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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 백화점의 시작, 미츠코시

미츠코시 긴자

by 늘 담담하게


긴자의 가장 핵심 지역인 긴자 4초메에 와코와 함께 서 있는 미츠코시 백화점은 8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상호인 미츠코시三越는 미츠이 가문三井家의 미츠이三井와 창업 시의 에치고야越後屋에서 따온 것으로, 1904년에 「합명회사 미츠이 포목점」에서 주식회사 미츠코시 포목점으로 개칭했을 때부터의 것이다. 1935년에 준공한 니혼바시 미쓰코시 본점은 일본 백화점의 시작으로 여겨지며 현재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280px-Mitsukoshi_Nihonbashi_main_store_5.jpg?type=w1 미츠코시 니혼바시 본점 본관

미츠코시의 시작은 16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급속한 팽창기에 들어섰던 에도에서 두드러진 상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세(미에현), 오미(시가현), 교토 방면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우수한 품질의 구다리모노의 생산지와 집산지에 본점과 매입처를 두고 에도에 지점을 두어 소위 천한의 쵸닌으로 성장했다. (나이토 아키라 저, 에도의 도쿄)


그 상인들 중에 미츠이 타카토시(三井 高利 1622-1694)는 마츠자카에서 금융업과 쌀매매로 큰돈을 벌었는데 그가 1673년에 혼초 1초메에 에치고야越後屋 라는 포목점을 연 것이 미츠코시의 백화점의 시작이다. 10년 후에 스루가다이초 본점을 옮긴 동시에 환전상을 운영했다.


1687년에는 막부의 포목 어용상인이 되었고 1691년에는 어용금은환전상이 되었다. 에누리 없는 정찰제 현금 판매라는 새로운 상술로 1730년대에는 교토에 7개, 에도에 5개, 오사카에 2개, 마츠자카에 1개 등 모두 15개의 영업소를 가진 거상이 되었다.


에치고야는 지금은 당연시되는 정찰제를 세계 최초로 실현해, 당시 부유층만의 것이었던 포목의 옷을, 널리 일반 시민의 것으로 만들었다.



*미츠이 타카토시三井 高利 1622-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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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토시는 이세국 마츠자카(현 미에현 마츠사카시)에서 미츠이 타카토시(高俊표기는 다르지만 읽기는 「타카토시」로 같다)의 넷째 아들로서 태어났다. 에도에서 쿠기누키 미츠이 가문을 창업한 맏형 미츠이 타카츠구(사부로자에몬)에게 점원으로 일하며 지배인이 되었다.


훗날 그의 상업적인 능력을 두려워한 형들이 (고향에서 어머니를 돌봐달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붙여) 사실상 추방해, 고향 마츠자카에서 금융업을 한다.


1673년, 맏형 타카츠구가 죽자,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에도 혼마치 1가에 포목점을 개업해, 가게 이름을 에치고야越後屋(후의 미츠코시)라고 했다. 그때까지의 포목점은, 대금은 후일의 외상값 지불로 하고, 정가가 없어 손님과의 흥정으로 판매가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매매 단위는 1단 단위가 당연시되었고. (약 11m), 단골처에서 견본을 보여 파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던 것을, 현금 외상값 없이(현금 지불로의 정가 판매), 필요분 만큼 포목을 잘라 팔아, 점앞(선반 앞) 판매(가게에서,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했다. 이러한 방법은 포목업계에서는 참신하여 고객에게 현금지불을 요구하는 한편 양질의 상품을 필요한 만큼 저렴하게 판매했다.


가게를 스루가 초로 이전한 후에 환전상(미츠이 환전점·현재의 미츠이 스미토모 은행의 원류)도 개업한다. 타카토시는 환전소를 활용한 환율에서도 재능을 발휘해 막부의 어용환율을 맡았다.


800px-Echigo-Ya_Signboard.jpg?type=w1 에치고야의 복원된 간판

본격적인 미츠코시 백화점은 1904년에 시작되었고 니혼바시 본점은 1914년에 건축되었다. 당시 니혼바시 본점에는 일본 최초의 에스컬레이터 와 엘리베이터, 스프링클러, 전관 난방 등의 최신 설비가 갖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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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EB%85%84_%EA%B8%B4%EC%9E%90_%EB%AF%B8%EC%B8%A0%EC%BD%94%EC%8B%9C.jpg?type=w1 1933년 긴자 와코와 미츠코시 긴자점

긴자 미츠코시의 시작은 193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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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코시 긴자점의 지하 1층 ‘코스메 월드’는 긴자에서 가장 많은 브랜드 수를 보유하고 있는 화장품 매장이다. 백화점 전체는 지하 3층, 지상 1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패션이나 액세서리, 시계, 생활용품, 잡화, 식품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11층과 12층에는 정통 레스토랑에서부터 캐주얼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9층에는 테라스 가든이 있어 도심에 있으면서도 자연과 함께 편안한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 긴자와 니혼바시에 있는 미츠코시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한 것은 영화 암살(전지현의 위장결혼식을 시작으로 한 총격전의 현장)에 등장했던 미츠코시의 경성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미츠코시의 경성점은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이다. 그 외 이상의 소설 날개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백화점 옥상에 올랐으며, 옛 동양방송의 개국이 이 건물에서 이뤄졌다.


1024px-Mitsukoshi_Department_Store%2C_Keij%C5%8D.jpg?type=w1 미츠코시 경성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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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AF%B8%EC%B8%A0%EC%BD%94%EC%8B%9C.jpg?type=w1 미츠코시 경성점과 경성우편국(경성 우편국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철거했다.)

미츠코시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6년이었다. 1908년에 인근에 있는 미츠이 물산터를 인수하여 건물을 병합했다. 1916년에 3층 200평의 건물을 증설하였고 점원도 50명으로 증원하여 백화점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1928년(일본 측 기록)에 미츠코시 경성점으로 승격되었다. 1930년에 철근 콘크리트 4층 건물로 개축하였고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때 경성의 5대 백화점은 경성 미츠코시, 조지아, 히라다, 미나카이, 화신이다. 1941년에는 미츠코시의 백화점 중 도쿄와 오사카에 이어 매출액이 세 번째였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경성 미츠코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다. 나중에 동화백화점이 되어 해방 이후 미군정에 귀속되었다가 1958년 조선방직에 불하되었고, 1962년 동방생명을 거쳐 1963년 7월 삼성그룹으로 넘어갔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2007년에 리뉴얼공사를 했지만 외관은 해방이전 미츠코시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1904년 일본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설립했던 미쓰코시가 1929년 9월 충무로의 3층 목조건물에서 있던 미쓰코시백화점 출장소를 지점으로 승격시킨 후 1930년 10월 24일 지금의 신세계백화점(본점) 자리에 경성 미쓰코시백화점이 준공시킨 것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등장한 백화점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쓰코시백화점의 체계화된 영업 및 관리조직이다. 이는 근대적 백화점의 대표적 특징으로 후일 동아백화점, 화신백화점 등 민족자본으로 형성된 백화점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병도 외(2006), <한국 백화점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p.48,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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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여기서 신세계 백화점의 개점일에 대한 논쟁이 있다. 신세계 측에서 공식 발표한 개점일은 1930년 10월 20일인데 이는 미츠코시 경성점의 개점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신세계 본점 본관 건물은 미츠코시 경성점으로 건립된 건물이지만 미츠코시는 1945년에 폐점했고, 그 뒤로 미군 PX 등으로 쓰이다가 삼성이 동방생명과 함께 딸려온 이 백화점을 인수해 신세계백화점으로 재개장한 건 이미 서술한 대로 1963년이다. 그런데 지금의 신세계백화점과 관련이 없는 데다가 일본 자본으로 세워진 미츠코시 백화점을 신세계의 스타트로 보는 건 조금 문제가 있다. 어찌 되었건 국가기록원은 지금도 미츠코시 백화점의 바로 그 자리에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위치해 있고, 이것이 신세계백화점의 모태가 된 건 사실이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백화점으로 보고 있다.


또한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기록에 반대하는 의견들도 있다. 1926년 조선에서 제일 먼저 쓴 경성 히라타 백화점이 최초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곳은 훗날 불타서 없어지고 재건축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고려대 연각타워자리이다. 이는 미츠코시 경성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바로 옆이다. 그리고 히라타 백화점 이전에도 1920년에 건립된 조지야백화점丁子屋百貨店이 있었는데, 이것은 미도파 백화점을 거쳐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가 되었다. 한편 유통업계에선 대한민국 최초의 백화점으로 1932년 순수 조선인 자본으로 세운 화신 백화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지아백화점.jpg 조지야 백화점

조지야 백화점은 미에현 쓰시에서 1867년부터 양품점을 운영하고 있던 2대째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가 러일전쟁을 계기로 부산의 대상인의 한 사람인 오이케추스케( 大池 忠助 1856-1930) 소유의 건물을 빌려 1904년 4월 부산 벤텐쵸에 양복점 조지야「丁子屋」를 개업, 10월에는 한성(훗날의 경성)에도 개점했다.

미쓰코시보다 5년 늦게 1921년, 주식회사 조지야 백화점이 되어, 경성부 메이지정(현재의 명동)에 본점을 두었다. 1929년 본점을 증축하여 총 2200평의 백화점이 되었다.


1933년 12월 17일 경성일보는 보너스 경기의 백화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미츠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타 등 4대 백화점의 12월 1일부터 15일까지 매출이 지난해의 515%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조지야는 손님의 60%가 조선인이었고 일본인은 40%였다고 한다.


이번 편에서는 도쿄 긴자의 미츠코시 백화점 이야기와 함께 경성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음에도 도쿄의 역사와 풍물,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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