이 되었고 항만의 해류가 의외로 빨라 무역선들이 접안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산이 가로막혀서 애초에는 미스미선이 미스미서항까지 연결할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은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 동항에 주요 항구의 기능이 옮겨가 버린 뒤 서항은 벽돌부두(756m 길이)와 수로, 교량등 당시의 시설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 유일의 항만사적으로 높게 평가되었다. 1987년에 항만 정비사업의 지정을 받아 흩어져 있던 민가들도 구획정리로 옮겨졌다. 2002년에 국가의 중요 문화재의 지정을 받았고 2009년에 규슈 야마구치 근대화산업유산군의 하나로서 세계 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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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오카 케이메이의 사진, 미스미축항 공사 기간 중에는 매일 현장을 나와 공사를 독려했다고 한다.)


자, 이제 미스미서항의 항만 지역을 여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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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 있는 이 건물은 1887년에 구 미스미 해운 창고旧三角海運倉庫이다. 2층에서 하역창고로 사용되었는데 1988년에 복구해서 1999년 이후로는 오란다관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미스미축항 기념관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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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쪽은 이렇게 베란다가 설치되어 바다를 보고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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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N6768.JPG?type=w1 예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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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풍으로 지어진 뮐더 하우스 ムルドルハウス. 전통 공예품과 해산물 등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뮐더는 미스미항을 설계한 네덜란드 사람이다. 바로 이 건물 앞이 미스미역과 연결하는 버스의 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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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이름은 우라시마야浦島屋


메이지 중반에 존재하고 있던 여관으로 1893년 7월 22일에 고이즈미 야쿠모 (라후카디오 칸)이 나가사키에서 돌아가던 중 이곳에서 머물고 "여름날의 꿈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1905년에 해체되어 중국의 대련으로 이전했으나 항만 환경 정비 사업으로 1993년에 원래의 설계도에 따라 복원되었다. 1층은 케이크와 커피등을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미스미서항 축항 당시의 자료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축항 당시의 자료와 고이즈미 야쿠모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행사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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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이름은 류조관龍驤館이다.


1918년 메이지 천황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우도군 교육위원회가 송덕기념관으로 세운 목조 단층집 구조의 양풍 건물이다. 현재는 이벤트와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원래 이 자리가 우라시마야의 집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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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 서항의 옛 모습의 조감도와 역사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성기의 미스미 서항에는 이렇게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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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조관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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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쪽에 있는 이 건물은 구 다카다카이소우텐旧高田回漕店


1887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여객 및 화물 운송 중개를 한 운송선 도매상으로 수레와 증기선 4척을 가지고 있었다. 축항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항만 시설로서 1999년에 복구되었다. 1층은 해운업 사무실, 2층은 여관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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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건물은 미스미항을 굽어보는 언덕에 있는 건물로서 호우노야카타(법의 관 法の館)이라는 곳이다. 글자 그대로 구 미스미서항의 간이 재판소 건물인데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뛰어 올라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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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개청 할 당시에는 미스미서항의 가운데인 나카마치에 있었다가 192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신축되었다. 1992 년까지 현역 간이 재판소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우키시 국제 교류 마을, 호우노 야카타로 이용되고 있다. 2007 년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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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당시 법정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다이쇼 시대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이곳에서는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과 최후의 전설 편을 촬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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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지어진 재판소의 기록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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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를 지나 언덕 위에 재판소가 자리 잡고 있어서, 뛰어 올라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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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남아 있는 석축 수로의 모습이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느라 땀으로 옷은 젖어들었다. 다시 항구 쪽으로 나와서 미스미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예전의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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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8월 15일 개항식에 촬영된 사진이다. 공사 주요 관계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번째 열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토미오카 케이메이 구마모토현령, 그 옆이 뮐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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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뮐더, 그리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토미오카 케이메이이다. 가운데에 있는 인물은 당시 구마모토현 서기관이었던 야마시타 히데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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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오카 케이메이의 송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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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착수 시점에서 산을 깎아내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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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사의 진행을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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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완료될 무렵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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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기의 미스미서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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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돌아본 미스미 서항의 간략한 지도이다. 10번 건물인 규슈해기학원九州海技学院은 시간상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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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이 바로 그 규슈 해기학원의 모습이다. 원래 구 우노 군 청사였다.



1880년대에 건설된 미스미서항 그리고 그 시대의 건물들을 가본 느낌은 오랜 역사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도 일제 강점하에 지어진 건물들이 여러 도시에 남아 있긴 하지만, 치욕의 역사 때문인지, 많이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미스미서항이 건설되기 시작한 1884년 무렵은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시기로서 당시 조선은 근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격심한 혼란을 겪고 있던 시작되는 시점이기에 일본의 이런 역사를 보면 마음 한편으로는 쓰라리기만 했다. 미스미서항으로의 여행은 과거 시대로 타임 슬립한 것 같았다. 버스 시간 때문에 좀 더 많이 돌아보지 못했지만 다시 미스미를 간다면 그때에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정도는 할수 있을 것 같다. 미스미 여행은 자동차보다는 A-트레인열차를 이용해서 가는 것이 훨씬 더 여행의 추억이 많이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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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서항에서 돌아와 구마모토로 돌아가기 전에 들러봐야 할 곳이 있었다. 미스미항의 페리터미널인 바다의 피라미드三角港フェリーターミナル(海の ピラミッ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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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항 페리터미널은 내외의 이중 나선 슬로프의 바닥판에 의해 연속적으로 보강된 콘크리트 외각 구조로 직경 34m, 높이 25m의 원추형이다. 원뿔 꼭대기의 탑 라이트는 자연광을 도입하고 야간은 반대로 발광하여 콘크리트 프레임을 비추고 있다. 1990년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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