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에서 보낸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던 벚꽃들이 바람에 흩날려 가고 있는데 당신은 잘 지내고 있나요?
어제는 이곳에 비가 내렸어요. 평소보다 제법 많은 비가 내렸는데 여행자로 이곳에 왔다면 비 때문에 여행을 망쳤다고 하겠지만 오랫동안 머무는 나로서는 비가 내린 뒤의 쓸쓸한 하코다테의 거리 풍경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비가 와서인지 관광객들이 일찍 사라졌고 그 거리를 우산을 쓰고 걸었어요. 관광객들이 사라지고 난 뒤의 항구의 베이에리어 지역은 적막함만 남아 있었어요. 그래도 붉은 벽돌 건물과 가로등불들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그 거리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비 내린 후의 차가운 공기 속에 스쳐 지나가는 당신의 얼굴.. 그냥 정처 없이 걸었어요. 늘 그렇듯이 내 발걸음은 모토마치 언덕 위로 향했고, 언덕 위의 거리도 조용하기만 했어요.
구 잉글랜드 영사관옆을 지나 모토마치의 언덕으로 올라섰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어요.
그리고 내 발걸음이 항상 멈추는 곳은 하치만자카 언덕. 비가 내린 뒤의 그 언덕에서 보는 풍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비로 젖은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불, 멀리 항구는 안개로 인해 흐릿하게 보이고...
언젠가 당신이 그랬어요. 사진이란 건 그것을 찍는 사람의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카메라로 찍든, 스마트폰으로 찍든 간에...
그렇다면 내 사진들은 어떤가요?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들, 벚꽃이 핀 모토마치, 겨울 하치만자카, 눈이 내리던 지난겨울 풍경들, 거기에는 내 쓸쓸함이... 아니 내 그리움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떤가요?
있잖아요, 난 비가 내리는 거리, 언덕, 그리고 눈이 오는 교회와 하치만자카의 언덕에서 내가 보았던 그 쓸쓸한 풍경들 속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내 마음이, 내 그리움이 그 거리에서 당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내 마음이 당신에게 전해지고 있는 건가요? 돌이켜보니 이곳에 온 것이 늦여름이었고,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고 있네요.
낯선 곳에서 세 개의 계절을 보내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아요.
눈부신 가을 단풍이 찾아오고, 다시 첫눈이 내리고, 늘 걷는 거리에서 변해가는 풍경들을 보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몰라요.
털모자와 장갑, 두꺼운 외투를 입고 겨울눈을 맞이했고....
한 겨울 12월, 하치만자카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보았으며..
다시 벚꽃이 피는 모토마치의 성 요한 성당에서 봄 풍경을 보았어요.
이제 이곳의 거리는 푸른빛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늘 계절의 순환이 그렇듯이 이곳에도 짧은 여름이 찾아올 것 같은데, 여름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날 것 같아요.
늘 찾아가는 저 성당과 교회에서 당신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나로 인해 힘들어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나는 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다시 또 편지 보낼게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