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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의 성, 구마모토성(5)

구마모토성을 돌아보다(1)

by 늘 담담하게


이제 구마모토성을 본격적으로 여행할 차례이다. 구마모토성 부근 전차 정류장에서 내리면 왼편으로 웅장한 구마모토성이 보인다. 해자를 건너는 우마야바시 다리를 건너가면 보이는 것이 긴 성벽이다. 그 옆에 흐르는 강이 츠보이가와강坪井川이다.


이 성벽을 長塀 (나가베이)이라 부르는데, 전체 길이가 242m로서 일본에서 가장 긴 성벽이다. 동쪽의 平御櫓(히라온 야구라)와 馬具櫓(마구야구라)를 연결하고 있다. 나가베이는 구마모토성의 남쪽 방어선 역할을 했다.


DSCN6097.JPG?type=w1 구마모토성의 외곽

성벽 오른쪽 위에 솟아 있는 부분이 히라온 야구라이다. (일본의 성에 이해하기 위해서 야구라를 이해해야 한다, 끝부분에 설명)

de33ec56-d390-4f1a-8cdb-44557b9f44be_l.jpg 구마모토성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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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사진에서 보면 별로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다음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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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성벽 아래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놓고 보면 높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성벽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인해 동쪽 80m 정도가 무너졌다가 2021년에 복구 완료되었다.


그러면 이 성벽을 안쪽에서 보면 어떤 풍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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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전체 그림 지도에서 보면 바로 이 부분이다. 성의 안쪽으로 가면 넓은 잔디밭이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것이 히고육화( 肥後六花)를 모아놓은 히고육화원이다. (히고肥後는 옛 지방 이름으로 지금의 구마모토현 지역이다)


히고의 여섯 가지의 꽃은 히고동백, 히고꽃창포, 히고 나팔꽃, 히고 작약, 히고 국화, 히고 산다화(동백의 일종)이다. 구마모토번 8대 영주 호소카와 시게가타때부터 길러져 온 것이라고 한다.(히고육화원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에 의해 영향을 받아 2025년 현재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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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고육화원을 둘러본 다음 내게 보이는 것은 은행나무였다. 이미 구마모토성이 은행성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지만 노오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늦가을의 풍경은 잠시 마음의 여유를 안겨주었다. (규슈는 한반도 보다 남쪽에 있어 계절이 조금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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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당일부터 한국은 매서운 겨울이 시작되었고, 몸의 상태도 최악이었는데, 이 풍경들이 잠시 그런 고통들을 잊게 해 줬다고 할 수 있다. 잠시 휴식을 가진 뒤 나는 구마모토 성의 혼마루를 향해 출발했다. 이제 본격적인 구마모토성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map.png 전체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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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마루飯田丸의 성루와 석단, 사진의 오른쪽 성벽 사이로 들어가면 혼마루의 천수각을 향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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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874년경에 찍은 것으로 이 사진과 바로 위의 사진을 보면 예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이다마루(飯田丸)는 구마모토성 혼마루의 남쪽을 방위하기 위한 중요한 장소로써 히라야구라(平櫓)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구루와(曲輪) 내부에는 우물이 있는 부엌, 무기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망루가 이다마루 고카이야구라 이다.


*구루와는 ?


구루와( 曲輪 くるわ)는 일본의 성곽 내외의 토지를 석벽이나 해자 등을 이용하여 일정 구획으로 나눈 구역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에도 시대 이후에는 마루(丸)라고 불린다. 구루와는 방어진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성의 일부 시설을 위한 영역, 병사의 주둔시설이 배치되었으며, 일본식 성곽의 가장 중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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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 혼마루의 구루와(曲輪)는 작은 성처럼 독립된 구조이다. 이런 이다마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다마루의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이다마루 고카이야구라(飯田丸五階櫓)이다. 2005년에 목조로 복원되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에서는 석축 일부가 붕괴되었지만 우석(隅石귓돌. 돌 축대(軸臺)의 귀퉁이에 쌓는 돌)으로 망루를 지탱하던 것에서「기적의 석축」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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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카이야구라터, 구마모토성의 남서쪽은 원래 높은 절벽이었기 때문에 가토 기요마사는 이쪽에 석벽을 쌓아 방어를 강화했다. 복잡한 미로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올라가면 보이는 것이 이다마루고카이 야구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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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마루 고카이야구라. 구마모토성의 남서쪽으로 적이 공격해 올 때, 관측소이자 지휘소가 되는 망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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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성을 완성할 때에는 대소 천수각을 비롯하여, 성루 49곳, 성루문이 18곳, 성문이 29곳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5층 성루는 축성 당시에만 6동이 건축되었다. 이 이다마루성루는 당시 이다가쿠베에가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다마루라고 불렸다. 세이난 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앞서 설명한 대로 2005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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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랐고 마침내 천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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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올라보게 된 소천수각과 대천수각, 숱한 일본 성을 여행했지만 천수각 앞에 섰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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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는 이 천수각을 세운뒤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유재란 말기 울산성에서의 생과사를 오갔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을까? 당시 이곳으로 끌려와 성의 건축을 도왔던 조선인들은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야구라

Osaka_Castle_rampart_in_1865.jpg 1865년 오사카성의 야구라 사진

일본 중세 성에서는 담장 안쪽에 목재를 엮어 방패판을 세운 노(야구라 櫓)가 등장해 공격을 위한 다카노(高櫓)와 적을 감시 하기 위한 위한 세이로(井樓)로 불리는 간이건물을 지어 방어하고 있었다. 또한 상시 화살을 비롯한 무기와와 생활 도구 등도 보관하는 창고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그래서 '야구라'라는 말은 '야구라(矢蔵 화살창고) 혹은 '야구라矢倉'라고도 불렀다. 전국시대 말기부터 에도시대까지는, 총 등의 총기의 도입으로 전투 전술의 변화에 의해 보다 튼튼한 건물이 설치되었다. 그 모양도 다양하게 변화해 의장에는 사찰 건축의 요소도 도입되어 파풍(일본 건축의 박공)이나 외벽 마감으로 장식하여 영주나 성주의 권위를 과시하는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다.


일본의 성에서 야구라의 기원에 대해 3가지 설이 있다.

1. 간단히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건물에서 발전했다는 설이다.

2. 야구라 矢蔵로 불리는 화살 창고와 같기 때문에 무기고에서 발전했다는 설이 있다.

3. 활을 쏘는 장소가 원형이라는 설이다.


초기의 야구라는《후삼년합전회사(後三年合戦絵詞)》와《일편상인회전(一遍上人絵伝)》등 중세의 두루마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농성전에서 방어와 감시를 위해 설치된 가설 건축물로서의 요소가 강했지만, 전국 시대 말기에 오면, 야구라는 토대 위에 반듯이 세워 방화공격이나 조총의 방탄을 고려해 석회와 지붕에 기와를 올린 상설 건축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