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âneur

by 병혁

도심 속 산책자.


내가 표방하고자 하는 삶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 충실한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 마음을 내려놓으니 모든 것이 한가롭고 여유롭다.


물론 화가 나는 순간도 있다. 양극성 장애를 관리하고 있다보니, 특히나 조증의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주변이 난리가 나는데, 약은 챙겨먹었냐~ 잠은 잘잤냐~ 이런 얘기를 매일같이 듣다보면 나도 사람인지라 먹었다고!! 모른다고!!! 괜찮다고!!! 빼액 소리를 지르곤 한다. 이내 죄송해져 금방 사과를 드리곤 하지만..


오늘은 화풀이로 라이터 두 개를 던져서 터뜨려버렸다. 남아있던 담배도 분질러버리고.. 에휴.. 그래도 값비싼 전자담배를 이번에는 던져서 부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 뭐. 내 전자담배의 브랜드는 "젤로"인데, 미키 세계관을 따르면 젤로6~7 정도 된다.


오늘은 성수동에 다녀왔다. 수제 구두와 명품 선글라스가 공존하는 아주 신기한 장소. 높은 건물로 사방이 막혀있지 않아 골목 골목을 누비는 재미가 있다. 오늘 눈에 들어온 것은, 발에 딱 맞춰주신다는 수제 신발 가게. 사이즈도 꽤 넓은 폭을 자랑하고 있는 낡은 가게에 언젠가 가 내 발에 딱 맞는 명인의 신발을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기성품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교감을 통해 나를 위한 물건을 찾는 일은 즐겁고 멋진 일이다. 최근에는 안경 하나를 맞추었는데, 내게 "찰떡같은" 친구를 찾아주셨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맞출 수 있어 매우 기뻤다. 그렇게 물건에 조금은 애정을 갖게 되었나.


아이유 씨의 "무릎"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데, 수욱 올라왔던 감정은 모조리 사라지고, 차분하고 조용해 글을 쓰던 결이 달라진 것만 같다.


요즘엔 부쩍 아이유 씨의 노래를 자주 듣게 된다.


그래서, 산책하는 삶. 이것이 나의 모토. 오늘은 성수동을 낭낭히 거닐었다. 외국인도 많이 보였고, 선글라스도 많이 써봤고, 뽀송한 강아지 냄새를 구현한 향수도 뿌려보고, 헤르메스의 모자를 닮은 섹시한 가죽 모자도 써보고, 카라멜 향이 나는 차의 향도 맡고.


예쁜 꽃도 보고, 공사판도 보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서 컵라면도 사먹고. 한국이지만, 나는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좋지 않은가! 커터칼로 가방을 베일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고, 인종차별도 없고, 물건 강매도 없고. 벤야민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부쩍 자코메티의 삶도 궁금하다.


내일은 가장 애정하는 브랜드인 "트락타트"에 방문할 예정이다. 아니, 이제 오늘이지. 철학을 디자인하는 멋진 선생님들의 작품을 보고 입는 것은 철학함이 아닐까. 물론 조증 때 땡겨서 산 옷들이지만, 내일은 그들의 작품을 입고 방문할 계획이다. 멋진 쇼룸을 담고 싶어 묵혀두었던 카메라도 가져갈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대가 되는 건, 보고싶은 얼굴들을 보러 간다는 것.


나는 요즘 보고싶은 얼굴을 보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죽기 전에 얼굴 보는 것이 낫지, 그리운 마음 가지고만 있다가는 속버리기 싫어서.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면, 술 한 잔 같이 기울이면 친구라 생각하며, 스쳐 지나갔던 많은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늘 한결같은 나의 친구들. 건강하게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


다음 곡은 아이유 씨의 "밤편지"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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