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출근까지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책임 없는 쾌락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바라던 대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최소한을 제외하곤 기존의 관계를 모두 탈피하고, 궁금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현실에서의 내 모습은 여전히 같은 이름과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살아보고 싶은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술가의 친구가 되는 것.
애정하는 친구, 요셉을 만났다. 지나가는 하루가 아쉬워 세수를 하고 글을 쓰려던 찰나. 나는 오랫동안 바라왔던 베스트프렌드가 바로 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하나씩 아쉬움이 남아 그가 나의 베스트프렌드야, 라고 말하는 것을 꺼려왔고, 그 누구에게도 나에게 있어 베스트프렌드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문득, 요셉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베스트프렌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느 한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기존의 가치로부터 저항하고자 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는 느낀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흥미로워했고, 곧 잠에 들었다.
나는 며칠 사이에 묵었던 고름을 모조리 빼내고, 새로운 공기를 흠뻑 마시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괴로웠던 것은 사실은 차마 놓지 못했던 내 마음이었고, 누구에게나 대나무 숲은 필요한 법이니까. 한때는 너무도 괴로워서, 화양연화의 주인공이 나무에 대고 속삭이는 마음을 공감한 적도 있었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기에, 그의 사연은 결코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기에 그 답답한 마음을 나무의 움푹 패인 공간에 작게 속삭였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요셉은 나의 글을 읽고는, 그렇게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바라던 것처럼 자유롭고 편안해 보인다고. 나는 마침내 내가 바라던 삶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한 듯싶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이렇게나 기대되었던 적이 없었다. 지난 몇 개월간 나의 그림자의 가장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며, 그것에 익숙해지고 잠식되어 가던 도중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칼날을 빼어 들어 그 관성의 고리를 잘라내어 버린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물에 뜨는 법을 배워왔다면, 그것도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거리며 수면에 올라와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이제는 자유롭게 유영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여전히 파도는 크고 물은 차갑겠지만, 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한다. 헤엄칠 때가 온 것이다. 궁극적인 나의 목표는 나 자체가 예술가가 되는 것, 그리고 지금은 우선 예술가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가란 꼭 어떤 예술을 하는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생경하게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 여기는 만큼, 현전하는 모든 것을 오감으로 혹은 육감으로 느끼고 그것을 교감하는 모든 것이 예술의 범주 안에 들지 않을까. 비록 스쳐 사라진다 하더라도. 요셉과 나눈 오늘의 대화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긴 아픔을 겪으며 느낀 것이 있다면, 우리네 삶은 언젠가 죽어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이기에. 한 번뿐인 삶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뼛속 깊은 곳까지 느꼈기에. 이제는 실천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한 살아있고 싶다. 그래서 커피 원두가 들어가지 않은, 관념적 원두가 들어간 익선동의 카페를 친구와 함께 가 재미를 느끼고 싶고, 서로가 만들어 낸 일련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누고 싶으며, 견뎌온 세월을 위로하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또다시 낯선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것이다.
여름의 끄트머리 언저리에서, 무거운 습기를 내려놓은 가벼워진 바람을 온몸을 다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