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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철도 여행-도난이사리비 철도와 노선

by 늘 담담하게

앞편에서 폐지된 에사시 선 이야기를 했다. 이번 편에서는 에사시선을 이은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 道南いさりび鉄道線)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난 이사리비 철도

2016년 3월 26일 홋카이도 신칸센의 개업과 함께, JR 홋카이도에서 경영 분리되어 병행재래선으로 전환된 에사시선의 운영을 담당하는 철도회사이다. 2005년 홋카이도 도난 지역 병행재래선 대책 협의회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을 대비해서 여러 차례 끝에 2012년에 도난 지역(키코나이 ~ 고료카쿠) 제3 섹터 철도 개업 준비위원회 개정해서 병행재래선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확정하여 2014년에 회사를 설립한다. 회사 이름인 '도난 이사리비' 중 도난(道南)은 홋카이도 남부를 의미하고, 이사리비(漁り火)는 어화를 의미한다. 홋카이도에 있어서의 제3 섹터 철도의 운행은, 홋카이도 치호쿠 고원 철도 고향 은하선이 2006년 4월에 폐지된 이래 10년 만, 홋카이도 치호쿠 고원 철도가 2008년에 해산한 이후, 홋카이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제3섹터 철도 사업자가 되었다.


*제3섹터

제3 섹터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적자노선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반관반민의 형태의 회사


*이사리비

고기잡이에서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비추는 불빛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하코다테 인근 해역에서 오징어 낚시 어선이 조업할 때 켜는 등불을 말한다.

하코다테 해안에서 보이는 오징어 낚시 어선들의 어화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道南いさりび鉄道線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은 일본 홋카이도 가미이소군 기코나이정에 있는 기코나이역과 하코다테시에 있는 고료카쿠역을 잇는 도난 이사리비 철도의 철도 노선이다. 2016년 3월 25일까지는 노선 이름이 에사시 선( 江差線 )이었으며, 2014년 5월 12일에는 기코나이~에사시 구간이 폐지되었다. 노선 길이는 37.8km, 13개의 역과 1개의 신호장이 있다.

도난 이사리비 철도노선도

에사시 선이라고 불릴 당시, 전 구간이 1988년 3월 13일 이후 카이쿄 선과 함께 홋카이도와 혼슈를 잇는 쓰가루 해협선에 포함되었으나, 2016년 3월 26일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 이후 에사시 선이 제3섹터 도남 이사리비 철도로 이관되고, 카이쿄 선 구간에서 재래선 여객 열차가 사실상 소멸하게 되었다. 따라서 쓰가루 해협선이라는 명칭이 폐지되었다.

에사시 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당시에는 고료카쿠역이 기점이었으나, 2016년 3월 26일 도남 이사리비 철도에게 이관되면서 그 반대로 기코나이역을 기점으로 하게 되었다.


*도난 이사리비 철도 노선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 구간은 홋카이도 신칸센 신아오모리역 ~ 신하코다테호쿠토역 간 병행재래선으로 지정되어, JR 홋카이도에서 에사시선을 경영분리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된 열차 운행계통이다. 2016년 3월 26일부터 제3섹터 운영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며, 하코다테 권역의 수송을 담당 중이다. JR 홋카이도 시대 때 에사시선은 지방교통선이며, 지방교통선이 병행재래선 지정에 따른 제3섹터 운영방식으로 전환되는 최초의 케이스였다.


최대한 정리해서 서술했지만 여전히 철도 여행기를 처음 읽은 이들에게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에서 신칸센, 우리나라로 치면 ktx 노선이 신설되면 생기는 문제가 기존 노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알고 있다시피 신칸센은 주요 도시에만 정차하게 되는데, 기존에 운행하던 노선은 재래선이라 부르게 되고 이 노선의 경쟁력(수익성)은 떨어지게 된다. 본토에서 연결되는 홋카이도 신칸센이 완공되자, 기존노선 즉 에사시선은 신칸센 노선과 함께 운영되는 병행 재래선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노선을 운영하는 JR홋카이도에서는 수익성이 뚝 떨어질 노선들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어 했고 그때 나온 해결 방안이 바로 제3섹터 운영방식이다. 해당 노선의 적자를 그 지역 기업이나 지자체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큰 노선 폐지는 하지 않고, 새로운 철도 회사가 운영하는 방식이 바로 그 해결방안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정기 여객열차는 키코나이역에서 운행을 종료하며, 츠가루 해협선에 직통하는 정기여객열차는 운행되지 않는다. 또한 고료가쿠에서 하코다테까지 하코다테 본선에 직통운행한다.


제3섹터 전환 이후에는 JR 화물이 2종 사업자가 되며, 전구간과 세이칸 터널을 통하여 혼슈-홋카이도 화물수송을 담당 중이다. 특히 JR 화물이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 이용 명목으로 지불하는 선로사용료는 도난 이사리비 철도 수입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회사 존속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선 여객 운임으로는 전혀 수익성이 없다)


*노선의 풍경

제일 먼저 고료가쿠 역五稜郭駅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고료카쿠역

1911년에 개업한 역으로 개업한 지 100년이 넘었다. 2011년 개업 100주년을 기념하여 리뉴얼했다. 그 이전에는 1977년에 개축한 역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2011년 리뉴얼 이전의 고료가쿠역

다음 역은 나나에하마 역七重浜駅이다. 1926년에 개업했다. 홋카이도 호쿠토시에 있다. 호쿠토시, 하코다테시에 인접한 행정구역인 나나에초(七飯町), 해당 행정구역에 위치한 나나에역(七飯駅)과 어원이 같다. 아이누어 누안나이(nuannay)'에서 유래했으며, 뜻은 풍부한 작고 좁은 강이다. 구별을 위해 한자를 다르게 쓰고 '하마(浜)'를 붙였다. 역 주변에는 도립 하코다테 수산고등학교, 나나에하마 우편국, 에사시신용금고, 미치호쿠 은행, 츠가루 해협 터널 공사를 하게 만든 도야마루 침몰사고 위령비 등이 있다.


*도야마루 침몰사고

도야마루는 일본에서 운행한 기차 수송 연락선이며 이름은 홋카이도에 있는 도야 호수에서 따 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이칸 연락선이 모두 미군의 폭격으로 침몰되거나 항행불능이 되어 여러 척의 연락선을 전후에 새로 건조하였는데 도야마루도 그중 한 척이었다. 4천 톤급 선박으로 1947년에 만들어져서 아오모리에서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를 연결하는 여러 페리들 중 하나였다.

1954년 9월 26일 그날도 도야마루는 아오모리에서 승객들과 철도차량 몇 량을 실어서 쓰가루해협을 건너 하코다테에 도착했다. (그 시절에는 아오모리까지 운행한 열차를 연락선에 싣고 츠가루 해협을 건넌 뒤, 하코다테에서 다시 그 기차를 운행했다) 문제는 그날 태풍이 쓰가루 해협을 지난다는 예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후 3시경 도야마루는 이 날 운휴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예보대로 비가 퍼붓고 파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오후 5시 비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도 잦아들었다. 이는 이날 오후에 하코다테가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상 예보와도 딱 맞아떨어졌다.


도야마루 호의 콘도 선장은 지금 도야마루 호는 태풍의 눈 안에 있고 당시 기상대 예보대로 오후 6시 30분에는 태풍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당시 하코다테는 태풍의 눈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본디 홋카이도에 형성된 폐색전선이 태풍에 휘감아 내려오면서 생긴 음영지대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당신만 해도 인공위성이 없었고 통신 사정도 좋지 않아서 태풍의 눈을 정확히 확인하기 힘들었다.


승무원들은 결국 출항을 결정했지만 이미 이때부터 불길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풍이 다시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다시 하코다테 앞바다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그만큼 바람과 파도가 강해졌지만 도야마루는 개의치 않고 태풍이 물러갔다는 기상예보만 믿고 출항했다.


오후 6시 39분 도야마루는 승객과 승무원 1,309명을 태우고 하코다테 항을 떠나서 아오모리로 항행하기 시작했지만 기상상태가 너무 악화되자 오후 7시 1분 하코다테 외항에 잠깐 정박하여 바다 상태를 보기로 결정하고 닻을 내린다.


하지만 태풍의 눈을 벗어난 뒤 다시 폭풍우 속으로 들아간 도야마루는 미칠 듯이 빨라져 있던 유속으로 인해 닻이 고정되지 않았다. 뒤이어 파도가 배를 강타했고, 갑판이 낮은 페리의 특성상 바닷물이 그대로 갑판을 넘어서 증기 추진이던 엔진실까지 물이 들어갔다. 결국 동력을 잃게 된 도야마루는 3시간 넘게 하코다테 항 일대를 표류했다. 그 와중에 선장은 하코다테 인근 나나에 해변으로 피항하려고 했지만 엔진이 꺼졌기 때문에 소용없었다.


결국 22시 26분 도야마루는 SOS를 쳤지만 너무 늦었고 단 17분 후인 22시 43분 침몰하고 말았다.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309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150명이었고 무려 1,15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들 중에는 선거 유세를 위해 자신의 선거구로 갔던 유력 정치인을 비롯해서 홋카이도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도 소수 있었다고 한다.

도야마루호 희생자 위령비

이 사고의 여파는 당시 일본을 뒤흔들 정도로 컸다. 새로운 배를 건조하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대타로 세이칸 항로에 투입된 연락선은 부관연락선으로 투입되었던 케이후쿠마루(景福丸/경복환였다. 케이후쿠마루는 1960년대까지 세이칸 항로에 투입되었고 퇴역 후에는 하코다테에서 선상호텔로 재활용되다가 해체되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세이칸 터널의 굴착이 결정되었고 1988년에 완성되어서 더 이상 유사한 사고가 벌어질 일은 없게 되었다.


다음 역은 히가시쿠네베츠역東久根別駅이다.

1986년 일본국유철도의 히가시쿠네베쓰 임시 승강장으로 개업했다. 역사는 와프 29500형 화차를 개조한 것이다.


히가시쿠네베츠역 다음 역은 쿠네베츠역久根別駅이다.

1913년 9월 일본 국유철도 가미이소경편선의 역으로 개업했다. 2025년 현재 일본 최북단 사철역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역명이자 지명인 쿠네베츠는 아이누어로 '검은 강'을 뜻하는 '쿤네 펫'을 일본어로 음차 한 것이다.


다음 역은 키요카와구치역清川口駅이다.

1956년 10월 에사시선의 역으로 개업했다. 부역명은 '호쿠토시청・카나데루 앞(北斗市役所・かなで〜る前)'. 이관 이전까지는 JR 홋카이도 에사시 선 소속이었으며, JR 하코다테 개발이 역무를 담당하는 간이위탁역이었다. 역 건물은 2018년에 도난 이사리비 철도에서 운영하는 나가마레호의 디자인으로 리뉴얼했다.

나가레마해협호

도난 이사리비 철도에서는 나가레마 해협호를 '지역 정보 발신 열차'라고 호칭하고, 정기적으로 관광 열차 '나가마레 해협호 ながまれ海峡号'로 운행하고 있다. 나가마레ながまれ는 도난 지역의 방언으로 「천천히」를 의미하고 있으며, 해협은 동남쪽 방향 차창에서 보이는 츠가루 해협을 가리킨다. 내장은 크로스 시트의 상부에 헤드레스트를 마련하고, 크로스 시트 사이에 도난삼나무를 사용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정기열차 외에 일본여행이 기획·상품조성·서비스 제공의 모든 것을 다루는 예약식 관광단체열차로도 한 달에 1-2회 운행되고 있으며 관광단체열차의 경우 하코다테역-기코나이역 사이를 왕복 4시간 정도로 평소의 2배의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달린다. 차내에서는 연선의 제휴 레스토랑에서 조리된 식사가 제공되기도 한다. '나가레마호' 이외를 포함한 기하 40형 9량의 개조에 소요된 총경비는 약 3500만 엔으로, 관광열차는 기존 차량으로부터의 개조로도 억 엔 단위가 드는 경우가 많은 가운데, '나가레마호'는 저렴한 개조비나 연선의 협력에 의한 연출로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관광열차'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다음 역은 가미이소역上磯駅이다.


1913년 9월에 개업했다. 역명이자 지명인 가미이소는 아이누어의 「카마·이소 カマ・イソ」(파도를 뒤집어쓰는 바위)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설과 홋카이도에서는 일찍이 서쪽을 위上라고 부르고, 현지가 하코다테시에서 보아 서쪽(=위上)의 해안(==磯이소)인 것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설이 있다.


다음 역은 모헤지역茂辺地駅이다.


1930년 10월에 개업했다. 역명이자 지명인 '모헤지'는 아이누어로 '고요한 강'을 뜻하는 '모 페치'를 일본어로 음차 한 것이다.


그다음 역은 오시마도베츠역渡島当別駅이다.

1930년 10월에 개업한 역이다. 부역명은 '트라피스트수도원 입구(トラピスト修道院入口)'이다. 또한 역사는 오시마도베츠 우편국과 공용하고 있다. 역명이자 지명인 '도베츠'는 아이누어로 '늪의 강'을 뜻하는 '토우 펫'을 일본어로 음차한 것이다. 역 주변에는 도베츠 보육원, 이시베츠 소학교, 마루야마 신사(丸山神社), 가톨릭 트라피스트회 수도원 등이 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다. 오시마도베츠역에 내린 뒤, 2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사실 이곳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고, 사전에 견학 신청을 한다 해도 남자만 가능한 곳인데 드문 드문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간다. 무엇 때문에 그곳을 가는 걸까?



일반적으로 트라피스트 수도원이라고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등대의 성모 트라피스트 대 수도원'灯台の聖母トラピスト大修道院이다.


이 수도원은 역사는 18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코다테 교구장 A. 베를리오즈 주교가 트라피스토회 총장에게 일본에 창립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 시초이다. 신도들에 의해 하코다테시 교외, 도베츠 벌판이 기증되어 1896년 10월 말,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캐나다에서 총 9명의 수도사들이 모여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1일 성모 봉헌 공휴일에 베를리오즈 주교의 주례로 수도원 개원식이 열리면서 교회법적으로 정식 창립되었다. 새 수도원의 명칭은 부근에 갓토시 등대가 있었기에 등대의 성모 수도원이라고 불렀다.


1908년 도베츠 소교구가 창설되었다. 처음에는 도베츠수도원에 병설되어 있던 트라피스트 학원(고아원)의 성당이 사용되었으나 푸예(귀화하여 오카다 후리에라고 자칭함)에 의해 본원 문 앞에 성당이 세워져 1917년 카시아의 성녀 리타에게 바쳐졌다. 1935년 총회에서 등대 성모 수도원은 대수도원으로 승격된다.


설립 초기부터 개간 농경 목축등 기도와 노동을 중요한 수단으로 신과 사람들에게 봉사하던 이 수도원에게 고난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도원 부지가 하코다테 요새로 편입되면서 그림엽서에 대한 검열과 경찰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이 수도원의 젊은 수도사 14명이 차례로 징병되었고 그중 4명이 전사했다. 뿐만 아니라 1945년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날 때까지 경찰의 집요한 탄압이 이어졌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수도원이기에 주변의 풍경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벚꽃 피는 봄, 수도원을 찾아가면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양쪽으로 포플러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의 이름은 로마로 가는 길이다.







이 길에서 생각하게 된다. 내 신앙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 믿음은 어떤 것일까?


이 수도원의 가을풍경도 아름답다.

트라피스트 수도원 겨울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을 보면 왜 수도원에 가는지에 대해 여러 글이 나온다.


*누구든, 그 사람의 종교나 국적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나’ 여기에 와서 묵을 수 있다고 아까 부원장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의미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의미를 잃어버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냥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도하지 않을래?’하는 듯한 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종소리에 이끌려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내 상처에 소독약이 발라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수도원을 들어가도, 밖으로 나와 보면 어느 틈엔가 제가 변해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수도원을 향하는 발길 자체에 은총이 내재된 것을 체험했다고 할까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 나는 성당을 찾아갔다. 신은 여러모로 상처가 받았던 나는 그 뒤 스테파노라는 영세명을 받았다. 나는 국내든 해외든 간에 그 지역 성당이 있으면 찾아가 묵상과 기도를 한다. 시간적인 여유만 있었다면 내부로 들어갔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쉽다.

오시마도베츠역 다음은 카마야역釜谷駅이다.

1930년 10월에 개업했다. 역사는 와무 8000계 화차(ワム80000形貨車)를 개조해서 쓰고 있다. 역명이자 지명인 '카마야'는 아이누어로 '평평한 바위가 있는 강'을 뜻하는 '카마야 펫'의 일부를 일본어로 음차 한 것이다.

카마야역 다음 역은 이즈미사와역泉沢駅이다. 바다가 보이는 역이다.

1930년 10월에 국유철도 가미이소선의 역으로 개업한 이즈미사와역은 1949년에 국유철도로 이관되었다. 역명은 과거 이곳에 깨끗한 샘이 솟아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4월 하순경, 하코다테역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정도를 가면 쓰가루 해협을 볼 수 있는 이즈미사와역에 도착하게 된다. 이 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플랫폼 전체를 물들이는 수선화들이다. 도난 이사리비 철도의 전신인 에사시 선 시대 역장이 가꾸어 왔다는 수선화들은 2016년 역장이 퇴직을 한 뒤에도 계속 관리되어 왔다.


역에서 해안까지는 150m 정도. 그 사이에 국도 228호선이 지나고, 밭이나 주택 외에 편의점이 있다. 저 바다 건너 보이는 육지는 혼슈(本州)가 아니라 홋카이도 마쓰마에(松前) 반도의 끝이다.

그다음 역은 사츠카리역札苅駅이다.

1930년 10월에 개업했다. 역명은 아이누어로 「바위의·앞(=岩の・手前)」를 나타내는 「시라츠카르(sirar-tukar)」에서 유래한다고 여겨진다. 이 밖에, 「시라츠토카리シラツトカリ」(암초의 북방)에서 유래한다고 한 설도 있다.


사츠카리역 다음 역이 기코나이역으로 사실상 도난 이사리비철도선의 여행은 끝이 난다. 일본 철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런 지방 철도선을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모든 역에 정차하는 보통열차가 운행을 하고 있고, 하나하나 역에 내려 살펴보고 떠나는 것도 시간상 쉽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운행 편수가 적기 때문에 어떨 때는 전체 노선을 여행하는 것이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시골 철도 노선을 따라가는 여행은 그 나름의 재미도 있고, 감성도 있다. 에사시선이 사라진 뒤 그 뒤를 이은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 13개의 역밖에 없지만 벚꽃이 피는 봄날 혹은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에 이런 시골의 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항상 그립기만 하다.


자, 지금까지 폐선이 된, 마츠마에선, 에사시선, 그리고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운행했던 츠가루 해협선과 그 해협선을 운행했던 열차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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