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배를 채우는 음식 그 이상이다.
밥 한 끼에는 우리 삶의 온도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집에서 갓 지은 밥의 뜨거움과 따뜻함은 즉석밥의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곧 우리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월과 비례해 이 차이는 체증의 법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밥을 발견하게 된다.
집에서 갓 지은 밥은 아무리 뜨거워도 따뜻하다.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밥 한 그릇은 영양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밥솥을 열면 퍼지는 고소한 냄새,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밥의 뜨거움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그 뜨거움 속에는 집의 온기와 사랑이 담겨 있다.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순간, 밥의 뜨거움은 곧 마음의 따뜻함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집 밥'의 힘이다. 뜨거운 밥이 주는 만족감은, 그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삶이 항상 따뜻함만을 주지 않는 것처럼 밥도 그러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매일, '즉석밥'의 편리함에 의지하게 된다. 전자레인지 속 2분만에 완성되는 즉석밥은 분명 뜨겁다. 그러나 그 뜨거움 속에는 무엇인가 빠져 있다.
간단히 말해, 간편식에서는 가정식의 따스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혼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즉석밥을 먹을 때면, 그 뜨거움 보다 마음속의 서늘함이 더 크게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즉석밥도 집밥도 아닌 새로운 밥을 먹을 때가 있다. ‘잔반’이다. 즉, 먹고 남은 밥이다. 차디 찬 냉장고에 겹겹이 쌓인 놈들, 그 중, 한 놈을 잡아들어3분정도 돌린다. 뜨겁기만 할 뿐 따뜻함은 물론 물기도 없다.
그리고 에스트로겐이 테스토스테론을 압도할 때쯤 되면, '눈치 밥'을 먹게 된다. 눈치밥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때로는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먹는 밥이다. 혼자서 조용히, 눈치를 보며 먹는 밥은 아무리 뜨거워도 차갑기만 하다. 그 속에는 온기 대신 외로움이 자리한다.
비록 때론 외로움과 서늘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모든 밥(쌀)에는 영양과 미용 효능이 담겨 있다.
예부터 잡티없이 깨끗한 백옥같은 피부를 선망했던 우리 조상들은 쌀겨와 쌀뜨물을 활용해 세안을 했다.
쌀겨를 천 주머니에 넣고 우려낸 물로 세안을 하거나 쌀을 씻고 남은 물로 얼굴을 씻어 냈다. 쌀뜨물에는 비타민B와 아미노산 성분이 풍부해서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미백 효과를 준다. 또한 철분, 아연, 탄수화물 등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 섭취에 좋다.
하여, 즉석밥,잔반 또는 눈치밥이라 할지라도 피부미용이 필요하다면 일단 먹어야 한다.
밥은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밥은 우리에게 위안과 위로를 준다. 때문에, 밥 한 끼에 담긴 열기와 온기, 그리고 냉기의 차이는 단순한 온도 차이가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뜨거움보다는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현실은 그 따뜻함을 빼앗아가지만, 밥 한 끼 속에 담긴 마음의 온기는 우리를 감싸준다.
제삿밥을 먹게 될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따뜻한 집 밥 한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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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밥>
김승희 시인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김지하 시인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서로 나눠먹는 것