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화책에서 읽었던 서울쥐와 시골쥐 이야기는 늘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시골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에서 자연을 누리며 살고, 서울쥐는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에서 살아간다. 두 마리 쥐는 서로의 세상을 경험해 보지만, 결국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가장 편하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가 유난히 내게 오래 남았던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이 두 마리 쥐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뒷산에는 사시사철 나무들이 우거졌다.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이면 매미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가을에는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겨울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맨발로 흙길을 뛰어다녔고, 저녁이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세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시골의 삶이 단순히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비 오는 날이면 질퍽해진 흙길이 발에 달라붙었고, 밤이면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걸어야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지붕이 덜컹거렸고,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버스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어린 마음에 가장 힘들었던 건, ‘시골’이라는 단어가 주는 촌스러움이었다. 텔레비전 속 반짝이는 도시의 모습이 부러웠고, 높은 빌딩과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광주와 서울 생활을 거쳐 , 아예 바다 건너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처음타국에서의 삶은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간 것처럼 낯설고 버거웠다. 사람들은 빠르게 걸었고,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버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길은 분주했고, 표지판과 간판들은 익숙지 않은 영어로 빼곡했다. 길을 걸어도, 식당에 가도,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물건 하나 사는 것조차 긴장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는 ‘혼자’라는 감각이었다. 시골에서는 길을 가다 아는 얼굴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달랐다. 이웃과 얼굴을 마주쳐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고,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늘 혼자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생활에도 익숙해져 갔다. 처음엔 어색했던 영어가 점점 귀에 익었고, 낯설기만 하던 음식들도 하나둘씩 친숙해졌다. 처음엔 차가워 보였던 이웃들도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시골쥐가 도시에서 적응하듯, 나 역시 이 타향에서 내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은 고향이 그리웠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문득 시골의 밤하늘을 떠올리곤 했다. 가로등도 없이 새까만 밤, 쏟아질 듯한 별빛, 그리고 시골집 마당에서 들려오던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 미국에서의 밤은 도시처럼 밝지만, 그 속에서 나는 더 깊은 어둠을 느끼곤 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갔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익숙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미국에서 아무리 적응을 해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시골쥐의 영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서울쥐도, 시골쥐도 아니다. 나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미국에서도 자연의 그리움을 알고, 미국에서 살아온 덕분에 한국의 따뜻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동화 속 서울쥐와 시골쥐는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정겨움과 미국의 자유로움, 시골이 주는 평온함과 타향살이가 주는 도전. 그 둘을 모두 간직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