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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랑이야기

결혼과 커피 맛의 관계

by 늘 담담하게

그와 그녀도, 여느 부부와 같이 가끔씩은 의견대립이 있고, 사소한 것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해서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고성이 오가거나,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나면 숨을 크게 들여 쉬고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한 단계 낮아진 어투로 말을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일단 두 사람 모두 잠시 서로 피해 있다가, 다시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 있기에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해결되곤 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마음속에 앙금이 깊게 남아, 일체의 대화가 없는 살얼음판이 진행되곤 합니다.

불안한 침묵이지요.


그렇게 하루나 길면 몇 일간의 냉전상태가 지속될 때에도 그와 그녀는 자기의 할 일은 다 했습니다. 그는 항상 먼저 일어나서, 집안정리를 하고, 그와 그녀가 출근을 하기 전에 먹어야 할 것들을 미리 챙겨두었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분리수거를 하거나, 이틀에 한 번씩, 화장실 청소를 했으며,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도 주었습니다.

휴전 중이라고 해도, 불안한 평화체제라고 해도, 일상의 삶은 돌아가야 하니까요. 말을 안 하더라도..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식탁 위에 메모를 남겨 놓기도 합니다. 그녀보다 퇴근이 빠른 그가 퇴근하면서 사 와야 할 보급품 목록입니다. 거기에다가 아파트 상가의 세탁소에 들러서 찾아와야 할 옷도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가 성실하게,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하던...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끝낸 그녀가 뭔가를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물을 끓입니다. 잠시 후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데 그녀가 꺼낸 것은 커피원두였습니다.


그는 흘깃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3분... 그녀가 원두커피를 갈고... 커피가루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붓고..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을 붓고..

그렇게 커피 한잔을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입니다.

3분 후에 그 과정이 모두 끝나버리면... 그는 한숨을 내뱉고... 그 후 다시 똑같은 과정이 이어지면.. 그는 슬그머니 긴장이 풀어집니다. 왜냐하면... 커피는 그녀가 이제 그만 화해하자는 의사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냉전을 그만 끝내자라고 하면,,, 그에게 커피를 조용히 내밀고.. 만일 여전히 그녀의 화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면 야박하기는 하지만 커피 한잔만 뽑아 들고 휑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보니... 화해의 분위기로 갈 모양입니다. 잠시 후 그녀가 다가오더니.. 그에게 향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내밀었습니다. 그게 제일 좋아하는 에티오피아모카원두에서 뽑아낸 커피였습니다.


커피의 여왕이라는 불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가진 커피입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원두는 케냐 AA인데... 그에게 커피를 건네고.. 자신도 커피잔을 들고서.. 그녀는 옆에 앉았습니다. 그녀의 손에도 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안경을 쓴... 그녀의 모습... 그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인데... 그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미소 지었습니다.... 문득 언젠가 그녀가 커피에 관해서..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핸드 드립 커피는 말이야.... 같은 것은 없어.... 물을 붓는 굵기... 물의 양과 온도... 시간...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나오거든.. 같은 커피원두를 쓰는데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맛이 달라져... 조금만 실수해도.. 금방 맛의 차이가 생기거든... 그래서 그런 말이 있어.. 핸드드립 커피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면서도... 가장 맛없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것도.. 결혼생활이라는 것도... 커피를 내리는 것과 비슷한 거 같아. 제 아무리 좋은 원두를 가져와도...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때그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맛없는 커피가 나오고 마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것도...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잖아..."

그녀가... 정성을 들여.. 만들어준 커피... 한 잔... 오늘밤은 유난히 맛있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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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